Day01. 이름을 버리기로 한 남자가 오늘 용과 함께 쓰러졌다
2020.11. 11.
삼봄 출생
사랑하는 얼리+벗 여러분들에게
(삼봄의 첫 번째 편지)
시작부터 오글거리는 표현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제 스스로 가장 이해하지도, 살아내지도,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냈을까요? 이번 ‘Design 2Q21’과정을 운영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선물하고 안내하는 여정에서 아마 가장 큰 자각이 일어나고 있는 참가자는 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밤늦게, 혹은 새벽 일찍 질문을 만들고, 빈 노트를 디자인하고, 잠시 침묵에 머물러 걷기도 하고, 부족한 표현으로 얼기설기 엮은 안내글을 쓰면서 질문에 깊이깊이 머물고 있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흔들리고 또 깨어지는 순간이 제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제 깊은 곳에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 올라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봄이라는 새이름도 그냥 찾아온 것은 아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어떤 존재됨이 죽어가고, 새로운 봄을 맞이해 새로운 존재됨이 깨어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거창하지만 사실 별거 없습니다. 삶이 아닌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에 머물고 있습니다. 직접 얼굴 보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거리에서 만나진 못하고 있지만, 이런 순간을 여러분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얼리+벗 여러분.
송구스럽게도 며칠 동안만 이 프로젝트를 잠시 쉬고 싶습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 같지만, 제가 저의 깨어짐을 추스를 시간이 조금 필요한 듯싶습니다. 하루 이틀일 수 있고, 일주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이번 11월 안에 21가지 질문을 마무리 해 갈 수 있도록 다시 돌아올게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드리는 부탁입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제 개인적인 일이고, 어느 정도 추슬러지면 또 여러분과 이번 경험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질문의 본질은 ‘껍질’이라는 이야기를 드렸던가요? 정말 중요한 ‘알맹이’가 자라날 때까지 ‘껍질’은 그 필요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혹은 우리의 살아냄을 담아내고 지켜낼 수 있는 좋은 껍질이 필요하지요. 제가 지금까지 드린 11가지 질문, 그리고 앞으로 선물해드리고자 하는 10가지 질문이 여러분의 새해에 심어가려는 씨앗들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껍질이길 바라고, 또 이 과정을 온전하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껍질 하나를 벗어내는 과정을 돌아보고, 보고, 돌보는 여정을 걷고 있을 뿐입니다. 저에게 온 울림이 너무 커져서, 지금은 여러분을 돌보기에 너무 취약해져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며칠만 저를 더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얼리+벗 여러분.
제가 SNS 활동이나 이런 걸 접고 숨어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약속된 코칭이나 미팅 일정들도 여일 하게 수행하며 살아갈 것이에요. 겉으로는 거의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방에서도 여전히 낄낄거리며 시시한 글들을 올릴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읽어주고, 들어주는 사람을 위할 때도 있겠지만, 제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고, 토닥이면서 치유하는 글쓰기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그냥 응석 부린다고 생각하고, 지켜봐 주고 평상시처럼 활동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1번째 질문에 대한 안내글과 12번째 질문 노트를 올리면, 그냥 돌아왔구나 생각해 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질문하지 못하는 며칠간 이전의 성찰 기록을 다시 보거나, 아니면 저의 질문 말고, 여러분이 만들어 두었던 질문에 머물면서 답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남이 던져주는 모든 질문에 그대로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좋은 질문을 선택하고, 머물고, 답을 찾아가는 것은 온전히 개개인의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돌봄이라는 말에 ‘돌덩이’를 짊어짐이란 뜻을 담아보자고 했던 사전 미팅 영상의 내용이 기억나시는지요? 질문도 하나의 돌덩이 같은 것이랍니다. 기꺼이 짊어질 돌덩이인지, 그저 삶의 무거움만 더하게 만드는 형벌 같은 것인지는 세세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도 마찬가지고요.
사랑하는 얼리+벗 여러분.
지금 제 상태가 이런 글을 남겨야만 제가 짊어지기 힘든 돌덩이를 내려놓고, 정말 제가 온전하게 짊어지고 가져가야 할 돌덩이를 선택하고, 품어갈 수 있게 할 것 같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는 짧게라도 의견을 남겨주시고, 제게 잠깐의 여유를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약속은 소중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런 약속을 제가 먼저 조정하자고 이야기드려 송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020. 11. 11.
삼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