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술사 시인박씨와 가깝거나 먼 친구들에 띄우는 편지입니다.
#Birth #탄생
I was born of the shining of distant stars,
머나먼 별들의 반짝임 속에서 태어난 나,
I drew their beams with me from afar;
아득한 곳에서 나는 그 별빛을 가져왔네.
I was born of the gold of the radiant sun,
찬란한 태양의 금빛 속에서 태어난 나,
Of the light of the world ere the earth begun;
지구별이 시작되기 전 그 세상의 빛 속에서 .
Born I was of the silver eye
은빛 눈동자로 나는 태어났네
Of the guardian moon keeping watch on high;
높은 곳에서 지켜보며 보호해주는 달 아래서.
Born of the wild winds roaming free,
자유로이 방랑하는 거친 바람 속에서 태어났고,
Born of the flames’ intensity;
강렬한 불꽃 속에서 태어났네.
Born of the wave that laps the shore
해변을 감싸 안는 파도 속에서 태어났고
And the rock that hides the glittering ore;
빛나는 광석을 품은 바위 속에서 태어났네.
Born I was from out of the whole,
전체로부터 태어난 나는
I bear the world within my soul.
내 영혼 속에 세상을 담고 있네.
by Louis MacNeice
l907 – l963 Irish poet and playwright
여러분의 친구였던 질문술사 시인박씨가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섰습니다. 친구들의 돌아봄을 돕는 작업을 하다가, 제 삶을 먼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당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더 깊이 보는 것을 권하다가, 제게 중요한 것을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소중한 것을 돌보지 못한 채로 삶을 살아왔음을 직시하고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날 저를,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한 저를 먼저 돌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삼봄’이라는 새이름을 지은 것은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인 듯합니다. 저는 가면을 쓴 검은 용을 죽이고 있습니다. 바로 제 자신의 낡은 껍질을 깨어 부시고 있고, 다시 새로운 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상의 일들은 조금씩 수행하고 있지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몸과 마음에 흔적이 남습니다. 최근 11월 1일부터 ‘얼리+벗’이라 부르는 친구분들을 위해 ‘새해를 맞이하는 21가지 질문’을 만들고 나누는 일을 하다가, 제 삶의 여정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위쪽으로 떨어진다는 경험을 깊게 깊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제 삶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금씩 해방시키는 작업에 머물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끄적인 시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의 글들이 가끔 어두운 색깔을 띠는 것은 이런 과정의 흔적이 묻어나서 일 듯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몇 가지 프로젝트들은 당분간 자연스럽게 미루거나, 취소해야 할 듯합니다. 생각보다 제 자신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라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최소한의 책무만을 이행하고, 다른 모든 에너지를 저를 돌보는데 당분간 써야 할 듯합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글을 올리거나, 브런치에 시를 쓰거나, 제가 좋아하는 시를 옮겨적고 낭송해 유튜브에 올리는 일은 계속할 것입니다. 이 모든 시시껄렁한 표현 작업이 제 자신을 돌보고 치유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글들이 여러분에게 조금 우울하게 다가갈 수도 있으니, 불편하시면 30일 정도 제 글이 타임라인에서 보이지 않도록 설정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그냥 멀리서 바라봐 주시거나, 예전처럼 댓글 남겨주셔도 좋겠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매해 11월이 죽어가는 달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11월 30일을 저의 장례식 날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1년만 살아가는 한 해 살이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12월 1일에 눈을 뜰 수 있다면, 다시 1년을 살아가도록 허락받은 것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조금은 별난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11월에 죽어가는 것이 한 해 두 해는 아니지만, 올해는 그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2020년 올해는 제게 저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저의 존재를 바라볼 기회를 주었고, 저와 만났던 모든 분들의 따스함으로 인해 버텨낼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별거 아닌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비칠까 걱정하는 저의 소심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별 일 아닙니다. 주변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벗들의 아픔에 비하자면, 지금 제가 경험하는 것은 정말 개인적인 일이고, 사소한 일이며, 별거 아닌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실 여러분은 제게 별난 존재들입니다. 특별한 친구들이 많아서, 여태 재밌고 의미 있는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함께 경험하고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저의 존경하는 벗들에게 전하고 싶어 끄적이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여정이 온전히 펼쳐지고 있음을 기억해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잠시라도 만나서 지혜와 온기 나눠주신 모든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 그리운 마음 전합니다.
2020. 11. 13. 새벽에 수락산 자락에서
질문술사 시인박씨로 살아왔던,
그리고 새이름으로 살아가려고 준비 중인
삼봄 드림
PS. 새벽에 옮겨적고, 낭송한 시 한 편 공유합니다. 목소리가 낮게 깔린 건 아파서는 아니고, 그저 어둔 새벽이라 그런 듯합니다. 빛과 어둠이 만나는 시간이라 그런 듯합니다. 그리고 제게 여전히 걸어갈 힘이 남아 있음에 고마운 시간이라 그런 듯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