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술사의 노트 중에서..
오늘 게슈탈트 공부모임에서 진행된 슈퍼비전 세션 중, 슈퍼바이저의 몇 가지 질문을 메모해 두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세계를 더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내담자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이 질문을 들으며 문득 김정규 교수님의 『이해받는 것은 모욕이다』가 떠올랐다.
우리는 감히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내는 세상이 어떠한지,
그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상상하며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서툰 공감은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닫게 한다.
사실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끊임없이 판단하고 오판하는 나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그가 서 있는 세상을 상상하며,
그의 입장에서,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그의 자세, 표정을 떠올리며
그의 마음을 조금은 짐작해 볼 뿐이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행동이 나왔을까요?”
어떤 행동을 평가하기 전에,
그 행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마음을 상상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각자의 마음은 언제나 제약과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선택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그 행동에는 나름의 ‘기능’이 있다.
그 행동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질문이 우리를 조금 더 깊이 이해의 자리로 이끈다.
“그런 상황에서 그분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까요?”
누구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와 ‘어떤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가’를 품고 산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느끼는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지만,
그 마음을 향해 조심스럽게 묻고 또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서 당신을 보고 있을 상대방은 어떤 사람이라고 느껴지나요?”
상대가 느끼는 ‘나’ 또한 객관적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인식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해석은
그의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한다.
그의 눈에 비친 나를 상상해 보는 일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나는 여전히 내 앞의 사람에 대해 무지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친절하고 사려 깊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그를 만나고, 그의 세상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