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 Bright Jul 02. 2020

탑모델 송경아

자신감이 곧 아름다움.interview

송경아는 올해 데뷔 22년차를 맞은 베테랑 모델이다. 화보 촬영엔 1장의 사진만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찬사를 받는다. 아직 뉴욕에서 아시아계 모델이 설 무대가 없던 시절, 데뷔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모델 랭킹 사이트인 모델스닷컴(models.com)에서 선정한 라이징 스타 톱10에 선정되며 주목을 받았다. 해외 진출 첫 시즌에만 무려 36개의 쇼에 섰고, 각종 잡지 표지를 장식하며 패션 아이콘이 되었던 그녀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탑 모델인 동시에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창작자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첫 발을 내딛다


처음부터 완성된 채 태어나는 이는 없다. 살면서 그렇게 향해 가는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키가 컸던 송경아는 “키 크다”는 말이 싫어 구부정하게 하고 다녔다. 어머니가 자세를 교정시킨다며 보낸 학원에서 그녀는 워킹을 배웠다. 알고 봤더니 거기가 슈퍼모델 교육기관이었다고. 언니가 눈썹만 그려주고 증명사진을 찍자고 해서 찍었는데 그게 슈퍼모델 선발대회 원서에 쓰이고는 대회 본선까지 덜커덕 붙어 버렸지 뭔가.


그녀의 국내 데뷔는 1997년, 아직 고등학생일 때였다. 시원한 키와 마른 몸매 덕에 당시 쇼의 메인 컨셉을 반영한 중성적 매력의 의상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한 패션잡지 창간호 표지 모델로도 선정되는 등 인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1999년 대학에 진학해 방송연예학을 전공하면서도 그녀는 학생이라기보다는 모델이었다. 하루에 서 너 개씩 촬영장과 백스테이지를 돌며 분주하게 살다 짬을 내서 들르는 학교는 그녀에게 또 다른 세계였다. 


ⓒ Studio Kenn


“모델로 일찍 데뷔했고 무명 시절도 없었어요. 그런데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어느덧 방송작가도 되고 사회 여러 분야로 뻗어가는 걸 보니, 갑자기 내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당시 모델 수명이 짧았는데, 너무 패션에만 머무르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저도 지금이 최종이 아니라 언젠가 다음 스텝이 있을 거라고 믿었죠. 일단 혼자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게 뉴욕으로 갈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살면서 무의미한 것이 없죠.”



기회를 잡다


송경아가 처음 해외무대에 도전했던 2004년만 해도 뉴욕에 아시아인 온 모델이 오를 수 있는 무대는 거의 없었다. 그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도 지금처럼 다양한 인종의 모델이 런웨이를 걸을 거라고 상상한 사람은 몇 없었다. 뉴욕의 꾸뛰르(고급 여성복) 브랜드 ‘빌 블레스’에서 한 수석 디자이너가 차세대 탑모델로 아시아인을 세우고 싶어한단 소식이 송경아에게 닿은 것은 아마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 수석 디자이너가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다며 고른 모델들의 사진 4장이 실은 모두 송경아였다는 사실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 Song Kyunga / ESteem Entertainment


덕분에 뉴욕에 기반은 마련했지만, 무대를 따내는 일은 모델이 직접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그녀는 10개 에이전시에 면접을 보고 오라는 일종의 테스트를 받았다. 혼자서 길을 찾아가고, 어떤 건 늦기도 하면서 면접을 봤는데, 처음으로 갔던 블루밍데이즈 백화점 CF에 모델로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뉴욕에서도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뉴욕 컬렉션에도 진출하는데, 이는 모델로서 희귀한 캐릭터와 함께 데뷔 초부터 꾸준히 이어온 캐스팅 시도가 뒷받침된 결과였다. 첫 시즌 동안에만 그녀가 소화한 쇼는 36개에 달했다.


“처음부터 원하는 대로 다 된 것은 물론 아니었어요. 자신감이 있어야만 돌파가 되더라고요. 업사이드다운 컨셉으로 진행된 패션쇼는 아직까지 기억나요. 디자이너가 먼저 나와서 인사하며 피날레가 진행되고, 순번을 거꾸로 해서 모델들이 워킹을 하는 독특한 형식의 쇼였거든요. 제가 그 무대에서 가장 먼저 걷기로 했었죠. 그런데 디렉터가 쇼 순서가 복잡하니까 걱정이 됐나봐요. 영어 잘 하냐고 묻는데 “A little bit.” 이라고 어물쩡 답했어요. 그래서 오프닝 순서를 다른 모델에게 뺏기게 될 줄 알았겠어요? 지금도 너무 아쉬워요. 그 후로는 괜한 겸손은 절대 안 떨고요.”



진짜 1세대


송경아는 런웨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화보 작업을 통해 그 아이템들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냈다. 그녀의 성공적이었던 커리어 덕에 한국인 모델들의 해외 진출도 이어졌다. 당시엔 동양 모델들이 주류가 아니라 인종차별도 있었고, 모발이 백인 모델들과 달라 스타일링이 어렵다는 이유로 쇼 당일에 일정을 취소당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먼저 겪어야 할 일, 후배들은 겪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며 털어버렸다.



© Song Kyunga / ESteem Entertainment


뉴욕 컬렉션을 마치자마자 밀라노와 파리를 오가고, 패션쇼 시즌 후 바로 잡지 시즌을 맞으며 바쁜 와중에 틈틈이 일기를 썼다. 평소의 순간이 모여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뉴욕에서 생활하며 만난 사람들과 영감은 그녀가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데도 도움이 됐다. 그림을 그리고, 도예를 배워 전시도 여러 번 열었다. 최근에는 살고 있는 집이 방송에도 공개되면서,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나 만든 소품들도 폭발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끊임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원동력을 두고 그녀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라고 말한다.


“모델은 옷을 표현하는 직업이에요. 1st Rumor라는 브랜드를 런칭한 건 저를 표현하고 싶어서고요. 새로 출시한 가방은 ‘히피 백’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재질이 다른 가죽을 엮어 컬러 블록을 만들고, 복고를 대표하는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줬어요. 이번 시즌의 유행은 두 말 할 것 없이 ‘레트로’죠. 엄마 아빠 옷장에서 꺼낸 옷이 최고예요. 옛날엔 몰랐지만 어렸을 적 할머니가 비단베개에 놓았던 자수를 떠올려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돌고 도는 유행은 우리 일상에 아름다움이 이미 깃들어 있음을 암시하는 거예요. 익숙해지고 무뎌지지 않도록 계속 표현하고 싶어요.”



송경아 프로필

- 크리스챤 디올, 구찌, 조르지오 아르마니, 필립림, 빅터앤롤프 등 패션쇼 모델 

- Vogue Italia, Cosmopolitan USA, Numero, Flaunt, London Times 등 잡지에서 한국인 최초로 화보 촬영

- 디젤, 리바이스, 맥 코스메틱 등 다수의 월드와이드 캠페인

- 브랜드 1st Rumor 런칭, 2014

- 중국 절강위성 TV 올해의 모델상, 2011

- 대표 저서 ‘패션모델 송경아, 뉴욕을 훔치다’ 2006

- 뉴욕 데뷔, 블루밍데이즈 백화점 CF 모델, 2004








[월간 KOREA 2019-12 Interview] 사진&글 SAM BRIGHT

*월간 KOREA에서 만난 사람들 > 웹진 바로가기
*본 게시물은 KOREA 웹진 홍보를 위해 작성되었으며, 사진과 글(국문)은 원작자 동의 없이 재사용할 수 없음을 안내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진화, 인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