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3. 백수가 어때서)
백수가 된 지 7개월이다.
직장을 다닐 때엔 그리도 더디게 가는 것 같은 시간이, 백수가 되고 나니 이리도 빠르게 흐를 수가 없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엔 회사일에 치여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내 공간에서 여유롭고 평화로운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나의 하루는 제법 단조롭다.
기상, 집안일, 노트북, 운동, 취침.
백수생활이 불안하진 않느냐고?
물론 불안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백기가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도태되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이 걱정은 매일 밤마다 나를 찾아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없는 질문을 낳는다.
그날의 내 컨디션에 따라 두 가지의 결론이 나온다.
대부분의 결론은 "그래도 지금을 즐기자. 뭐든 해보자."이고,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나오는 결론은 깊은 자책뿐이다.
백수생활이 길어질수록 조급해질뿐더러, 두려워지기도 한다.
사실 경력단절이라고까지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남들이 봤을 때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무섭다.
나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고 떳떳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어떻게 비추어 질까?
매 순간 내 미래를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정을 알리 없는 이들은, 그 사정에 관심 없는 이들은 나를 이해할까? 이런 나를 존중할까?
애초에 답은 없다.
그들이 나를 이해할지 두려워하다간 놓치는 순간들, 기회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사는 삶은 내가 원하던 행복이 아니다.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시간들을 나 또한 부정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정당한 명분으로 둔갑하여 오히려 스스로를 옥죄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포부를 가지고 내밀었던 사직서가 떠오른다.
인생의 성공도 아니고, 일확천금도 아니다.
그냥 나는 행복해지려고 퇴사했다.
그런데 막상 백수가 되고 나니, 의문이 드는 거였다.
내가 정말 이 휴식을 온전히 취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궁극적으로는, 내가 이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비극이었다.
근 몇 달간은 자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도통 회복이 되지 않았다.
비웃거나 힐난하는 이가 없는 데도 눈치를 보고 움츠러든 것이다.
스스로가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언제까지고 눈치만 보고 도망칠 순 없다.
나는 N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정당하게 백수라이프를 살고 있다.
행복을 위해 선택했으며, 미래의 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고,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이번주 요가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그 말이 뭐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괜히 울컥해지는 거였다.
"여러분, 일상생활에서 신경 쓸 게 얼마나 많고, 생각할 게 얼마나 많아요?
수련하실 때만큼은 그런 생각은 잊어버리세요. 나의 신경에 집중하고 숨소리에 집중하는 거에요. 그렇게 온전히 쏟다 보면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집중하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지금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