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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리 삼번지 Jun 14. 2023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18. 무조건)


무조건(無條件). unconditional.


아무런 조건 없이, 이리저리 살피지 않고 모든 것을 덮어놓는 것.

무조건적인 사랑, 응원, 위로에 대해.



나는 어릴 적부터 염치를 과하게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 다르게 말하면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살아온 것이다.

100의 사랑을 받으면 100으로 갚아줘야 했다. 100의 응원을 받으면 200으로 되돌려줬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이십 대 즈음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모자라면 모자랐지, 넘칠 필요가 없다.

응당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더라. 꽤나 많이 상처를 받고, 곪기도 하고, 새살이 자라날 때까지 면역력을 길러야 했다.



이후에 어땠더라. 그래, 나는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의심하게 되었다.

과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조건이라는 전제가 작용할 수 있을까?

무조건적으로 너를 사랑해. 진정으로 응원해, 네 마음을 십분 이해해. 진짜 잘 됐으면 좋겠어.

이러한 타인의 목소리조차 올곧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조건? 그게 가능한가? 자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인간관계에 있어서 방어적인 태도로 변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재간도 없고, 용기도 없다.

괜한 상처를 받기 싫어 일부러 거리를 둔다. 곁을 주는 게 어려워졌다.

애써 마음을 나누어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는 꽤 솔직한 삼십 대가 되었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외롭다고 말하고, 두려움을 느낄 때면 두려움을 고백한다. 울고 싶을 땐 울고, 화가 날 때엔 속사포처럼 퍼붓기도 한다.

마음이 단단해진 탓일까. 주변의 소음이 들려오거나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감히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뿐인 가족들과 근 이십 년간 굳건히 내 옆을 지켜준 친구들을 보며, <무조건적 애정>이라는 걸 실감하기도 한다.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에게 200, 300, 그 이상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돌려주고 싶다.

내가 받은 무조건적인 마음만큼이나 그들도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고,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을 그리도 무서워했던 걸까.

아니, 다시 말해, 성장통이라고 일컫고 싶다.

스스로가 단단했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싶다. 조금 더 빨리 깨우쳤으면 어땠을까 싶다.

온갖 풍파에 상처를 받고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지난날의 나를 다독이며 지내온 날들이다. 무수히 흘려보냈던 시간이 아쉽지는 않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 그 순간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된 거니까.



무조건적인 마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사랑을 전하고, 응원을 나누며, 위로를 하면서 나 또한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앞길에 고민이야 있을 수 있다. 막막하고 참담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을 수 있다. 마냥 꽃길만 펼쳐지는 요행은 바라지 않는다. 삶의 갈등이 있기에 아름다운 서사가 완성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무조건적인 마음을 나누다 보면, 가지고 있던 걱정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 자리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힘들거나 슬프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 언제든 나를 찾아와 주면 좋겠다.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마음 그대로, 당신에게 온전히 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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