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비의 기억
열 살 시절의 나에게,
특별한 비의 추억이 있다.
마당 한 켠에 길게 늘어선 화단에서는
탐스러운 과실수와 각색의 꽃나무들이
계절을 노래하던 그 시절.
더 어린 시절부터 혼자 남겨진 날이 많았던 나는,
호우 시절에도 홀로 앉아
깡통 소리가 날 것 같은 시선을 떨구었다.
닫은 건지, 갇힌 건지를 알지 못했고,
구겨진 마음의 이름을 몰라서
쓸쓸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이었다.
늘 그 자리,
낡은 벨벳 소파에서
위로가 필요한 줄도 몰랐으면서
접은 무릎을 안고 내 품에 나를 파묻었다.
쏴아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갑작스럽게 아픈 비가 쏟아졌다.
어떤 생각이 나를 이끌었는지 알지 못한다.
개운한 마음으로, 말간 눈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작은 몸으로 비를 맞으며
팔을 들고 뱅글뱅글 춤을 추고 있었다.
후드득, 후드득—
비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의 기억이 없다.
쫘아악, 트럭이 금방 사이에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부수었겠지.
열 살 꼬마는 목을 열고 노래를 했을까.
온몸이 흠뻑 젖은 나는
분명 울고 싶은 마음인데, 시원했다.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이미
눈물도 비와 함께 땅에 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질반질 잘 닦인 마루에 올라서서
뚝뚝뚝뚝—
내게서 떨어지는 물이
나뭇결을 적시는 모양을 가만히 보았다.
우산을 챙겨주는 이가 없는 꼬마는
비 오는 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를 맞아야 할 일이 많다면,
비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걸지도.
삼십 년이 넘도록,
비가 오는 날은 그날로 나를 데려간다.
수없이 많은 얼굴을 한 비들이
내게는 모두 그날의 얼굴이다.
보슬보슬 아기 엉덩이 같은 봄비도,
사납게 내달리는 타작마당 같은 소낙비도,
쓸쓸함이 내리 앉는 젖은 낙엽의 가을비도,
모두 한 얼굴이다.
빈 몸으로 세상에 던져진 아이는
즐겁게 비를 맞는 방식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비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