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관부연락선
지난밤, 소년의 때를 벗지 못한 단정한 신사복 차림의 남자가 시모노세키 항을 떠났다. 관부 연락선 1등 칸, 그에게 마련된 편안한 방이 있었지만 그는 좀처럼 자리를 붙잡지 못했다. 하야시 렌—그는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늘 차가운 것들을 마주할 때처럼, 검은 바다 앞에 서 있었다.
해협의 바람이 그의 뺨을 쓰며 지나갔다. 이 넘실거리는 물결은 떠나는 날까지 탐스럽던 어머니 하야시 미즈호의 머릿결을 닮았다. 웃는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던 그녀의 얼굴, 창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던 나가기(長冠)를 쓰다듬던 그 손짓. 칠흑빛 바다는, 그녀의 혼잣말처럼 모호하고 가벼운 떨림을 품고 있었다.
기대도 아쉬움도 없다,라고 렌은 말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잊었다고 믿었던 미소가 바람에 실려 와 그의 가슴을 덮쳤다. 그녀가 떠난 날—그는 어머니가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는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것이 소년을 얼마나 낯선 죄책감으로 물들였었는지도, 파도는 알고 있는 듯 찰박거렸다.
렌은 한 번씩 큰 소동을 내고 싶은 충동을 품던 아이였다. 조용한 성정이었지만, 세상을 흔들어 깨울 만큼의 소리를 내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지금도 갑판 아래로 울리는 엔진의 고동과 철썩이는 파도가 뒤엉키는 순간, 고함을 질러도 될지, 그는 잠시 가늠했다.
아버지 치하루는 화병 속에 꽂힌 꽃처럼 움직이지 않는 아내에게서 도무지 향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 렌이 어린 마음으로도 알았던 것은, 아버지의 온기가 어머니의 목덜미를 꺾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완전한 사람이었다. 동경 제국대학의 법학도, 미국 유학까지 보낸 일본 정부의 귀한 인재. 그러나 ‘완전함’이란 어쩌면 결여의 가장 세련된 모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본가를 지키라는 명목으로 조선 총독부 중추원 서기관직을 택하면서도 혼자였다. 미즈호가 남편을 기다리며 가졌던 말하지 못한 희망, 그것이 다시 짓눌리는 장면을 잊지 않는다.
미즈호는 여린 꽃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는, 보호받아야 마땅한 꽃잎. 그러나 그녀에게 말할 수 없는 독이 생겼다.
바로 그 남자—하야시 치하루—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녀를 한 번도 ‘향유’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의 손끝은 남편에게 닿을 때마다 물러졌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멍해졌다.
렌은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찍 알아버렸다.
그러나 렌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렌’이라는 아이를 통해 치하루와 연결될 가능성—그것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볼 때에야, 나는 렌을 보리라.’
그녀의 모정은 렌에게서부터가 아니라, 언제나 저 먼 곳, 치하루에게서 시작되고 있었다.
하야시 가문의 세 사람.
치하루, 미즈호, 렌.
그들은 함께한 시간만큼도 서로의 살에 닿지 못했다. 시간이 쌓여도 깊어지지 않는 관계—그 불편감이 그들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조선으로 가겠다는 렌의 결정에 대해 그 누구도 온전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을 사람도 없다는 것에 안도한 그 순간, 바다는 색을 잃었다.
어머니는 자리가 없는 줄 알았자. 하지만 떠나고 한참이 흘러도,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렌의 가슴 가운데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며 먹빛이 흐려질수록, 그는 그 빈자리가 얼마나 자신을 지탱해 왔는지 깨달았다.
멀리 부산항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우우웅—
관부 연락선의 깊은 고동이 마지막 힘을 끌어올리듯 떨려왔다. 마치 바다 자체가 오랜 밤을 견뎌낸 채 안도의 숨을 내쉬는 듯했다.
렌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무언가를 놓지 않으려는 듯, 아니면 아직도 모르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하야시 렌.
그 역시 알고 싶었다.
그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