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개운한 취미 생활
우연히 검색사이트에서 압출 동영상이란 짧은 영상을 보았다. 블랙헤드카 딸기씨앗처럼 박힌 노랑 피지 방울을 쏘옥 빼내는 영상. 그 클립의 정체는 피부관리 제품의 홍보 영상이었다.
쏘오오오옥. 정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린다. 퐁. 하고 공기 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이질적이다.
먼저, 나는 중독에 특히 취약한 현대인임을 밝혀둔다. 내가 이토록 빠져들 줄 몰랐지만, 잠시 짬이 나서 유튜브에 “피지압출”이라고 검색을 하고 말았다. 압출이라는 말도 처음 봤으면서, 느낌을 얻어버린 것이다.
역시.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한, 내가 열지 않은 문이 많다. 수없이 많은 충격적인 피부 영상들이 올라와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짤의 재생 횟수가 사천만회를 넘는다는 것. 아 내가 느낀 끌림이 우연이 아니었구나. 제일 위에 올라온 영상부터 별생각 없이 눌러보았다.
아… 원래 작정하고 한 일보다 우연처럼 시작한 일이 인생을 바꿔버리는 거 아닌가? 조물주 개구쟁이 같은 원리 말이다. 깔락코 빨라.. 이런 깔딱거리는 말을 뱉는 여자가 날카로운 끝이 달린 집게로 누군가의 얼굴을 헤집는다고 할지, 청소를 한다고 할지. 칼처럼 생긴 끝부분이 빼꼼 얼굴을 내민 피지의 틈의 톡톡 파고든다. 손끝에 영혼을 모아서 누르면 그것이 바로 압출, 누런 피지가 쏙쏙 빠져나오는 쾌감을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소리 없이 소문도 없이 빠져들었나 보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것을 보고 있다. 처음엔 삼십 분짜리 꼭지였는데, 어느새 확대해서 피지를 손톱만 하게 보이게 만든 영상에 까지 손을 댔다. 어느 아랍어 소개가 달린 영상을 올린 사람이 공격적인 호객을 하나보다. 화산 분화구 같은 무서운 구멍에 이끌려서 이건 아니지… 하면서 끊임없이 보고 있다.
사람마다 살성이 안르고, 유분의 색과 질감이 다르다는 것, 점인 줄 알고 넘어갈 뻔했던 많은 것들이 머리꼭지가 타버린 피지 덩어리라는 것, 건조한 사람의 피지보다는 기름진 사람의 똑 떨어지는 피지가 즐겁다는 거. 아… 이렇게 압출 동영상에 취향이 생겨버렸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를 생각하지만, 이 동영상을 본 사람이 사천만 명 더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래도 나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한눈에 더럽다. 나도 볼펜 구멍을 이용해 여드름 좀 짜본 경력이 있으니, 그 쾌감은 잘 알지만, 시술자의 하얀 고무장갑에 늘어놓은 누우런 덩이들을 보면 더럽다는 말 밖에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처음에는 깔끔해지는 시원함으로 보아도, 어쩔 수 없이 살갗이 붉어지고, 여기저기 피가 솟아 나오는 것은, 누렁과 붉음의 피고름이 내게 묻은 것 같은 불쾌함을 동반하지만, 나는 끄지 못하고 새벽으로 달려간다.
관련 동영상으로는 막힌 하수구 뚫는 영상 등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오직 이 피지압출만 보고 싶은 이유는 뭘까, 보지도 않고 이쪽이 최고라고 하는 건 반쪽 짜리긴 하지만, 나는 왜 이것이 나를 사로잡는지 알 것도 같다. 기름 낀 얼굴을 대고 있는 것도 나고, 핀셋과 의료용 장갑을 끼고 행위를 이어가는 손길로 나다. 내 얼굴 가득 피지가 끼어있는 걸 알아도 해소하지 못하는 내 답답함을 영상에 담아 느끼며 벗어보는 시간이다. 피지가 사라진 틈을 곧 새로운 피지가 채울 거라고 조롱하듯 걱정하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매끈한 피부보다는 구멍을 외면하지 않고 찌꺼기를 뽑아낸 쪽을 택하는 사람이다. 대고 있는 얼굴이 내 지나온 삶과 지금의 내 마음이고, 짜내는 손길이 나의 글쓰기는 아닐까 생각한다. 피가 나고 고름을 내도 들여다보고 해체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나의 글쓰기. 누군가 자기 유분도 아니면서 내 얼굴이 때를 뱉어내는 것을 시원하게 바라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로 얼굴에 솔을 대지 않고 의료용 집게로 피지만 뽑아내는 건 일본 스타일이다. 솟아 나온 피지 대가리를 쏙쏙 뽑아내는 것은 피부가 상할 염려에서 자유롭고, 고통 없이 깔끔하다. 그것에 정을 붙여보려고도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까만 우물가에 막대를 꽂아 몸체를 빼내는 쪽, 환부의 양쪽을 가로막고 압박해서 체증을 날리는 쪽이 좋다.
호명이는 내게 상처를 해부하는 글쓰기라고 했다. 한강 작가도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은 같지만, 멀리서 감정을 제하고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아마 나는 아프고 더러워도 쑤셔서 정체를 알아내는 압출러가 아닐까. 옳고 그름은 없다. 나는 시원한 배출이 좋다. 피가 나면 닦고, 연고를 처방하면 되지 않나. 또 아프고 또 쌓이겠지만, 애벌레를 사육하는 마음으로, 나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