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어느 날.
나는 캐릭터가 있는 여자다. 별명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드디어 수십 년간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금 깨닫는다.
나는 아마 감각이 특화되어서 -얼마 전까지 전혀 몰랐던 혼란의 영역이었지만-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미묘한 특질을 찾아내 이름표를 다는 데에 괜찮은 능력이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감각적인 제목이 없이는 시작이 어렵고, 결국, 제목이 주는 어떤 느낌하나가 글을 마무리 짓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처럼 묵직한 제목을 던지고 나서는 헉. 발걸음이 무겁긴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별명으로 불러줄 때도 있지만, 내 마음에 찬 적이 없다. 본질을 꿰뚫지 못한 것은 넓은 의미를 축소하고 숨 막히게 막아버리는 것 같아서. 지금이라면 그 불편함의 본질을 이해하고 처리했겠지만, 나는 그것을 나한테 충분한 애정 - 딱 맞는 별명을 붙여줄 만한-이 있는 사람이 없는 거라고, 그렇게 현상을 꼬아버렸다.
나는 부평초처럼 떠다닌 양철로봇이다. 바다 위를 부표도 없이 떠다니는 양철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녹슬고 삐걱거리는 것이 쑤시고 결리는 내 어깨 같아서 불편하다. 그런데 그게 나다. 나의 캐릭터. 연예인들도 정치인들도 갖고 싶은 무엇.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무플보다는 악플이 나은 게 확실하다. 아… 갑자기 궁금하네 고 박새론과의 접점으로 인간쓰레기가 되어버린 김수현 배우는 지금 자기를 찾는 이 없는 것이 편안할까, 그래도 욕을 먹어도 사람들이 자기를 봐주는 때가 좋았다는 생각도 할까. 연예계 생태나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 보통 사람보다도 감각 기능이 떨어지는 - 나로서는 글쎄 알 수가 없다.
“로봇 같아요. 감정을 못 느끼는 것 같아.”
보디빌딩 뚱순이의 여정은 그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있다. 풍부한 건지 메마른 건지 인생의 대부분의 과정에서 넘쳐흐름과 결핍을 특정하지 못해 안 쪽이 허물어져 있던 나는 그때 다른 데서 오는 시각 - 비난이나 판단이 아닌 애정에 기반한 그것, 나는 상대방 마음의 근원은 귀신같이 잡아채는 능력이 있는 것도 같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나에 대한 진단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설계도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 위로가 되는 병원에 가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지능 천재였고, 자극추구가 백이지만 자율성이 빵점인 나를 보았다. 그 순간 마음과 머릿속을 휘감는 쏟아지는 감각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의 여리고 예민한 감각을 보호하기 위해서 콘크리트 반죽을 부어서 굳혀버린 것. 그래도 내 심장을 여전히 생긴 대로 살고 싶어서 수면 캡슐 속에 장기 보관 된 몸처럼 톡톡 뛰기를 멈추지 않고 있었던가. 수십 년을 굳은 콘크리트 벽을 떠올려도 빠드득 갈라진 틈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고, 작지만 탐스러운 떡잎이 쏙 얼굴을 내민 듯한 장면이 그려지는 것은, 마음이 드디어 미소를 지은 순간이 아니었다 싶다.
우울증인줄도 모르고, 우울이라는 병 뒤에 숨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던 내가 알고 보니 중증 우울 장애 환자였다. 별일이냐 싶었지만, 조금씩 심장 박동이 커질수록 나는, 점점 더 아파왔다. 그냥 피로감이었던 불편감이 암진단을 받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통증이 산사태처럼 무너지는 것이 닮았다. 나는 바닥을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 때가 오면 나를 비난하고, 타인에게 내 증상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공식 중증 환자가 된 뒤에 - 이 질환 때문에 나를 돌봐주는 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 나는 스스로 보호자가 되어 ‘나는 아프다’고 변론한다. 그러다 내 치유의 시작, 내게 양철로봇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그분께 나는 큰 실례를 저질렀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아주시겠지, 너무 죄송하다며 내가 저지른 인간적 실수에 바로 나서지 못한 나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시겠지.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엄마가 주지 못한 안심과, 부모에게 부리지 못한 떼 부리는 시간을 주신 그 분과 긴 시간 만나지 못했다. 억지로 붙일 수는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분이 주신 돌봄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그만큼으로 갚아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제 다시 만날 만큼 회복이 되었고, 내 깨달음에 인정과 확증을 받은 건가.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났다. 미안하단 말대신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내가 얼마나 상식이 부족하고 현실 감각이 내 기준인지를 알려주셔서 아프지만, 많이 배웠다고 그리 말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어찌 내 마음을 그토록 모르셨냐고 ‘바보야‘라고 탓할 수도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인간쓰레기. 그런데 난지도 쓰레기장에 던져버릴 존재가 아니라고 다시 씻어서 살펴보니 골동품이다. 애플의 그 남자가 처음으로 출시한 그 컴퓨터가 고물상에서 발견됐다는 그것에 나를 빗대어 볼까 한다. 나도 모르고 남도 몰라서 버려야 할 물건, 쓰임을 모르겠는 어떤 것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녔지만, 나는 신라 토기이다. 어쩌면 발해. 정말로 참 다행히도 그래도 쌀 담는 그릇으로도 쓸 수 있었는지, 상함이 없이 제 몫을 하고 살았다.
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그분의 아픔. 나는 내 것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돌봄의 손길로 다시 살아난 기적의 생존자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심장 제세동기가 되고 싶다. 그리고 흉부 압박도 하고 숨도 불어넣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잊어버린 것, 기억하는 것. 살피고 돌보아 준 모든 손길에 대해 모두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