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인 빌더

뚱순이 뚱돌이 우대 정책

by 투명물고기



아… 불편하다. 아마도 평생토록 뚱보로서, 적어도 그 정체성으로 살아온 내가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살이 찌니 불편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평생 뚱뚱해 본일이 없는 자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모조리 알고 있다. 틈은커녕, 출퇴근 시간 지하철 구호선처럼 미어터지는 허벅지의 교점. -점이 아니고 지역이지만. -


또 잠시 끼어드는 궁금증은 90년대의 신도림 역과 지금 시대의 구호선 객차 안 중 어디가 더 아우성이었을지, 나는 어느 날 할 수 없이 출근길의 구호선을 탔다가 가슴이 눌리고 움쭉달싹할 수 없는 경험 속에서 참사의 희생자들의 그 시간을 잠시 감각했기 때문에 떠오른 것이다. 겪어보지 않는 것에 대해, 일 퍼센트라도 같은 경험 해 보지 않고는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거나 교만한 것이지를 자주 생각함으로…



여튼 이어가자면, 그 허벅지 교접 지점은 잠시간 관리를 허술히 하면 살갗이 까지고 쓰라린다. 비만 단계의 따라 겨드랑이에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양말을 신기만 해도, 발톱 소재를 할 때에도 가슴 밑 불룩한 비계덩어리 때문에 무릎 쭈그림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갑갑함. 인류의 삼십 퍼센트-전적으로 추측일 뿐이지만 아주 넉넉한 수치를 잡은 거다-는 절대로 ‘안다 ‘고 할 수 없는 그 감각.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할 때마다 스쳐가는 것, 갖춘 옷을 입을 때면 뭉티기들이 곤란한 기분. 구체적인 실제가 아주 많지만 우리 뚱보들만의 비밀로 남겨두겠다. 대단한 비밀을 알려줄 것처럼 해놓고 이렇게 뻔한 예만 알려주는 것이 날씬보들에 대한 한방이다. 하하핫.



오늘 아침 샤워를 하다가 견갑골 사이 풍문혈 그 자리가 가려운데, 몸을 베베 꼬고 팔을 등판으로 휘감아 보아도 닿지 않는 고통 속에서, 결국 뚱보라서 불편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전과 같은 뚱뚱한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발레 스튜디오에 간 첫날에 플리에를 할 때마다 “스쿼트 하지 마세요!”라는 웃음 속의 칼날 같은 지적을 받았고, 요가 수업에서는 드디어 내 한계를 드러내 버렸다. 동작마다 써야 할 적절한 속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는 보디빌더. 겉근육이라는 대체품이 있으니 끝판에 갈 때까지는 자기 몫이 아닌 자리에서도 대행체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그 부서 수장의 부재를 감춰온 것이다. 그러다 요가 시간 마지막에 그날 수업의 한방, 끝판 자세를 해야 할 때가 오면 드러누워 버렸다. 아…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결국 고기를 씹지 못하고, GG를 치는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출간 작가이고, 목소리에 힘이 있어 먼 데로 퍼지는 작가가 되는 꿈을 꿔도 되는지 묻고 묻는 중이다. - 나는 꿈이라고는 가져 본 적이 없고, 패배주의에 쩔어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는 견디고 버티는 대신에 살아보고 싶어서.- 내가 글 솜씨가 있는지,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기도 할지, 내가 온전히 믿지 못하는 나의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정말로 정말로 소망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이런 꿈의 상상이 합당한 지 뇌세포를 자극해 본다. 그와 동시에, 목표로서 실체로 잡을 용기가 없는 안쓰러운 나를 잠시 안아주고 오겠다. 토닥토닥.


내가 열망을 품으면 무엇인가 사건을 낼 수 있는가. 내가 이뤄낸 것이 있는지를 되짚어 본다. 귀한 소망을 빼고 될법한지 가늠자를 꺼내 측정하는 것으로 내 마음에 보호막을 씌우는 것. 나는 어쨌든 이런 보호조치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나는 전설의 다이어터, 몸짱 시절을 살았다. 저명한 잡지의 한 면을 내 화보사진으로 채우는 기회를 갖는 것이 부상인 대회에서 애매한 우승을 했던 기억이 불안의 근거가 되었다.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했던 기억, - 모두가 웃을 테지만 나는 마지막 날에 눈물로 스피닝 페달을 돌리며, 올림픽 결승 무대의 선수의 심정이었다 - 그것이 성과를 낸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다. 편집자와 대회 관계자들 모두 내 사연과 정갈한 전달에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아름답지만 속 터지는 유리 천장인지, 객관화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개인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살을 많이 뺀 것으로 겨루는 일반 부문에서는 압도적인 우승을 했지만, 몸짱을 가르는 퍼펙트 바디 부문에 도전했을 때는 체지방이 십이 퍼센트가 되도록 몸을 만들어도 개인 우승은 하지 못했다. 세 사람을 묶어 개인 완성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세 사람이 화보의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애매한 감격으로 마무리했다.


어느 정도의 작가 재능이 있다고 치고, -이것도 얼마나 감사인지, 그 기쁨으로 감격하지 못하는 나를 이제 탓하고 지적하지 않는다 - 열정과 기도와 열망까지 더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온전히 내 모양으로 잡지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에 푸욱.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반발한다.


뚱순이로 빚어진 나에게 몸짱 도전은 안정적인 일등을 할만한 무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글을 써서 내 아픔을 드러냄으로, 나처럼 아픈 누군가에게 닿는 일로는 내가 압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내 소망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웅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푸웅경~


정말로 그 노래하는 시인이 읊조리는 그 음률이 내 심장 깊숙이에 스며들어온다. 나는 이제야 내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고, 그 자리에서 지치고 상한 내 마음이 광릉 수목원 중심에서도 특별 산소방에 들어가 온전한 치유를 경험한다. 그 광릉 수목원 안으로 걸어가는 과정에 이미 맑고 강한 피톤치드가 내 영혼을 감쌌고, 산소방에 들면 온전히 박혀들 것이다. 그렇게 믿어도 되겠는가?


응. 그렇다. 나는 이제 밖에서 답을 찾지 않아도 될까. 애매하고 불안한 내가 또 의문을 갖지만, 나는 그렇다고 긍정의 답을 하고 싶다. 입의 내가 마음의 나에게 들리게 전할 수 있을지 그건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맞아. 믿어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좋다.


나는 작가가 되어서, 상처가 약재료가 되어, 아픈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정말로 바라고 원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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