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되기로 한 날
따뜻한 디카페인 카페라테 숏 사이즈 샷추가 두유로 변경.
이게 내 스타벅스 레시피다.
무엇인가에 푹 빠질 때면, 나에게 품을 내주는 친구 같은 존재고,
긴 우울의 터널에서 나와 오랜만에 신을 신고 간 곳도 늘 가던 거기.
스타벅스에는 닉네임이 있다.
한국어 표현이 있는데도 영어단어를 쓰는 것은 멋이 빠진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별명이라고 하면 놀림거리 같은 이미지가 있고,
닉네임은 소망을 담은 무엇 같아서 좀 아쉽지만 어쨌든.
나는 십몇 전 전부터 공주엄마였다. 공주엄마 고객님.
그런데, 얼마 전 결심을 하고 이름 변경을 단행했다.
그 사연을 나누고자 한다.
익명에 세상에 익숙한 삶은 아니었다.
지구 환경을 위해 살지는 않아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선택할 수 있다면, 늘 아날로그.
사람과의 소통은 문자보다 통화, 통화보다는 만남이 좋은 구 시 대인인데,
어쩌다 보니 온라인 오픈채팅 세상에 기어들게 됐다.
다이어트 채팅방.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일상을 나누고 지혜를 구하고, 응원을 부탁하기도 하는 곳이다.
세상에서의 이름은 몰라도 대화명으로도 얼마든지 서로를 규정하고, 깊이 교류했다.
그곳에서 나의 첫 이름은 53**.
당시의 내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53**이었고,
기본 대화명 변경방법을 몰라서….
채팅방 닉네임도 부여받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오삼님이라고 불렀다.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 한 달… 어디에 살고 뭐 하는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알아갈 즈음,
누군가 제안했다.
“오삼님도 이름을 정해봐요. 의미 있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어요.”
깊은 고민 시작이다.
그곳의 친구들과 함께.
음.. 철학, 웃음, 가치관, 소망, 현실의 모사… 여러 가지 많은 제안이 오가고, 떠올랐다가 사라졌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나는, 공주엄마다.
나는 왜 공주엄마인가?
아들과 딸의 이름이 획하나 차이라서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헷갈리는 일이 많아서,
아들은 왕자, 딸은 공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시작이다.
우리 딸을 부를 이름을 정하기로 했을 때, 한순간도 고민이 없었다.
공주. 작명을 결심할 새도 없이 그냥 공주.
돌아보니, 내 세월이 들어있는 부름말이었다.
귀한 내 딸이 공주가 되어 살기 바랐다.
놀이터에서 “공주야~ 공주야~”부르는 것으로
그렇게 나는 별칭을 얻었다.
그게 분명한 나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비밀친구들이 있는 세계에서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공주.
나는 공주이고 싶었다.
현실은 재투성이라도 왕자님이 찾아와 주지 않아도
얼굴을 모르는 곳에서 나의 본마음을 만났다.
나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걸 상상만 해도 쑥스럽고 간지러운 기분이었지만,
나는 공주이고 싶다.
그때부터 나는 공주님으로 산다.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도, 내가 내 마음을 알고 스스로 그리 생각하면 됐다.
공식적으로 공주가 되고 싶어서,
변경한 닉네임을 가지고 두유라테를 주문한다.
”공주님, 음료 나왔습니다아~“를 상상하면서…
하지만 버디의 목소리
”공주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
헐… 누가 고객인지 모르냐?
공주 되기가 어려운 것은 공주로 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