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위의 왈츠
내 안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머문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깊다거나 예술가 기질이라는 말로 포장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타고난 유머로 웃음을 줄 수 있어도, 나는 때로 조커 같다.
그러나 이 우울의 선언은 패배도, 포기도 아니다.
오히려 바로 보고, 열등감 없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래전, 마음을 두었던 그 애가 내게 말했다.
“너는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야.”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내 어두움을 부끄러워했다.
활짝 웃으면 얼굴이 망그러지는 것이 싫어,
슬픔을 감추려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슬픔을 훈장으로 삼고 싶다.
너를 만나 소망을 품고, 사명을 생각한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기를.
상처가 별이 되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기를.
내 어둠이 약재가 되어, 누군가를 살릴 희망이 되기를.
나는 네 앞에 알몸으로 선다.
미워하던 내 몸 구석구석에 사과하며,
가만히 나를 어루만지고,
얼마큼 가능할지를 가늠해 본다.
이제 나는 너울너울 춤을 출 수 있다.
너를 바라보며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그렇다고 어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너와 함께여도, 어둠은 남는다.
다만 나는 이제,
어둠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를 가졌다.
지우개는 완전하지 않다.
쓱쓱, 싹싹.
정성껏 지울 수 있지만,
공책이 찢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잘 지워도, 연필이 지나간 길은 남는다.
빛이 드는 자리에, 그날의 흔적은 남아 있다.
나는 새 노트처럼 말끔하길 원하지 않는다.
상처를 기워낸 바느질 자국은
살아온 시간의 증거이자 자랑이다.
다만 이제,
아픈 노래로 가득한 음악 노트에
밝은 왈츠와 사랑의 세레나데도 적을 수 있다.
나는, 어둠을 지우는 지우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