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방 2부 2-1

2부 2-1

by 투명물고기

사랑이 왜 부끄럽니.


그녀는 평생 로맨스를 갈망했지만, 그 열망을 크게 드러내면 더 못나 보일까 두려웠다. 예쁘지 않다는 사실, 뚱뚱하다는 느낌이 선명해질까 봐 스스로를 닫아걸었다. 남에게 손가락질받기 전에 객관화라는 철조망아래 스스로를 집어넣어 두었다.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날카로운 가시를 박아서.


작은 교회를 다니던 학창 시절, 드럼을 치던 은철 오빠를 몰래 좋아했다. 그보다 이전에는 오빠의 친구 중 한 명을 골라 마음에 담기도 했다. 텅 빈 마음을 어찌 채울지 모르니, 친구들이 하는 마음의 고민을 - 십 대 여자애들이 할 만한 - 빌려다 로맨스가 없어서 아픈 거라고, 알 수 없는 휑함을 규정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일 뿐, 혹시나 누군가 다가와도 우스꽝스럽게 쳐내고 말았을 텐데, 비밀이어야 할 마음은 속살이 드러나 버리기도 했다.


일기를 열어 본 오빠가 친구들에게 누설했고, 수치심은 어린아이의 가슴을 덮쳤다.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겨둔 일기장은 그녀에게 성역이었다. 금색 자물쇠가 달려서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그건 기분만 내는 허술한 장치라는 걸 몰랐던 탓에 굳이 숨겨두지 않은 게 화근이었을까.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넓은 집은 오빠 친구들에게 놀이터와 같았다.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무리를 지어 비밀스러운 놀이판을 벌릴 때, 귀가 밝은 그 애는 알 수 없고, 알 필요가 없는 이상한 것들을 알게 됐다. 익숙한 커다란 신발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그럴 때면 마음에 품은 오빠가 왔는지 레이더를 켜곤 했다. 남자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온 집을 가득 채웠고, 관심 없는 척 방문을 걸어 잠갔지만, 마음은 자꾸 밖으로 쏠렸다.


“야, 준석이 동생이 태훈이 좋아한다면서? 오오~ 좋겠다. 준희야 나와봐, 태훈이 왔다. 큭큭큭.”

“야, 뭔 소리야! 미친놈.”

낄낄거림이 문틈을 타고 흘러들었다. 순간 귀가 달아오르고 손끝이 얼어붙었다. 문을 열 수도, 그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오빠 친구들은 장난으로 떠들었을 것이다. 귀여운 막내 동생의 순정의 무게를 알만큼 세심한 아이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여자아이에게 그 관심은 놀림으로만 읽혔다. 숨이 막혔다.


“얘 일기장에 다 써놨더라.” 오빠는 심각성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었다.

“오오~ 준희 다 컸네.”


그녀가 기저귀 갈던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들은 무람하게 농을 던졌다. 그녀는 얼어붙었다. 열 살이 갓 넘은 아이의 비밀은 세상에 내놓아선 안 될 것이었다. 그것이 탄로 난 순간, 세상 끝에 서 있는 듯한 굴욕이 몰려왔다. 남자애들은 곧 다른 이야기로 옮겨갔지만, 아이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나 같은 뚱보가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그 사실이 들통난 하루, 그날 이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더욱더 감춰야 할 부끄러움이 되어버렸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게 달아둔 철조망 높이는 당연하게 훨씬 낮아져 버렸다. 배를 땅에 붙인 낮은 포복 자세 외이는 어떤 것도 허락할 수 없도록 했다. 뜨거운 지열이 땀으로 붉은 땀띠가 되었고 한 겨울 한기가 몸통을 전부 꽁꽁 얼렸다. 하지만 고통 역시 오롯이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는 게 그녀의 방식이다. 스스로 떠나버린 오빠의 장례식에서조차 그 기억이 따라왔다는 걸 보면 여간 충격이 아니긴 했다보다. 이미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그 오빠의 아내가 그 일을 알면 어떡할까 하는 수치심이 솟았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에게도 말한 일이 없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스스로 감췄기 때문인지, 어른들과 친구들이 알고도 꺼내서 보듬어주지 않아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그녀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로맨스는 -삶이라고 해도 좋은 어떤 것- 그녀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함부로 살고 싶었지만, 건드려주는 이 없는 슬픔은 스스로에 대해서 더욱 화가 나게 했다. 스스로를 ‘뚱보’라 부르는 것도, 기민하게 선수 치는 것이겠지. 타인이 그렇게 부르기 전에 스스로 예방주사를 놓고 면역을 튼튼히 하지만, 마음에는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굳은살이 속살을 숨겨 무감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여린 피부 스스로가 강해질 수는 없다. 굳은살을 걷어내야 할 때에는 무엇이 본래 살인지 몰라 피가 나고 말 것이다.


음란한 충동을 막는 ‘정숙함으로 인도하는 신의 돌봄’이라며 비만을 포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나 만나고, 아무렇게나 지냈던 시간도 길었기에 신의 손길에 순종하지 않은 그녀는 여전히 할 말이 없다. 그녀는 늘 사랑을 꿈꿨고, 로맨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사랑에 관해 남는 것은 적었다. 늦은 첫 키스, 어쩌다 불을 지핀 욕망. 마음 깊숙이 남은 건 접어둔 편지처럼 정리되지 않은 자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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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떠났을까.



대체로 만남은 시작, 중간, 끝으로 이루어진다. 무엇이 더 무겁고 중요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먼저 꺼낼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녀는 안심을 위해 앞에서부터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애에 관해서 만큼은 헤어짐을 먼저 말한다. 그가 떠난 이야기.



그들은 꼬박 십 년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내도록 소중히 여거진 기억이 없어, 그도 같은 마음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러나 박하게 계산해도 그 관계는 특별했다. 서로의 연애사를 나누었고, 힘든 일이 닥치면 기대었으며, 기쁜 일은 가장 먼저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있었는지 점검했고, 설령 전부를 털어놓지 못했어도 둘 사이엔 편안함이 있었다. 설명할 필요 없이 받아들여지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드문 위안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앞서가는 사람의 역할을 맡았지만, 그 애는 늘 위태로운 그녀를 느꼈던 모양이다. 아픔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그는 그녀보다 먼저 알아채곤 했다. 안아달라고 말할 줄 모르는 그녀였지만, 늘 어딘가로 쓰러질 듯했다. 남들 눈에 만족스럽지 못한 이들에게 안기곤 했고, 그 모습은 그에게도 불편했을 터였다. 그녀 또한 알면서 눈을 감았겠지.

무슨 뜻이었을까. 사랑에 정신없이 빠지던 -하지만 사랑은 모르는- 그녀를 보고 그는 말했다.

“사랑하면, 아껴요.”

그의 말은 의문 부호와 함께 오랜 시간을 그녀의 가슴속에 머물렀다. 맛있는 과자가 생기면 질리도록 먹어버리는 그녀, 좋아하는 마음은 말로 떠들어서 희미하게 하고자 만드는 사람.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서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여온 시간들. 그래도 그녀는 그의 말 한마디 만큼은 -사랑하면 아끼라는 그 말- 몸에 꾹꾹 담아두었다. 실천할 수 없는 지침이라 생각하면서도, 너에게만은 그렇다고 생각했을지…






서른 살의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그 애를 만난 그녀는, 생명을 품고 있었다. 여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산달이 찬 아이는 언제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던 그날의 평범한 만남은 마지막 데이트가 되었다.- 그저 저녁 식사였다고 해도 어쨌든 낭만을 사랑하니까, 데이트라고 하겠다.


이런저런 습관 같은 대화를 이어가다가, 헤어질 무렵 그가 말했다.

“누나, 편하게 신고 다닐 운동화 하나 사줄게요.”

그녀는 자동적으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면 비싼 걸로 사줘.”

예상한 거절이었다. 그녀는 본래도 남에게 받는 기쁨을 편안히 누릴 수 없는 사람이었고, 더욱이 그 애의 주머니를 비우게 하는 건 그녀의 선택지에 없었으니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짐짓 강하게 밀어붙였다.

“누나한테 신발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래요.”

편히 받아 고맙게 쓸 수 있는 성정이 아니지만 전에 없이 완고한 그의 태도에 못 이겨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무엇인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이지만 불안인 그녀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그 애가 그렇다면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유리창 너머로 운동화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사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의 표정은 잠깐 굳었지만, 곧 웃으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에는 고무 냄새가 가득했고,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흰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이거 어때요?”


그녀는 한참 머뭇거리다 발을 넣었다. 하얀 운동화를 신어본 일은 없었지만,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새 운동화의 기분 좋은 불편함이 마음을 실어 올렸다.

“우와… 예쁘다.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야?”

그는 말없이 계산을 부탁했고, 곧장 집 앞에 데려다주었다. 운동화 상자는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기쁘면서도 쉽게 소비할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새 신발 냄새만 희미하게 퍼졌다.






다음 날,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메시지를 띄웠다.

“나, 순산했어!”


분만실의 형광등은 사소한 것까지 드러냈고, 휴대전화는 축하 메시지로 북적였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기다리는 축하의 말이 도착하지 않았다. 어찌하여 연이은 알림 속에 왜 그의 메시지가 없을까. 분만실에서 나오기도 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 뚜—.


짧은 진동 사이로 연결음이 이어졌다. 받는 소리가 났고, 잠깐의 잡음이 섞이더니 통화는 끊겼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산모로서 할 일이 많았다. 몇 주가 흐르고 엄마가 된 것이 실감 날 무렵,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만이 퉁명스럽게 흐르고. 그의 번호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가 사라진 것일까.


처음부터 마음을 단속해 온 그녀였지만, 그를 향한 마음은 크기를 잴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안전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기적이라 여기던 그녀도, 그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게 말했다. 온전히 순수하고 바람 없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어쩐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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