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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가게가 있나요?

by 삼도리


언젠가부터 어렴풋하게 꿈꿔온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단골 가게'가 생기는 것. 아마 누구나 품고 있는 하나의 낭만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라도 '여긴 내 단골 가게야!'라고 할 수 있을만한 연결고리가 있는 공간.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자 어떤 장면을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을만한 곳.


때는 2년 전 크리스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자친구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여기저기를 알아보던 중, 동네에 위치한 작은 와인바를 발견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 보였고 그렇게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직장인이었던 부부가 요리와 와인이 좋아서 함께 차린, 소박하지만 따뜻한 공간이었다. 가게에서도 오픈 후 처음 맞는 대목인 만큼, 메뉴에 공을 들인 흔적이 느껴졌고 준비해 주신 작은 선물과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애정과 따스함이 전해졌다.


그때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2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면.. 매일 보는 얼굴이라 몰랐지만 그동안 꽤나 늙었구나..ㅎㅎ




그렇게 또 1년이 흘러 23년의 크리스마스, 자연스럽게 그 가게가 떠올랐다. 특별한 날에 방문해서인지 여전히 기억에 남았고 그때의 따뜻함을 올해에도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1년이 지난 만큼 메뉴는 좀 더 완성도가 높아졌고, 동네에서도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지 가게를 찾는 이들도 꽤나 많아진 듯했다. 일 년 만에 방문했음에도 어딘가 친숙한 공간과 사장님.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우리를 알아봐 주시는 사장님 덕에 꽤나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4년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여자친구와 나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그 가게를 떠올렸고, 그렇게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지난 1년간은 가게에도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꽤 유명해져서 파리 올림픽 행사에 참여해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고, 좀 더 쾌적한 공간으로 장소를 이전했다. 2년 전보다 찾는 이들도 훨씬 많아지고,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여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는 듯했다.


반갑게 들어선 가게에선 사장님이 너무나도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해주셨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찾아오는 우리에게 감사 인사까지 전해주셨다. 내 연락처를 크리스마스 날짜로 저장해 두셨다는 사장님의 이야기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공간은 달라졌지만 따뜻한 공기는 여전했다. 사장님의 친절함도 여전했고, 메뉴의 퀄리티는 해가 갈수록 수직상승 하는 기분이랄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리의 예약을 받고, 사장님은 문득 2년 전 선보였던 메뉴를 사진으로 다시 꺼내보셨다고 한다. 지금 다시 보면 그때의 메뉴가 너무 부끄럽다는 사장님.


"그때도 진짜 맛있었어요!"


그때도, 지금도 맛있다.

요리의 퀄리티는 물론 지금이 더 좋겠지만, 한결같이 맛있다는 것은 아마 공간이 전해주는 분위기와 경험으로 기억이 채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단골을 만드는 가게의 매력은 서비스와 사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음식의 맛은 일정한 기대치를 넘어서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반가운 마음에 사장님은 이것저것 서비스를 내어주셨고, 올해도 역시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추억을 남겨주셨다.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찾아왔던 손님이, 매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에 감동을 느끼시는 듯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단골 가게가 생겨 반가운 마음이자, 우리 역시 만남을 시작하던 때부터 결혼을 앞둔 지금까지 매년 추억을 담아 오는 공간으로서 애틋한 마음이 있다. 더불어 매년 성장하는 가게의 모습을 보며 응원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특정 시기가 찾아오면 떠오르는 단골 가게가 생겼다. 이제는 연중에 다녀오고 싶어도 크리스마스를 위해 참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지만..! 매년 추억을 쌓아오고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매일같이 찾는 공간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늘 머무는 공간이라면 그게 단골 가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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