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
두 번째 퇴사를 경험하고 다시 긴축 재정에 돌입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첫 번째 퇴사 후 9개월간 긴축 재정을 하며 밥값을 아끼는 일에도 꽤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월급이 들어오니 벨트를 바로 느슨하게 풀어버렸다.
이제 두 번째 퇴사를 맞이했으니 다시 벨트를 조여야 할 때. 가장 먼저 고정비를 줄여야 했다. 알차게 쓰고 있던 유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했다. 까짓 거 광고 몇 편 보고 음악은 스포티파이 무료 버전으로 들어야지.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유튜브는 주로 밥을 먹을 때 켠다. 자취를 하다 보니 혼자 밥상을 차릴 때, 유튜브는 밥상에 온기를 더해주는 요긴한 녀석이다. 아무 채널이나 대충 누른 후 밥을 준비하려는데 역시나 바로 광고가 뜬다. 그래, 광고 보면 요즘 트렌드도 알게 되고 아무렴 좋지 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
유튜브 무료이용자라면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광고다. 가구 브랜드 데스커의 광고인데, 생각 없이 밥을 차리던 내 귓가에 문구가 쏙 박힌다. '요즘은 광고도 심플한 게 대세인가. 단순해 보이는데 문구 잘 뽑았네.'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광고에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 요즘 느끼는 가장 큰 위로라 함은,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이다.
'혼자가 아니구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순간.
나의 사회생활을 다시 돌아본다. 6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며 점점 나 자신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라는 건 평생 해야 하는 것인데,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지금의 내 모습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1년 간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적어 내려가며, 마침내 6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하지만 그때도 막연하게 느끼는 '해보고 싶은 일들'만 있을 뿐, 명확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막연해 보이는 몇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다. 직접 부딪치고 깨져봐야만 나를 알게 되고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카페 바리스타, SNS 매거진 촬영, 콘텐츠 에디터,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리고 브런치 작가까지.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경험했던 일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했음에도 결국 나는 9개월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왜였을까.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혹시 다른 회사에 다닌다면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결혼도 해야 되는데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그렇게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이전 회사와는 다른 환경과 분위기였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 비로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선명해졌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나로서 완성되는 것들.
내가 생각하고 기획하여,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사진과 영상을 찍고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런 일들은 아침부터 잠이 들기 직전까지 몰입해도 지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살고 있다. 당연히 아직은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먹고살 수 있는 수입이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렇기에 스스로의 가치를 꾸준히 만들어 가야 한다.
첫 번째 퇴사를 하고 딱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경험들을 했고, 안 좋게 말하면 많은 길을 구불구불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과 선택 또한, 그동안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든 것들은 겪어봤기에 아는 것이다. 이미 내린 선택에 후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
구불구불 돌아오며 마침내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몰입할 수 있고, 무엇보다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말을 참 멀리하며 살아왔다. 당장 고민할 것들이 많고 걱정되는 것들이 많은데 행복이라니, 너무 멀리에 있어 닿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행복하다. 아직은 불안한 행복이지만 조금씩 완성해 나가는 재미가 있다. 목표를 품고 차곡차곡 열심히 쌓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지곤 한다. 그런 기대감을 품고 하루, 하루를 쌓아본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