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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10. 2023

외롭다는 건 자아를 찾고 있다는 뜻

[ㅇ] 외로움
근대를 겪어온 선조들에게서부터 전해져 온 숙명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순 있으나, 알을 깨고 나오듯 결국은 혼자 넘어야 하는 감정


  학과 막론 대학생이라면 '론'으로 끝나는 수업을 기피하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처음 도전한 국문학과 전공 수업이 <국문학개론>이라 다시는 얼씬대고 싶지 않아 졌다. 한 학기 동안 호되게 당했다. 그럼에도 다음 학기가 시작되자 못내 아쉬워 한문학도 들어보고 소설 이론도 배워봤다. 몇 번 깔짝댔다는 뜻이다.


  소설의 꽃은 근대 소설, 그중에서 근대를 관통하는 건 '근대인의 외로움 자각'이라고 한다. 근대에 우리나라 작가들이 외로움을 자각하면서부터 외로움에 시달리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때로는 "도시 사람인 나는 이런 외로움을 다 느껴보는데, 너네는 이런 것도 모르고 안타까워라(*실제 인용 아니고 제가 예시로 드는 겁니다)"라며 도취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대인들의 고질병인 외로움이 몇몇 근대인들에게는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게 신박했다.


  근대 소설의 키워드는 '자아 탐색'이다. '외로움의 자각'이 '자아 탐색'의 일종인 셈이다. 깔짝댄 수준이라 전공자 지식은 못돼 이만 설명을 줄이겠지만, 내게는 이러한 개념이 한 줄기의 위로와도 같았다. 외로움의 정의를 새로 추가하면서, 외로움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과거 회상은 썩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나 외로움이 자아 탐색의 일종이라면, 외로워하던 나날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 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반이 같은 친구들보다 집 가까운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내기 마련이었다. 저학년 때 세 들어 살던 곳은 주택이었고 주변도 주택이나 빌라였다. 학교 코앞거리인 아파트 사는 애들은 그 애들끼리, 나는 주택 사는 친구들과 하교했다. (4학년부터는 격 없이 어울렸다) 한 번은 친구와 하교하다가 전날 언니한테 맞은 걸 얘기하자 친구가 화들짝 놀라 했다. 어느 집이건 형제자매끼리 논 탓에 친구도 언니를 잘 알고 있었다. 친구는 언니에게 찾아가 "언니가 칠칠이 때렸다며, 정말이야?"라 묻는 순수함을 보여주었다. 친구의 순진무구함에 언니는 열이 뻗쳤고 나는 호되게 혼났다.


  보통 같으면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바로 말할 텐데,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언니는 왜 화난 것이며, 엄마까지 왜 언니 편을 들어주는지 답답했다. "언니가 날 때리는 건 사실이잖아.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왜 혼내는 건데!" 억울한 마음에 엉엉 울었다. "집에서 벌어진 일은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니란다" 엄마는 그리 주의를 주었지만 엄마의 말은 치사빤스처럼 느껴졌다. "나 혼낼 시간에 언니가 때리는 거나 뭐라 해!"라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언니의 폭력 수위는 나이치고 심한 편이었다. 폭언, 폭행이 합쳐졌고 기분이 상했다 하면 손을 올리니 억울하게 맞는 나날이 많았다. 기분이 풀리면 잘해줘서 어린 내 기분도 금방 풀렸지만 하도 반복되니 트라우마로 번졌다. 과정은 서술하지 않겠다. 다만 심할 때는 집에서 도망쳐야 했는데 달리기 빠른 언니를 이길 자신이 없어 차 뒤에 숨었다. 날 잡으러 나온 언니가 도로 집에 들어갈 때까지 숨죽이고 있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추격 끝에 차 뒤로 숨다가 발각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17살 적 비 내리던 날 도망친 걸 끝으로 언니의 폭력은 종결됐다. (폭언은 좀 더 이어졌지만 현재는 폭언 또한 멎었으니 괜찮다.)




  부모님 딴에는 언니를 혼내고 있다는데 언니는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조차 힘이 못 되어준다는 데에 느끼는 무력감은 커져갔다. 엄마는 직장에 있고 아빠는 타지를 떠도니 언니랑 둘만 있는 상황은 숱하게 찾아왔다. 언니 또한 타지로 나가 살 때까지 언니의 귀가가 그리 싫을 수 없었다. 자라면서는 언니뿐만 아니라 부모님과도 부딪쳤다. <대학이 뭐길래>란 매거진에서도 서술한 바 있듯 대학을 강제로 가라 하면서도 입시에 관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부모님이 솔직히 말해 미웠다. 셋(부모님과 언니)이 합세해서 대학 안 가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굴면서도 무얼 의논하려 하면 "모른다"는 말로만 일관하니 외로웠다.


  외로울 때면 하천가를 나가 하염없이 걸었다. 친구들에게 전화 걸고 싶다가도 이전 [ㅅ] 편에서 서술했듯 낮은 자존감에 그러지도 못했다. 가족이 아닌 이들, 친구나 선생님에게 학교 밖에서 기대려는 건 잘못이라 생각했다. 미안할 짓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답답함은 풀리지도 않은 채 쌓여만 갔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가족들 사이의 대화를 주도하며 서로의 문제점을 자각했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니 나도 가족의 지난 행동을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엄마의 주의에도 곧장 고치지 않았다. 이후에는 "할 말이 있는데, 우리 언니한테는 안 말하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란 서두로 시작했으니 언니가 또다시 날뛰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큰 배신감을 느꼈다. 알고 보니, 언니나 엄마도 집안 대소사를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이후부턴 서두 없이 말을 꺼냈다. 그래, 누구에게든 말해야 산다.  




  성인이 되면서는 학교란 공통분모를 벗어난 덕인가, 대화의 주제가 넓어졌다. 우리 가정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의 이유로 외로움에 힘들어했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감정을 달랠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니, 꼭 말하지 않더라도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됐다. 내 얘기에 귀 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 나은 모습을 갖추며 가족과의 사이도 좋아질 수 있었다.


  그렇다 하여 지금 외롭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외로움은 숱하게 찾아온다. 근대인의 숙명이자 현대인의 고질병인데, '이겨낸다'는 개념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외롭지 않다"는 말은 하지 말자. 이런 가정을 세웠다간 외로움이 감당 안 될 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니 말이다.


  "나는 지금 외롭지 않지만 언제든 외로워질 수 있다, 하나 지나가면 그만이다."

  혹은

  "나는 지금 외롭지만 그래서 뭐? 사람이면 외로울 수도 있지. 감정 하나가 평생 갈 리 있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디 올린 적 없지만, 외로울 때 글이 제일 잘 써지는 거 보면, '창작'에 있어서는 외로움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창작 욕심 냈다가 하염없이 부풀어 가는 외로움에 잠식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지. 외로움이 맛 좋을 리는 없다. 어쩌다 한 스푼 정도만 맛보고 달달한 다른 감정을 찾아가자.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고사이다. '새옹지마'는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란 의미로, 길흉화복(吉凶禍福)과 비슷한 개념이다. 노인이 말을 잃어버렸는데, 그 말이 짝과 함께 돌아오고, 아들이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 덕에 징집이 안된다는, 길흉화복의 반복이 일어나는 고사다. 흉을 외로움이라 보긴 멋쩍지만 반복에 주목하고자 들고 왔다.


  오늘의 외로움은 내일의 즐거움으로 뒤바뀔 테니 외로움 그까짓 것, 휙 넘겨버리자.


  외로움 해결 방안을 저마다 알아내는 게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다.  


'외로움'의 용례
1) 외로움이 네 앞날을 망칠 일은 없어
2) 외로움을 골탕 먹이고 싶다면 소리 내서 웃어보자


외롭던 수험생 시절, 옥상으로 이어지는 5층에서 책 읽는 게 낙이었습니다. 사색의 공간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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