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아빠의 파일을 정리할 때가 됐다!

by 밀과참

나는 아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야는 착햐~"란 말에 귀가 반응할 테다. 이 말을 풀이하면 "야는 착하기만 햐"에 더 가깝다. 고로 이 말을 듣고 달가워할 충청도인은 적으리라.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난 우리 아빠는 충청도 처녀와 만나 충청도에서 자식들을 낳고 키웠다. 어쩌다 보니 인간관계가 충청도인(人) 투성이가 된 셈이다. 아빠가 언제부터 이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기억에 의하면 내가 꼬꼬마 시절부터 아빠는 이 말을 들어왔고, 아빠가 있을 때를 비롯해 없는 자리에서도 이 '착하다'는 말은 지겹도록 아빠를 따라다녔다.


아빠는 이름 석자보다 '땡서방'으로 더 통용됐다. "땡서방 착하지" "땡서방이 착하긴 하지" "땡서방은 착하기만 하지" 등등 문장 형태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다만 대개의 경우 '땡서방' 앞에는 안 좋은 수식어나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어린 내 귀에도 저 말엔 틀림없이 악의가 있다는 게 전해질 정도였으니. 지금도 아빠는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발화자인 어른들의 표정이 훨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아빠는 쯧쯧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짓을 꾸준히도 저질렀다. 사회적인 피해자가 있는 건 아니었고 가정 내 피해자로 엄마와 토끼 같은 두 딸이 있었다. 두 살 터울인 나와 언니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 돌봄에 있어선 그리도 가정적이었다는데 왜 엄마만은 힘들게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첫 번째 이유는 돈이겠지만 일을 그리 몰고 간 아빠의 심정은 궁금해 죽겠다. 아빠는 언제나 입을 다문다. 아빠에게서 정보를 캐내기란 쉽지 않으며, 정보 중에서도 아빠의 감정만큼 알아내기 어려운 건 또 없다.


나는 아빠가 궁금하지만 아빠는 내게 말해주는 법이 없다. 내 눈과 귀, 그리고 어른들의 입, 간신히 꼬드긴 끝에 받아낸 아빠의 일부 기억만으로 정보를 종합할 수 있다. 내 머릿속 '아빠 파일'은 사사건건 다 말해주는 엄마의 파일과 달리 지나치게 얇다. 엄마의 정보는 아빠와 엄마가 만나기 이전치 분량도 다분한데, 아빠의 정보는 엄마가 있기에 그나마 이 양이 나올 수 있다. 공간까지 그려낼 수 있는 엄마의 유년 시절과 비교되게 아빠의 유년 시절은 희미하다 못해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아빠의 졸업 사진으로 청소년기 아빠의 얼굴이나 간신히 그려낼 따름이다.


착하다는 소리를 들은 아빠와 착하다는 소리를 한 어른들. 이럴 때 심판은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 금의 내가 어린 내게 물으면 쌍방 과실이란다. 선빵은 아빠의 잘못이었지만, 어른들이 "야는 착햐"다며 아빠를 구박할 동안 아빠는 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특유의 묵묵함으로 온갖 비판과 비난을 다 들었다. "외할머니댁 가봤자 뭐 좋은 소리 듣는다고" 싶은 우려가 무색하게 아빠는 오뚝이마냥 방문했다. 아빠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엄마 빠돌이'라 엄마 말 한 마디면 곧장 나타나기도 했다. 저축, 말수, 배려, 화합, 현실 감각 등 가정의 필수 요소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래도록 몸을 감추는 법은 없었다. 엄마가 가라 하면 갔고 오라 하면 왔다. "사랑이 뭔지. 저리 사랑하는 상대에게 잘못은 왜 저질러 가지곤" 어린 나는 아빠의 구애인지 사죄인지 모를 행동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혼만큼은 제발 안 된다"는 아빠의 청을 들어줬으니 아빠는 앞으로도 엄마를 이기진 못할 테다. 아빠 스스로도 가부장적으로 바뀔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내가 아빠 이야기를 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집 서열 꼴찌로서 가장인 엄마나 성질이 불 같은 언니를 주제로 쓸 순 없다. 들키는 순간, 비 오는 날 먼지 날리게 도망칠 각오를 해야 되니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게다. 기왕 뱉을 거면 좋은 말 90, 안 좋은 말 10 정도로 농도를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하나 아빠는 서열꼴찌의 되바라짐에도 묵묵히 있을 거 같단 기대가 들었다. "아빠 얘기를 써 봤어" 하면 "뭔 얘기?" 라고 묻는 대신 "그랴" 하고 말 사람이 우리 아빠 아닌가.


아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아빠 미워!" 하고 등을 돌려도 아빠는 절대 등을 돌리지 않는다. 한참 있다가 "아빠 미안해"란 사과 대신 쭈뼛쭈뼛 다가가 "아빠, 안뇽?" 말만 걸어도 빙구 같은 웃음을 내보인다. '착하다'는 말 다음으로 많이 들은 게 '바보 같다'는 타박인데, 이쯤 되니 우리 아빠의 위상이 너무 안 서는 것도 같다. 여기서 내미는 카드는 별 수 없이 사랑뿐이다. 아빠가 엄마를 중히 여기듯, 아빠를 향한 내 사랑 또한 딱히 꺼질 일은 없어 보인다. 아빠가 숱한 잘못을 반복하면 불씨야 약해지겠지만 꺼지진 않을 테다. 이게 아빠가 가장 바라는 일이고, 이것만 있으면 '평생 용서권'을 취한 거나 다름없다. 서열 꼴찌가 아빠에게만큼은 나댈 수 있는 이유다.


나는 아빠를 잘 알지 못한다. 아빠가 궁금한 딸로서 아빠에 대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그 또한 궁금하다. 아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아빠가 당한 손가락질을 슬슬 묻기 위해선 변호에 나설 차례다. 충청도 어르신들, 제 말 좀 들어보셔유. 우리 아빠 욕해도 내가 욕랑께!


휴대폰에서도 없어질 일 없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