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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16. 2023

내 눈엔 울 엄마가 제일 똑똑해

장문주의!

[ㄸ] 똑똑하다
객관성이 깃든 천재란 말과 달리,
애정에 따라 주관적으로 쓸 수 있는 칭찬


  딸의 콩깍지 두께도 감안해야겠지만 엄마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일 잘하고, 살림 잘하고, 시답잖은 질문에도 다 대답해 주는 똑순이 엄마를 보면서 '엄마처럼 되어야겠다'란 생각보다 '엄마를 따라잡을 순 없겠다'는 경이감이 먼저 찾아들었다. 키가 지금보다도 훨씬 작은 시절엔 엄마의 일터(* 당시 관리사무소) 주변을 맴돌며 엄마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입구에 계신 경비 아저씨들, 지하에 계신 수리 아저씨들, 곳곳에 계신 청소 아주머니들이 내가 엄마 딸이란 이유로 예뻐해 주는 게 신기했다. 엄마의 현 직장에서는 엄마보다 어린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적만 해도 엄마는 일터에서도 막내였다. 집안에서도 막내, 일터에서도 막내. 그런 엄마 주변에는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엄마는 부업 꾸준히 하였다. 인형 눈을 달거나, 웬 물건에 고무를 씌우거나, 신문 배달을 다니거나, 빵을 판매하는 등등 여러 부업이 엄마의 나날을 거쳐갔다. 사장님들은 엄마의 사직(辭職)을 언제나 아쉬워했다. 지금은 관리소도 떠난 지 오래인데, 일터를 더 큰 데로 옮기든 더 작은 데로 옮기든 엄마를 붙잡으려는 이들은 늘있다는 게 경이감에 힘을 더했다.


  집안의 막내라 하여 좋은 대접만 받은 건 아니었다. 어리광 부릴 시간에, 일터 나간 부모님과 학교 간 언니오빠들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돈 많이 주는 대기업을 결혼 때문에 관두었다가 생계를 위해 전선에 다시 나와야 했을 때, 재고 따지는 거 없이 불러주는 곳으로 갔다. 새로운 직장에 간들 금방 적응하는 '일머리 좋은' 엄마가 위대해 보였다. 하나 엄마는 공부라면 질색하는 통에 '똑똑한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기보단 멋있어했다. 질투 어린 존경이 아니라 순수한 존경이었다. 엄마의 '똑똑이들' 예찬을 어릴 적부터 들으면서 '잉?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건 울 엄마 같은데' 그런 마음을 가졌다. 학문적인 지식 말고 세상살이에 관한 지식에 있어선 엄마가 따봉이었다.




  엄마의 사 남매는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 넷 중 엄마만 공부하길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상위권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학생이라면 자고로 공부해야 한다>는 신조에 따라 대기업에 합격한 고3 때까지 공부를 놓지 않았다. 엄마는 두 딸인 언니와 내게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았으나 우리 둘은 초등학교 다닐 동안 꾸준히 성적이 좋았다. 그렇다고 칭찬을 들은 건 아니었다. 엄마에게 <先 공부, 後 좋은 성적>은 당연한 공식이었다. 한 번은 언니와 내가 쌍으로 토로했더니, "60점에서 80점으로 오른다면 그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매일 90점대를 맞는 건 칭찬할 일이 아니다"라 대답하였다.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하며 흥미 있는 과목만 공부하는 편식을 부렸다. 그런 언니 옆에서 눈치 봐 가며 더 열심히 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국어를 만점 혹은 하나 틀렸다. 전과목에서 하나 틀린 건 절대 아니고 국어 동점자가 없다는 데서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않았는데 중학교는 남달랐다.  시험을 잘 봤다는 것만으로 선생님들의 시선이 쏠렸다. 서너 개를 틀려도 "칠칠아, 이번 시험은 결과가 아쉽구나"란 소리를 들었다. 공부 시간은 나날이 늘어가는데 첫 시험 때의 가벼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압박감 날로 커지면서 전교 등수는 매 고사마다 하락세를 기록했다.


  힘들어하는 내게 엄마가 건넨 말은 "괜찮다"는 위로가 아니라 "공부 방식이 틀렸으니 고라"는 조언이었다. <先 공부, 後 좋은 성적>이 당연한 엄마의 눈엔 先인 공부 방법이 문제점으로 비추어졌을 테다. 그러나 그 말을 기점 삼아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어차피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란 게 아니었다. 엄마는 낮은 성적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내 성적 하락을 의아하게 여길 뿐이었다. 공부 포기 선언에 엄마는 그러라 했다. 공부에 매달리지 않자 고등학교 올라가선 성적이 더 떨어졌는데 꾸중 한 마디 듣지 않았다. 공부를 덜 했으니 중위권으로의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우리 모녀는 그리 여겼다. 공부 강요 안 하는 엄마는 내 자랑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다른 엄마도 아닌 우리 엄마가 대학을 강요하는 건 도무지 납득이 안 됐다. 중학생 때야 성적이 좋았으니 우수한 고등학교에 진학 가능했지만, 최종 중하위권을 기록한 성적으로는 앞이 깜깜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품은 신조는 <학생이라고 공부만 할 필요는 없다>였다. 공부를 덜 하면서 관심사인 그림과 책에 열중했고, 미술을 관두고 나선 주야장천 책만 읽었다. 어찌 됐든 길은 나오는 법인지 한 우물 파기는 좋은 꼼수가 되어 주었다. 문학만 파댄 탓에 어문학과 골인 지점엔 들어설 수 있었다. 어문학과를 강조한 이유는 다른 학과 썼다간 정문을 기웃거리지도 못했으리란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기뻐했지만 내겐 기쁜 일이 아니었다. "엄마 때문에 대학 가는 거지" 별생각 없이, 내 딴에는 당연한 말을 한 거였는데 엄마는 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네가 그런 마음일 줄 몰랐다"는 엄마의 반응에, 혼자 배신감 느끼며 애 먹은 지난날이 스쳐갔다. 엄마의 대학 가란 말이 입시 악몽의 시발점이었는데 칭찬 한 마디 없이, 그렇다고 정보 한 마디 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엄마가 솔직히 말해 미웠다. 엄마 껌딱지였던 시절이 무색하게 그놈의 '공부' 때문에 거리가 벌어졌다. 엄마가 그토록 싫어하고, 내게는 스트레스의 원천이던 공부. 우리는 똑같이 공부를 싫어했지만 친구 관계가 아니고 부모자식간이기에 결국은 공부로 부딪치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자 엄마에게도 알려주고픈 신기한 것들을 날마다 배웠다. 대학에서 다루는 내용 책을 통해 익힌 잡지식을 섞어 말하면 엄마는 마냥 신기해했다. "엄마는 똑똑한 사람이 참 좋아"란 말에, 어린 나는 '엄마도 똑똑한데'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 엄마 딸?" 하며 낄낄 웃어댄다. 그러면 엄마는 "그렇다"며 깔깔 웃는다. 석박사 학위가 넘쳐나는 세상에 학사 학위도 아직 얻지 못한 자로서 할 말은 아니다. 하나 내게 학위 같은 객관적인 지표는 필요 없다. 엄마와 잦은 갈등을 겪은 끝에 깨달았다. 엄마가 바란 사회적인 인정은 넘겨버리고, 나는 엄마 앞에서만 똑똑하고 싶다고.


  두 딸을 데리고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엄마의 지식은 '산다'는 행위에 치중되어 있다. 이율, 주식, 나라 복지, 살림 등 실질적인 팁들이다. 반면 문학도(人文學徒) 딸의 지식은 '인간과 삶'이란 큰 개념에 치우쳐져 있다. 대문호들의 행적, 그리스로마 신화, 지구촌 이모저모 문 등이 섞여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엄마의 가르침이 듣고 싶다. 엄마가 말해주는 알뜰한 지식을 함께 익히는 동시에 엄마 앞에선 낭만을 읊을 테다. 엄마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를 전하며 엄마 앞에서 '똑똑이'로 남겠다.


  엄마는 소설과 지식책을 질색한다. 직접 읽는 건 피곤하고 듣는 것만 좋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앞으로 책을 고 살아야 한다. 엄마가 그토록 신기해하는 잡지식을 떠들기 위해선 책이 필수 살림이 됐다. 학교 공부가 끝나더라도 혼자만의 인문 탐구를 이어가려는 건 엄마 때문이다! 원인이 썩 마음에 든다.


'똑똑하다'의 용례
1) 똑똑하기론 입 아픈 교육자들께 감사를 올립니다
2) 자라나는 새싹들 중 안 똑똑한 친구가 어디 있겠니!
똑똑한 울 엄마 머리 위에 인형들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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