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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16. 2023

별도 달도 만들어 올게!

+. 'ㄲ' 다음이 'ㄸ'인데 실수했습니다....

[ㄲ] 끈질기다
타인의 말보다 자신의 소신을 믿으며 멈추지 않는 일


  ※ 하단에 강아지 사진이 있으니 무서워하시는 분들은 '용례' 전에 스크롤을 멈추어 주세요! ※


  우리 집으로 굴러온 강아지의 애칭은 '멍멍이'다. 이름도 있고 별명도 다양하지만 멍멍이라는 말이 내겐 강아지의 2견(犬)칭 같아 글 안에서는 멍멍이라 부르는 편이다. 사람의 2인칭으론 너, 당신, 그대, 자네 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표현을 모두 좋아한다기보단 2인칭으로 표현했을 때 묻어 나오는 특별함을 좋아한다. 글에서 '멍멍이'라 부르는 건, 어린애도 아닌 이의 애교가 아니라 견주로서의 애정임을 짚고 넘어가겠다. (타인에게 말할 때는 당연 우리 집 멍멍이 말고 우리 집 강아지라 부른다.)


  부모님도 보지 못한 내 온갖 모습을 지켜본 멍멍이. 그런 멍멍이에게는 고마움만이 가득하다. 사람이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만큼이나 동물이 사람을 뒤바꿀 수 있는 힘 또한 극대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의 언행에 상처받아 힘들어하던 때, 언어 대신 눈빛으로 소통하는 생명체 덕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멍멍이! 너를 위해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겠다"는 소신도 품게 되었다.


  멍멍이는 여느 개들과 달리 산책을 선호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힘이 없다 들었고, 우리 집에 굴러온 후로도 마냥 조용하기만 했다. "견주에게 산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란 가르침에 따라 데리고 나갈 때면, 주저앉거나 걷지 않겠다고 뒷다리에 힘을 주었다. 가족 구성원 중 다른 이와 나올 때는 그나마 걸었는데 나와 단둘이면 산책을 거부한 채 품에 안기려고만 했다. 그런 멍멍이를 보며 속상하기도 했지만 멍멍이를 제외한 네 구성원(아빠, 엄마, 언니, 나) 중 가장 시간이 많으면서도 산책 필수를 주장하는 건 나이기에 풀 죽는 대신 다음 날이면 또 나가길 반복했다.


  멍멍이를 안고 한참을 걷다가 집에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내려놓았다. 어느 방향을 택하든 멍멍이는 땅에 발이 닿는 순간 뒤돌아서 왔던 방향만 고집했다. 속도를 높이며 달려가는 멍멍이의 줄을 붙잡으면서 "천천히!"라 외쳤다. 속으론 '산책 때 중요한 건 걷기가 아니라 냄새 맡기라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내가 60분을 걸으면 멍멍이는 20분도 걷지 않았다. 내 왼팔에 멍멍이 손(* 앞발)을 올리게 하고, 내 오른손으로 궁딩이를 받치며 한참을 걸어가는 일은 쉬운 듯 쉽지 않았다. 이 일을 몇 년 반복하자, 상대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왼팔의 두께가 눈에 띄게 얇아졌다.




  또래 강아지들에 비해 별로 쓰지도 않은 뒷다리가 탈이 나고 말았다. 제발 뛰어내리지 좀 말라고 강아지용 계단(* 소파나 침대 등 높이 있는 가구 앞에 둠)을 샀는데도 멍멍이는 점프해서 착지하길 멈추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오는 대신 바닥을 향해 점프하다가 "끼잉!" 울부짖었다. 한순간에 걷질 못하는 멍멍이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십자인대가 파열됐단다. 강아지의 십자인대는 구조가 달라서 사람과 달리 치료해야 된다고 하였다. 태생부터 좋지 못한 슬개골까지 한 번에 수술하는 게 나이가 적지 않은 멍멍이에겐 덜 힘들 거란 말에 두 산봉우리를 하루에 넘기로 했다.


  사달이 난 건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6월 중순이었다. 퇴원해도 되는 멍멍이를 안고 집까지 걸어오며 땀이 미친 듯이 흘렀다. 작렬하는 태양빛과 품에 안긴 생명체의 온기가 팡파르를 이뤘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멍멍이를 감시하는 게 1순위 임무로 주어졌다. 십자 인대건, 슬개골이건 수술 후 탈 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붕대를 풀기까지 일주일, 풀고 나서도 수의사 선생님의 허가를 받기까지 멍멍이는 최소한으로 움직여야 했다. 당연 나도 이 기간 동안 나가질 못했다. 가족이 집에 돌아오는 저녁~밤이나 주말에 간신히 외출했지만 마음만은 멍멍이에게 쏠려 집중이 안 됐다.


  어느덧 몇십 분은 걸을 수 있게 됐다. 많이 걷는 건 당연히 안 되고, 그렇다고 나가지 않으면 다리 근육이 없어지기에 '적당히' 해야 된다고 들었다. 이 시기 우리 집 한편엔 개수레(* 강아지용 유모차) 또한 구비되었다. 개수레의 무게는 6kg였고 우리 아파트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날, 개수레에 멍멍이까지 태우고 도합 9kg를 번쩍 든 채 왕복 8층을 오가는 일은 골이 띵- 울리게 했다.


  한 번에 무리해서 걷는 것도 안 되는 통에 개수레에 올리고 재차 내려 조금씩 걷게 했다. 멍멍이가 걸을 때는, 한 손으론 목줄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개수레를 끌었다. 멍멍이는 속도를 높이려 했지만, 뛰는 건 금지기에 "천천히!"를 더 크게 외쳤다. 이 일이 7~8월 내내 반복됐다.




  멍멍이는 가을이 오기 전에 거뜬히 회복했고, 산책을 즐기는 강아지다운 강아지로 탈바꿈했다. 집안에서 놀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할 때 개수레에 올라타 바깥공기를 마시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그 시간이 강아지에겐 산책의 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됐던 걸까? 이전까진 "옛다, 킁 소리 한 번 내주마"하는 식으로 쓱 맡고 말았다. 이제는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30초에서 1분은 멈춰 있는다. 아주 그냥 쉴틈없이 킁킁거린다. 하네스와 줄을 챙기면 구석으로 피하던 멍멍이는 하네스를 봤다 하면 자기의 몸을 내어주며 꼬리를 방방 휘두른다. "가자"의 "가"만 내뱉어도 신나 하는 멍멍이를 보면서 이런 즐거움을 일찍부터 알려주지 못한 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산책을 나와 간들, 나 빼고 간들, 나를 포함한 여럿이서 간들 투덜거림 없이 잘 걷는다. 다만 내 품이 지나치게 익숙해진 탓인지, 나와 둘이 갈 때는 품에 안긴 채 공기 냄새 맡는 걸 더 좋아한다. 내 나이 16살 때의 다짐은 6년이 지나서야 완등(登)을 이루었다. 멍멍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더 걸릴 수도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던 거다. 모두가 "칠칠이네 멍멍이는 산책을 싫어해"라 말해도 나만은 그 앞에 '지금은'이란 한정 표현을 덧붙였다. 사계절의 내음을 느끼고, 동네 어귀 이곳저곳을 맡으며, 다른 집 강아지 친구들과 교류하려는 멍멍이의 변화는 누가 뭐라든 내 인생 최고의 성취다. 우리 집 멍멍이가 내 최고 성취에 자리하는 게 기쁠 따름이다.


  널 위해선 몇십 년이 걸리는 일도 감내할 수 있으니, 지금처럼 내 옆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기만 해 주라. 개수레가 6kg가 아니라 60kg여도 들을 테니까 너는 건강만 해라!


'끈질기다'의 용례
1) 끈질기게 굴수록 막판에 얻는 환호도 커진다
2) 끈질긴 사람과 고집불통 인간은 비슷한 듯 달라요

  ※ [ㄱ] 편과 동일한 시기인 첫 줄 왼쪽 사진에서 기다란 귀의 80%는 털이었습니다. 귀까지 미용하면서부터 머리가 작고도 동그래졌습니다. 강아지들은 소위 '털빨'이 크다 보니 저희 집 강아지도 사진별로 다른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ㅎㅎ 아기 때 까맣던 코와 발바닥도 연해지네요. 다른 '멍멍이'가 아님을 알리며 여러 장 첨부합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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