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Aug 17. 2023

학업상에는 양보란 게 없잖아요

[ㅃ] 빼앗기다
불합리한 이유와 함께, 타인에게 '나의 무엇'이 넘어가는 일


  대학생이 되고 가장 신기한 건 '기나긴 방학'이었다. 방학이란 말 앞에 '길다'는 형용사가 붙을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낯설고도 신박했다. 방학은 매년 있었으나 그전까진 방학이 길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 초중고 모두 일수는 엇비슷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방학이 가장 여유로웠다. '방학 숙제도 자율이라니, 역시 고등학생은 어른 취급을 받는구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다. 방학 숙제는 매번 나왔어도 선생님들은 강제로 제출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입시 생각해서 방학 숙제 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라"는 게 선생님들의 의도였겠지만 의도야 어찌 됐든 방학 숙제 없는 방학은 꿀맛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엔 방학 숙제가 필수였다. 안 해 온 친구들은 교실에서 부랴부랴 하였고 끝까지 내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자비란 없었다. 타박과 함께 제출 기한이 연장됐던 걸로 기억한다. 꼼꼼하면서도 고지식한 엄마 아래에서 '숙제' 안 해 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언니는 이 일을 해냈다. 방학 숙제 제대로 안 하는 언니 때문에 속 터져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만은 부단히 움직였다. 초등학교 6년간의 빛이 중학교에선 결실을 보았는지 어느덧 <방학 숙제 잘해 오는 애>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3학년 때에 이르러선 약간~ 잘하긴 했다고 자화자찬 격으로 말하고 싶다. 시간과 정성을 들였고 두뇌가 핑핑 잘 돌아갈 때라 아이디어 또한 샘솟았다. 방학 숙제로 상 받는 일이 내게는 익숙해져 있었다. 성적은 나날이 떨어져 가는데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방학 숙제만큼은 부동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내 딴에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공부한들 오르지 않는 성적에 스트레스받던 때, 방학 숙제는 공부 대신 들을 수 있는 칭찬이자 내 결핍을 채워주는 특별한 요소이기도 했다.




  중학생 때 두 번이었나, 중학교 한 번 고등학교(* 하고 싶은 숙제가 있으면 해 갔음) 한 번이었나. 어찌 됐든 총 두 번 상을 양보했다. '양보'라 이름하였지만 예민하던 내게는 '강탈'이나 다름없었다. <학업상>은 한 친구에게 여러 과목이 갈 수 있으면서 <방학 숙제 상>은 어째서 넘겨줘도 되는지 의아했다. 방학 숙제 상은 최우수, 우수, 장려로 부문이 나뉘어 있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학생 수가 몇인데! 과목별로 최우수, 우수, 장려 고루 받았고 못 받은 과목도 늘 있었다. 제출을 잘한 거지, 독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칠칠이는 상을 많이 받았잖니. 이 과목은 상을 못 받은 친구에게 주는 게 어떻겠니?" M 선생님 말씀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장려'라면 3등이 4등 친구에게 넘기는 거니 납득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전교에서 제일 잘해왔다는 칭찬을 하시며 이리 말씀하셨다. '이럴 거면 한 사람 당 상장 수를 정해놔야 하는 거 아니야? 전 과목 필참이 아니라 선택 참여면 몰라도....' 그런 의문을 안으며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자 선생님은 고급 노트 한 권을 내미셨다. 미안해 하시는 선생님께 더 이상 투덜거릴 수 없었지만 답답함은 쉬이 풀리지 않았고 이 일이 또 벌어졌을 때는 "방학 숙제, 억울해서 안 해!" 선포했다.


  내게 초중고는 편애의 장소다. 선생님들이 편애를 하셨다는 게 아니라 학교란 공간은 언제나 '학업'만을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매 학기마다 수행 평가가 있고, 매 방학마다 방학 숙제가 나오고, 참여해야 할 학교 행사가 많음에도 학년이 오를수록 중요한 건 성적이었다. 서술형조차 똑같은 답을 써야 하는 고사보단 각자 다른 결과물을 선보이는 평가들이 훨씬 좋았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 과학 같은 과목이 전교에서 하위권 수준을 기록했지만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수행 평가는 꾸준히 만점일 만큼 성적이 낮다고 해서 그 과목을 허투루 대한 적은 없었다.


  양보의 이유는 생기부였다. 수상 이력은 종목이 중요하지, 같은 종목에서 여러 차례 받는 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다른 과목을 통해 <방학 숙제 상>을 받으니, 다른 친구에게도 이 상이 적히게끔 하자는 거였다. "학업상이면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을 거야. 성적만 고귀하다면 방학 숙제도 문제집 한 권 풀기 이런 거여야 하는 거 아니야?" 학업상 못 받는 애의 투정으로 비추어져도 상관없었다. "내 말에 뭔 힘이 있겠어" 툴툴거리며 도서관이나 갔다. 이후 대학에 가니 조별과제며 개인별 발표가 상시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숙제가 과제로 이름 바뀌었지만 회의감만큼은 변치 않았다.




  퀄리티에 따라 차등 점수를 매길 때는 모두가 수준급의 발표를 선보였다. 참여만 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때는 다수가 해이하게 굴었다. PPT 만드는 데 날밤을 지새웠고, 매끄러운 발표를 위해 대본을 쓴 후에 그 대본까지 다 외웠건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학우들을 보면서 "대학도 어쩔 수 없는 학교네!" 싶었다. 대본 감출 성의도 안 보이고, 말투의 높낮이 따위 신경 쓸 생각을 안 하는 발표를 들으면서 "차라리 이 수업은 내가 피하고 말지" 그런 생각으로 싸늘해진 눈빛을 감추지도 않았다.


  아직도, 왜 성적이 가장 우선이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학종으로 대학갈 수 있었으나 소문난 '모교빨'과 운이 더해진 케이스였다. 평가에 있어선 뭐니뭐니 해도 성적이 가장 큰 점수를 얻어간다. 노력이 부족한 거란 말이 무색하게 고등학교는 상위권의 벽이 깨지질 않았다. 노력한들 성적이 쉬이 오르지 않는, 어른들 말론 '공부 머리 안 좋은'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안 좋은 공부 머리 + 공부보단 다른 게 좋았기에 내 성적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부 머리'가 필요하지 않은 수행평가와 동아리, 학교 행사에 있어선 최선을 다했다. 친구들의 순수한 열정을 볼 때면 생활기록부에 한 줄 더 적히겠다고 난리 치는 사람들이 극도로 싫어졌다. 고등학교 다닐 적엔 동아리 활동도 생기부의 중요한 요소였다. 1학년 때 특정 동아리의 '평화 정신'이 마음에 들어 면접까지 보고 입부했는데도 "미술이 진로면서 도대체 여길 왜 들어오는 거야?" 타박받았다. 한 학기 동안 치졸하기 그지없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봤자 가장 열심히 하는 건 나네' 싶은 설움이 들 만큼 홍보 행사 때건 축제 때건 꼼수 부리는 부원들을 보며 동아리 탈퇴가 아니라 자퇴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020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있으면 대학을 졸업할 지금도 앞서 말했듯, '성적'만이 왜 대접받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성적은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100점, 1등급, A+ 끽해야 세 자리 내지 두 자리인 숫자나 알파벳보다 학생들마다 달리 받을 수 있는 '형용사'가 우선되었으면 좋겠다.


'빼앗기다'의 용례
1) 빼앗겼다고 투정 부리기엔 선생님의 세심함이 마음에 밟혔다
2) 이거 내 아침밥이라고 말하면 빼앗길 일이 없다


중학생 때 방학 숙제로 해 간 결과물. 과학에선 최우수를 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도 달도 만들어 올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