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Aug 18. 2023

감정은 왜 이리도 타격이 큰지

[ㅆ] 쏟다
일순 뿌려지면 되돌릴 수 없게 됨
보이지 않는 감정이든, 눈에 보이는 물질이든 마찬가지!


  개강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여름의 한순간, 대학생인지 백수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신분을 짊어진 채 외출에 나섰다. 집 선풍기 대신 외간 가게들의 에어컨을 택한 하루는 시원하게 흘러갔다. 저마다의 이유로 제2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과 맛난 밥, 맛난 디저트, 맛난 음료를 차곡차곡 입에 넣으며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눴다. 건전하고도 바쁜 친구들인지라 날이 아직 밝을 때 귀가 버스에 올라탔다. 퇴근 시간대겹쳤음에도 운 좋게 자리가 났다. 윽고 하차벨을 띠-익 누르는 순간 기사님의 호통 소리가 날아왔다.


  "내릴 거예요?" 벨을 누른 사람은 나이기에 그렇다고 답하자, "아, 진짜! 일찍 일찍 좀 누르세요! 이러다가 사고 나지, 글쎄! 미리미리 좀 누를 것이지, 거참!" 비슷한 의미의 말이 격양된 톤으로 계속해서 날아왔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도 기사님은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화를 쏟아내셨다. 느낌표가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하차벨 누른 이의 사과를 끝으로 뒷문이 열렸다.


  전 정류장과 내가 내리려 한 정류장 중간에는 사거리가 하나 위치해 있다. 고등학생 때는 사거리에신호가 걸리면 일어섰는데, 요즘은 미리 일어나면 안 된다 하니 앉은 채 기다렸다. 사거리 즈음인 걸 보고 하차벨을 누른 거였다. 운전이라곤 아예 모르지만 짐작해 보자면.... 여긴 6차선 도로다. 기사님은 정류장과 가까운 맨 오른쪽 차도 대신 중간으로 나아가신 모양이었다. 하차벨을 누르 기사님은 오른쪽 방향으로 버스를 트시며 화를 내셨다. '아무도 안 내릴 거라 생각하셨나?'




  집에 오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한 탓에 저녁 산책은 평상시보다 일찍 나섰다. [ㄴ] 편에서 소개한 삼대 고양이네는 산책 필수 코스인 공원 앞에 위치해 있어 하루에 한 번은 지나치게 된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가게를 지나가자 밖에 나와 계신 남자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화인지 짜증인지 헷갈리는 목소리로 "아니이, 고양이랑 마주치면 서로 싸움 나요오" 기사님처럼 느낌표는 아니었지만 끝이 길게 이어졌고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고양이한테는 저 혼자 다가간다고 황급히 말씀드리고 걸음을 옮겼지만 찝함에 텁텁함 혔다. 남자 사장님은 날 몇 번 보셨고, 여자 사장님과는 몇 차례 대화 나눈 적이 있다. 한동안은 밤늦게 산책 나선 탓에 사장님들과 마주치지 않으며 가 주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하고만 인사를 나눴다.


  사장님이 왜  구신 지 감이 잡혔다. 며칠 전 삼대  손주 녀석이 뒤통수에 상처를 입어서 나도 크게 놀랐다. 당연 길고양이와 영역 문제로 싸웠겠거니 짐작했다. 하나 가게 앞이 공원이 보니 산책 나온 강아지나 개와 다툰 걸 수도 있단 예감이 들었다. '고양이가 다쳐서 화나셨나?' 그리 생각이 미치자 억울함은 풀렸다, 억울함만.


  사장님이 '싸움'이란 단어를 힌트로 주듯, 기사님도 '사고'란 단어를 넣으셨다. 싸움과 사고.... 충분히 예민해질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버스 기사님과 가게 사장님의 감정은 근거가 있어 보였지만 느닷없이 면전에 대고 그 감정을 뒤집어 쓴 나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였듯, 나 또한 사사로운 을 늘여놓자면. 저녁 시간대라 사람이 많았고, 승객들에 가려져 바깥이 잘 안 보였다. 정류장에 이르기 전 하차벨을 눌렀으며 몇 년 동안 이곳에서 내렸음에도 하차벨  누르란 말은 들은 적 없었다. 기사님의 차선 변경까지 봐야 하는 줄 몰랐다. 고양이가 나올 때면 강아지는 옆에 있는 가족에게 맡겼고 주의했다. 목적지는 그 앞 공원었던 데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 걸 알면서 지나다. 두 분은 이러한 정황까진 모르셨을 테다. 가족친구 간에도 악이 쉽지 않은데 낯선 이들끼리 어알겠는가. 그들의 화난 감정은 이해하나, 사적인 성질을 뿜는  다.

 



  답답할 때면 반대의 감정을 북돋아야 한다. (1) 친구들과 만나 실컷 웃었다 (2) 오랜만에 들른 다X소에서 이전부터 찾던 제품을 발견했다 (3) 엄마가 주문한 쿠키 세트가 도착했는데 이게 내 몫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4) 풀 죽은 내가 신경 쓰였는지 엄마가 그네(* 공원 내에 있는 천막처럼 생긴 기구)를 밀어주겠다고 하였다. 멍멍이를 품에 안고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5) 씻고 나오자 브런치 알림들이 반겨주었다. 다정과 응원이 담긴 댓글들과, 구독 중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오전 중에 멈추었던 '브런치 시간'을 이어나갔다 (6) 얘기를 들은 언니와 친구가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1) 즐겁고도 기운찼다 (2) 설레면서 신이 났다 (3) 깜짝 놀라며 감동받았다 (4) 웃긴 한편 진정됐다 (5) 웃음과 위안, 에너지 충전이 짬뽕되었다 (6) 고맙고도 안심됐다


  감정은 머릿속과 가슴 깊이 머물러 있다. 속에 있던 감정을 입 밖으로 쏟아내는 순간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호통치신 기사님과 짜증내신 사장님. 두 분이 이후 머쓱함을 느끼셨을지 아니면 분노를 그치지 못하셨을지 나는 모른다. 중요하지도 않다. 들이 일순 쏟아낸 감정이 내끼얹어지며, 내 감정은 비도 없이 바닥을 치고 말을 뿐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심해야 하는 까닭이다. 좋은 일이 6가지나 있는데도 글을 쓰는 지금까지 개운해지 않는다. 원체 화내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격양된 목소리에 심장이 한 번 벌렁거리면 곧장 진정되지 않기도 하다. 긍정 감정을 쌓아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마가 쿠키 박스를 가리키며 "뜯어보지 않고, 엄마가 칠칠이 먹으라고 주문한 건데" 말했다. 엄마의 시무룩이 정신을 확 일깨웠다. 생뚱 맞은 이들을 머릿속에 왜 집어넣고 있어!




  이런 적이 하루이틀은 아니다. 친구 "왜 이런 일은 너에게만 일어나냐?"라고 말할 만큼 낯선 이가 화를 낸 순간이 많았다. 한 번은, 버스에서 내리기 전 내 앞에 서 계신 아주머니의 치마가 그리 풍성할 수 없었다. 버스 뒷문이 열리자 펼쳐지는 치맛자락을 아주머니는 붙잡지 않으셨다. 내 운동화 앞코와 치맛자락 끝부분이 부딪친 길길이 날뛰셨다. "저기요!" 소리를 듣기 전부터 "죄송합니다"라 말했건만, "아, 진짜! 뭐야?"를 반복하시며 한숨을 내쉬셨다. 세 발자국에 한 번꼴로 뒤돌아서서 노려보셨다. 치마 재질이 특이한지 내 운동화 깨끗한지 아무런 자국 남지 않은 걸 피차 확인했는데도 그리 구셨다.


  지인과 가족들은 <어리게 생긴 얼굴, 남들보다 작은 키, 상대적으로 만만한 성별>을 원인으로 꼽는데 원인을 안다 하여 무엇이 바뀌겠는가. 외양을 보고 감정 표출의 정도가 바뀔 수 있나? 나는 나보다 작고 어린아이들에게 화나는 일이 생긴들 대놓고 화낸 적 없, 당연하게도.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높임 표현을 일부러 붙여 보았다. 이들이 나보다 연장자인 동시에 사회의 어른이라는 조건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어찌 됐든  행동이 감정의 도화선이었으니 죄송합니다. 죄송'했'습니다! 앞으론 사거리 전에 누르며, 멀리 떨어져 가겠습니다. 굴 모르는 기사님과 얼굴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사장님도 기분 푸시길. 낯선 타인에게 안 좋은 잔상서 뭐에 써 먹겠습니까.


'쏟다'의 용례
1) 너의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지 마렴
2) 쏟은 물이 자연히 증발되기까진 은근 오래 걸리더라

엄마, 백수에게 돈 쓰지 말랬지!
매거진의 이전글 학업상에는 양보란 게 없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