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Aug 20. 2023

기대보다 불안이 너무 큰 우리네 여행

  우리 가족 다섯 구성원 중 바다가 있는 곳에서 태어난 자는 막내인 멍멍이뿐이다. 하나 아기일 적 충청도로 건너왔기 때문에 정작 멍멍이는 바다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멍멍이를 제외한 네 사람은 모두 충청도 태생으로 저마다 몇십 년의 세월을 충청도에서 보냈다. 가운데 콕 박힌 탓에 바다가 없는 충청도에서, 푸르른 색보다 우거진 초록을 눈에 담으며 자라왔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바다는 우리에게 먼 대상이나 마찬가지다.


  바다와 자주 만나지 못한 이들은 두 갈래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가까이 두질 않았으니 그다지 감흥이 없거나, 가까이 두지 못한 까닭에 더 보고 싶어 하거나. 우리 네 사람은 반반으로 나뉜다. 나와 엄마는 전자, 언니와 아빠는 후자에 속한다. ‘여름 휴가’하면, 모두들 바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후자에 속한 이들은 그냥 여름도 아니고 한여름에 무조건 “바다!!!” 하고 외치기 바쁘기에 전자로서 곤혹스럽기만 하다. 원래도 좋아하지 않는 바다를, 개인적으로 가장 취약하기 그지없는 한여름날 보러 가야 하다니. 햇볕 쨍쨍한 날에 그늘막 한 점 없는 바닷가를 거닐어야 하다니!




  어렸을 적에는 가족 여행 ‘잘’ 안 가는 우리 집이 희한했는데 막상 성인 되고 보니 그게 좋았던 것임을 실감한다. 가족 여행을 사랑하는 분들이야 많고 많겠지만 ‘여행’이란 자고로 서로 간의 배려와 화합이 중요시되는 사안이다. 이 두 사안은 우리 집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요소였다. 가정에서도 싸우는 사람들이 타지에 간들 안 부딪칠 수 있겠는가. 살면서 가족 여행을 한 번도 안 다녔다면 오히려 낫다. 꼬꼬마 시절에 가도, 사춘기 소녀 때 가도, 구성원 중 누구끼리 가도 어떤 여행인들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나간 적 없기에 내게 ‘가족 여행’이란 단어는 최악의 인상으로 먹칠되어 있다.


  언니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자매 간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국내 여행도 아니고 ‘첫’ 해외여행을 거의 강제나 다름없이 끌려갔는데 3박 4일의 시간 동안 죽어 나가는 줄 알았다. ”여행이란 사람을 참 피 말리는구나! “ 싶은 충격에, 친구들이 물어볼 때면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싫어하지”라 말할 정도였다. 언니도 인정할 만큼 여행 때 나의 포지션은 가엾고도 안쓰러웠다. “양심이 있으면 나랑 여행 가잔 소리를 하면 안 되지!“라는 방패를 내세우면서 언니와 반나절은 놀아도 1박은 피해 다닌 지 어느덧 4~5년. 언니와 여행에 나서게 됐다. 자매 간 제2의 여행도 아니고, 아빠가 합세한 부녀 지간 첫 여행이 막을 올렸다.


  시작은 그놈의 바다 타령이었다. 자랑스러운 우리 광복절에 맞춰 14일에 휴가를 낸 아빠는 부산의 바다를 제안했지만 아빠의 잘못으로 같이 차 타는 일도 없이 14일이 지나갔다. 이틀 정도 흘렀을까, 언니가 내게 바다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면서 강릉에 함께 가길 권유했다. 주말에 바다를 보고 왔으면서, 일주일도 안 돼서 또 바다가 보고 싶어 지다니. ‘언니에게 여름은 그냥 바다 보는 계절이구나’ 실감하며 승낙했다. 백수로서 내세울 변명이 없기도 했거니와 조금 있으면 개강(* 직장인이었다가 대학 입학)이니 마지막으로 즐겨 보란 마음에서 순순히 따르겠다고 한 거였다. 카톡창에서만 ’순순히‘ 굴었지,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내 머릿속과 마음은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고를 반복했다. 잘 생각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제리 주제에 톰이랑 여행을 가다니 미쳤구나 싶어 멱살을 붙잡았다. 바다를 좋아하나 올해 보지 못한 아빠까지 합세하면서 두 톰 사이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해졌다. 아빠가 끼기까지도 복잡다단한 대화를 이겨내야 했다.




  그렇게 운전 면허증이 있는 톰들(* 각자 타지 거주)은 제리를 태우러 집으로 왔다. 시간이 늦었으니 하룻밤 자고 주말 이틀을 보내기로 했는데 아뿔싸! 세 사람이 늦잠을 자면서 여행은 허겁지겁 시작되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3시 30분경에, 점심을 먹기로 한 식당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인 여행 일정이 구색을 맞춰갔다.


  4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멀미를 억눌러가며 열심히 떠들었다. 두 사람(아빠와 언니)은 말을 걸면 대답은 잘하는데, 말 걸기 전까지는 입을 꿍 다물고 있는다. 나와 엄마가 <바다 노관심>이면서 <말이 너무 많아 문제>라면, 언니와 아빠는 <바다 좋아>에 <말 걸어줘도 싫음>이라는 공통점이 또 있다. 참다 참다 두 사람에게 ”집에 오면 뭐 먹을 때만 입을 여네. 그럴 거면 입을 아예 열지 마! “라고 했다가 ”밥 먹을 때도 조용히 있거든?“이라는 생뚱맞은 반격을 들었다. 말 거는 법 없이 입 다물고 있다가 배고플 때는 뭘 먹어야 하니 그제야 ‘입을 여는’ 행위를 지적한 건데, 자기들은 밥 먹을 때도 입 열지 않는다니, 다시 말해 ‘떠들지 않는다니’. 허참! 소통의 오류는 하루아침의 일도 아니다. 아무튼, 수다쟁이 제리의 열연으로 차 안에서까지 적막이 감돌진 않았다. 제리가 떠들어 대니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두 사람이 운전 방식을 갖고 부딪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이번 부녀 여행의 목적지는 충청도에서 한참은 떨어져 있는 강원도. 강원도 중에서도 속초와 강릉이 픽 당했다. 강릉에서 거주 경험이 있는 언니는 이곳들이 지나치게 익숙하면서도 매해 방문을 멈추지 못할 만큼 지독한 <바다 좋아파>다. 언니의 서치력 또한 잦은 여행으로 수치가 높다. 아빠와 내가 여행 자체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3인용 호텔을 최저가로 딱 잡아버렸다. 언니와의 첫 여행이던 해외여행 때도 숙박 걱정만큼은 없었다. 호텔 안에서조차 벌벌 떨어야 했던 게 문제였지. 어찌 됐든 점심으로는 내가 찾은 유명 식당이 선점됐다. 대기 번호에 맞춰 호명순 입장이었다. 운 좋게 창가 자리를 낙찰받으면서 호수 공원의 뷰를 감상하며 식사를 마쳤다.


  * 속초 내 ‘물회’로 끝나는 유명 식당: 대기팀이 많다 해도 널찍한 3층 건물이 통째로 식당이기에 5분만 기다리면 입장 가능. 주문 후 5분 있으면 음식이 나올 만큼 ‘빨리빨리’의 정석. 일반 물회 4점, 섭국 4점, 대게살 비빔밥 2점(너무 밍밍해요!)

  * 외옹치 해수욕장: 나무다리 걸으며 직사광선 햇빛에 힘겨워하다가 모래사장으로 넘어가 몰아치는 파도에 발 담그면…. “키야~” 와 “옷 젖으니 뒤로 물러나!”의 반복. 이후 발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모래알 털고 차에 올라타는 게 문제니 슬리퍼와 발수건은 필수. / 4점

  * 중앙 시장: 속초 하면 1짱으로 불리는 ㅁㅅ 닭강정 말고도 군데군데 숱한 닭강정 가게들이 위치. 유명 식당보다 저렴한 가격에 오징어순대도 먹을 수 있음. 맛 보장은 못함. ‘속초’ 지명이 박힌 인생네컷도 촬영 가능 / 4점

  * 문우당 서림: 책을 사랑하고, 책이 모인 공간을 좋아하고, 독립 출판물에 관심이 있다면 필수로 들려야 할 곳. 바글바글한 인파를 피해 고요에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장소. 눈 돌아가요, 눈 돌아가! / 5점 만점에 10점

  * 울산바위 별구경: 구름낀 날에 가도 사진가 분들은 있으나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날씨를 잘 보고 방문하세요. 매우 어두컴컴하니 미리 길을 숙지해 두시길. 웬 차들이 정차해 있는 곳, 그곳이 샛길입니다! / 3점

  * ㅇㅇ으로 시작하고 ㅍㅋ로 끝나는 고층 호텔: 언니의 서치로 저렴하게 방문하나 원래 요금은 월세 수준에 풀장 이용비까지 별도! 주차 자리 선점부터 치열한 만큼 체크아웃 시간의 인파가 매우 우려. 발코니가 있어서 해변 감상 가능. / 3점




  ‘살벌한 로맨스‘란 표현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사이는 로맨스가 아니지만 가족애(愛)는 있으니 이 비유를 들어봤다. 서로 정을 나누면서도 일촉즉발의 살벌한 순간들을 무사히 넘겨 오면서 하루가 끝났다. 12시 자정 전에 호텔 안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는 못했다. 12시 넘어서야 기진맥진해진 채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면서 욕 대신 한숨에 그친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장하다고 칭찬하고 싶다. 다행히, ”싸우는 순간 나는 고향 가는 버스에 올라탑니다“라는 협박은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버스가 전부 매진된 터라 협박이 아예 안 통한 것도 있다.


  언니는 다 좋은데 ‘욱’ 하는 순간이 너무 빈번하며, 아빠는 다 좋은데 ‘고집’을 치울 생각을 안 한다. 아빠는 언니가 다혈질인 걸 알며, 언니도 아빠가 고집불통인 걸 알면서 서로 져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빠의 고집에 언니가 욱하는 순간을, 언니의 성질에 아빠가 빈정 상하는 순간을 막고자 제리(*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의 톰 사이에 낀 제리)의 심장은 최고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이놈의 호텔! 방이 이리 많으면 그에 걸맞게 주차 공간을 마련해 줘야지, 주차 자리 없어서 언니 혼자 뺑뺑 돌던 중 신용 카드를 분실했다는 아빠의 고백에 미치는 줄 알았다. 언니 보고 1층으로 내려오라 한 후 아빠와 둘이서 이동하며 카드를 무사히 수거해 왔다. 호텔에 주차 자리가 없으니 밖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아빠에게는 언니를 두고 다녀올 방법(* 만에 하나 카드를 못 찾을 경우 폭발할 가능성 다분), 언니에게는 아빠 하고만 다녀올 방법(* 주차 문제로 입씨름하다가 감정 상할 가능성 농후)을 속삭였다. 다혈질과 고집쟁이에게도 통하는 게 있다면 상황에 따라 때로는 나긋나긋하고도, 때로는 불쌍한 목소리다. 오늘 하루, 가장 위태로운 공간인 ‘차 안’에서 내가 택한 건 세 사람 중 가장 어린 자라는 걸 어필할 수 있는 개구쟁이 목소리였다. 이 상황에선 “제발 열 좀 식히자“는 의미를 내포한 불쌍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하면서 ‘폭발’ 없이 첫 여행날이 저물게 됐다.


  하루종일 운전한 언니와, 하루종일 에스코트한 아빠 두 분에게 깊은 감사를. 내게 책까지 사준 언니가 오늘의 MVP!


  체크인 늦었다가 따블 결제하는 일 없도록 알람 울리면 정신 차립시다. 한 번 잠들면 눈 뜨는 걸 힘들어하는 게 부녀 삼인의 공통점이니, 넷이 여행 왔다가는 울 엄마가 분통 터지려나? 자발적 탈출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가족이라면 평생을 같은 울타리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봐온 결과, 어느 집안이건 구성원끼리 상극을 보이기 마련이다. 취향 같은 친구와 가도 위험한 게 ‘여행’ 이건만 상극 사이 가족에겐 얼마나 안 맞겠는가.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그건 타지와 타국에서까지 감정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출발했고, 이미 첫째 날이 저물었으니, 더 이상의 불평은 않겠다. 부녀 여행 간의 자금(* 엄카 찬스)을 조달해 준 엄마와, 나만을 기다리고 있을 멍멍이, 보고 싶어 안달나요.  


※ 무사히 기상했습니다!


충청도 우리집으로 업어 갈 두 권의 독립출판물.

 

매거진의 이전글 사기당한 언니 옆에서 양파 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