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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27. 2023

친구 사이에는 愛와 情이 함께하지

[ㅐ] 애정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가는 상대에게
사랑까지 품는 일


株. 어리숙함을 내세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던 때, 너만은 달랐어. 첫인상부터 개성 넘치던 네가 정 주는 법도 남다르다는 걸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같은 자리에 박혀 있지만 사시사철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나무들처럼 너 또한 특정 공간에 얽매이는 법 없이 네 자신을 뽐내고 있으리라 믿어. 네 소식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게 아니라 거리를 알 수 없는 미디어를 거쳐 들려올 것만 같다.


  중학교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고 결국 단추를 똑바로 맞추지 못한 채 졸업했다.


  A 동네에 있는 A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B 동네로 이사 갔다. 도보로 등하교가 가능한 거리라 전학 가진 않았지만 A 중학교에 진학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중학교 배정은 거리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애가 6년을 버티며 살뜰하게 사귄 친구들은 한두 명을 빼놓고 A 중학교에 걸렸다. 그 한두 명조차 A 동네의 A- 중학교에 배정되었지, 나처럼 B 중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는 없었다. B 중학교는, 학습 분위기 좋은 A 중학교와 달리 일진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무서운 소문과 친구들의 우려가 내 불안에 부채질을 더하였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놀면 그만이라고 어색한 코웃음을 쳤건만, 한 학기도 안 돼서 앞이 까마득해졌다.  A 중학교에 간 친구들은 내가 모르는 얘기들을 늘어놓기 바빴다. B 중학교에서 친구를 못 사귄 건 아니 새 학기부터 잡음이 반복되었다. 중학교는 뒷담화의 수위가 초등학교와 달랐고 갈등의 정도도 높아 보였다. 교복이라는 같은 옷차림으로 지내니 외관만 갖고도 여러 말이 오갔다. 철저한 방관자도 아니었으면서 이런 생활에 점차 지쳐갔다. 제대로 말도 않고 무리에서 나와버린 내게 株가 다가왔다. 株와는 같은 반이었지만 그때까지 대화를 나눈 적은 딱히 없었다. 몇몇 애들은 株의 개성을 이상하게 취급했고 줏대 없는 나도 株에게 괜한 겁을 먹었었다.




  중학교에는 대놓고 '꼽'이란 걸 주는 애들이 있었다. 초반에 꼽 먹던 株는 딱히 기죽는 일 없이 지냈. 한 학기가 지나자 株를 좋아하는 애들이 아졌. 株의 명랑함과 그런 명랑이 순수하게 묻어 나오는 행동들에 나 또한 株가 날이 갈수록 좋아졌지만 더는 같은 반이 되질 못했다. 3학년이 되면서 株는 학생회에 들어갔고 예고 준비에 바빠졌다. 株 말고도 말을 섞을 친구들은 많. 아마 株를 보며 자연스레 지내는 법을 배운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마음이 허했던 걸 보면 株만큼 의지할 친구는 사귀지 못했던 듯싶다. 어찌 됐든  덕분에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등교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학교에서만 시간을 보냈는데 株와는 학교 밖의 장소에서도 놀았다. '감성 카페' 내지는 '개인 카페'라는 데를 株로 인해 처음 가보았다. 株처럼 멋스러운 사장님과 통성명을 나누며 소통했다. 株는 예술가들이 개인 작업을 하는 공간에도 함께 가자 했다. 보다 나이가 훨 많아 보이는 예술가와 거리낌 없이 대화株를 바라보는 일이 내겐 더 재밌었다. 株와 있을 때면 동급생들의 '이러쿵저러쿵' 말고 미래지향적인 얘기들이 입에 올랐다. 株는 늘 미래를 바라보는 친구였다. 株로 인해 타인을 순수하게 응원하는 기쁨도 알았다. 株는 내가 없는 숱한 것을 갖고 있었고, 당시 나는 열등감을 버리지 못한 나이였지만  부러웠던 순간은 없었다. 그저 좋았고, 멋있었고, 그런 株가 계속해서 전진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株와는 교류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株가 스스로는 실수라 자각 못한 일을 내게 저지르면서 株와의 관계 또한 끊어지고 말았다. 중학교 친구들과 대부분 연락이 멎은 때였다. 러나 株와 고등학생은 물론 스무 살 이후의 상상 안 가는 시간들마저 당연히 공유하리라 믿었다. 그런 믿음만 가져야 했다. 그깟 실수가 뭐라고.... 같은 학교에 있지 않고 비슷한 일상을 공유하지 않으며 어쩌다 보는 사이가 되니 서운함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株인데, 내 좁은 마음이 株란 사람의 특별함을 잠시 망각하는 바람에 거리가 벌어지고 말았다.




  株를 비롯하여 동성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건넸다.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사랑해" "사랑하는 칠칠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지나치게 가깝든, 적당하게 친하든 "사랑한다"는 말은 "뭐 해?" 같 일상어 중 하나였다. 풋풋한 연애에는 신중을 기했다면 친구 사이에는 사랑 상처를 막무가내로 줬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친구들이 사랑한다는 말도 일삼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리숙했다. 꼽이야 소위 '노는 애들'이 애용하는 수법이었다. 그 외 지나치게 평범하면서 저마다의 매력을 보유한 동급생들은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지 않았다. 금방 멀어진 초등학교 친구들이건, 꾸준히 상처를 주었던 중학교 친구들이건.... 그들은 14살에서 16살다운 행동을 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株와 친해지기 전에는 한 친구 때문에 급식실에서 울음보가 터지기도 했다. 그 친구는 3~4년이 지난 후 당시의 어리숙함을 부끄러워하며 사과를 건넸다. 직접적인 사과가 오가지 않라도 서로서로의 어리숙함을 용서을 테다. (아니면 용서하고 있을 테다.)


  다만 株는 또래 집단과 다른 성숙함을 보유했다. 당시에는 그것마저 株가 지닌 개성이라 여겼는데 株의 인간 관계를 보면 株가 이해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었던 거 같다. 株에게 마냥 기댔던 건, 株한테 내 어리숙함을 이해하는 포용심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株의 남다른 배려를 알아차리지못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친구들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성인이 되면서는 "사랑한다" 대신 "애정한다"를 즐겨 쓰게 됐다. 사전에는 '사랑'과 '사랑하다'가 모두 나오지만, '애정'에 '-하다'를 붙인 단어는 정식으로 안 나온다. 그런데도 애정을 자꾸만 로 여기게 된다. 사랑(愛)하는 친구와 우정(友情)을 나누다 보면 자연히 애정(愛情)한다는 말이 튀어나오고 만다. 암흑과 같던 중학교 시절에 누구보다 애정하던 株야.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했지만, 애정한다는 말은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사계절만큼이나 특색 있는 너를 언제고, 영원히 애정한다!


나는 그림 대신 글을 통해 마음을 그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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