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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31. 2023

예상을 눈여겨보지 않은 탓에

[ㅖ] 예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타인이라면
후(後) 생각보다는 선(先) 행동을 중시 여길 것


茶야, 네가 어떤 사람으로 컸을지 내가 궁금해해도 될까. 10살의 너에게 뒤늦은 사과를 건네도 될까. 네게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든, 그 말들이 내 잘못보다 무거울 수는 없겠지. 하나 나의 잘못을 내 안의 부끄러움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서 구구절절 말해 봤어. 너는 10살 때부터 타인을 타이를 수 있는 아이였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해. 너의 웃음과 눈길과 마음은 내게 다정하면서도 깊은 호통으로 다가왔거든. 결국은 받기만 했구나.


  언니에게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살 때로 돌아가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이 질문은 일상 대에서 꾸준히 등장한다. 가닿을 수 없는 시간의 어느 지점을 상상하는 일은 퍽 재밌다. 하나 언니의 질문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답했고 지금도 대답은 변함없다. 시간 설정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맞추어져 있어서다. 과거는 무척 고되었는데 현재는 덜 고되다. 고된 과거로 돌아가고픈 의지는 없으나 미래는 보다 덜 고되지 않을까 싶은 희망은 있다. 그 모호한 희망이 재미난 욕심을 품게 만든다.


  폭넓은 나이(年) 고 <과거의 어느 날>이라는 한정이 붙는다면 진지하게 가고 싶은 날이 있다. 내 행동이 누군가를 울린 날이다. 누군가는 차(茶)처럼 투명한 눈망울과 이물질 없는 심성을 보유한 친구였다. 이하 茶라 하겠다. 우리는 10살이었고 같은 반이었으며 문제의 사건은 교내에서 벌어졌다. 그 때문에 과거로 돌아간들 10살의 나를 들춰 업고 도망칠 수는 없다. 초등학교에서 수상쩍은 행동을 저질렀다가는 아예 손발이 묶여버리는 수가 있으니. 대신 그 행동을 저지르지 않도록 엄하게 말하고 싶다. 10살을 혼내는 일이 마냥 쉽지 않겠지만 <10살의 나>는 혼내기 어려운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고집도 없으면서, 왜 나쁜 행동을 저질러서는. 왜 하필 茶라는 아이에게 못나게 굴어서는.  




  茶와 또 다른 여자 아이 셋이서 무리 지어 다녔다. 어느 날 <화해할 수 있는 갈등>이 우리 사이에 벌어졌다. 그런데도 나와 또 다른 여자 아이는 화장실 특정 칸 벽면에 茶를 향한 낙서와 글을 썼다. 내게는 험담이었고 또 다른 여자 아이에게는 농담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행동이 험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각했기에 누가 먼저 말을 꺼냈고 어느 비율로 나눠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茶가 그 낙서를 보고 상처받았다는 것, 결국은 내 행동이 친구를 울렸다는 것 그 두 가지만이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잡언 따위 필요치 않다. 茶와 내가 어느 정도로 친했는지, 어떠한 추억을 나누었는지 등은 잘못을 논하는 자리에선 잡언이 된다. 茶가 <금방> 용서해 주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茶가 지닌 아량에서 나왔으나, 그냥 타인도 아닌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가 그리 빨리 아물리는 없었다. 그리도 서러워했으면서. 


  茶의 용서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나는 혼나야 했다. 이 일을 더 크게 반성해야 했다. 그러나 다시 웃는 茶를 보며 그날의 울음을 끄집어낼 순 없었다. 茶에게는 화해로 종결지어졌을지 몰라도 내겐 아니었다. 이후에도 그날의 울음이 잊히질 않아 茶를 바라보는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여전히 미안해서 茶가 받은 상처의 크기를 확실히 알고 싶었다. 대놓고 부끄럽고 싶었다. 茶가 겉으로는 웃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그날을 떠올릴 수도 있어서 그랬다. 우선은 용서했더라도 번번이 떠올라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어서 그랬다.


  茶는 나와 어울리는 내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나와 또 다른 여자 아이만 잘못하였다. 나는 그 여자 아이보다 茶와 더 친했고, 우리의 행동이 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내 잘못이 더없이 크다. 그 때문에 잘못 없는 茶와, 나보다 잘못이 작은 또 다른 여자 아이를 빼고 나만을 본다. <10살의 어느 날의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머릿속에서 혼이 났고 앞으로도 혼날 예정이다. 이 일은 내게 끝나지 않을 반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茶의 당시 마음과, 이후의 마음알지 못하고 알 수가 없으니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거다. 처음부터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날로 돌아가 낙서용 펜을 뺏고 으름장을 놓고 싶다.


  너의 행동으로 인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니? 그런다고 홀가분해질까?

  너 자신의 마음이 타인의 마음보다 무거수 없어. 친구의 마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네가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이 일을 언제까지 기억할지 예상해 봐. 아마, 평생 기억하겠지....




  성인이 되고 나선, 인간관계 기분이 상할 때면 잘잘못 먼저 따져 본다. 누가 잘났고 못났는지 나누려는 게 아니라 잘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남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다. 피차 간의 행동을 <옳고 그르다>로만 보려 들면 갈등이 커지는 거 같다. '너의 잘못도 있으면 나의 잘못도 있겠고, 내가 잘한 게 있으면 네가 잘한 게 더 많겠지' 이리 생각한 후에 '그러니 계속 지내보자' 결론 내리려 한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아서 잘 지내다가 쫑난 친구들도 더러 있다.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말할 때도 사과는 필히 하려 한다.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에서 오갈 상처를 얕게 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어서다. 눈망울과 심성이 맑고도 맑았던 茶는 정답을 알고 있으려나.


  여학생들끼리는 왜 그리 화장실을 함께 갔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화장실뿐만 아니라 개별 칸 같이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비밀'이라 통하는 얘기들이 오가기도 했다. 더러는 학급에서 떠들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비밀이었다. 10살일 적 茶와 단 둘이 있을 때 들은 비밀과, 또 다른 여학생과 단 둘이 있을 때 들은 비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비밀은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 내가 비밀을 알려주기 쉬운 상대였나?


  나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비밀보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떠드는 이야기꾼이었다. 그 무서운 이야기들은 직접 지어낸 거였는데 정작 가장 무서워하는 이 또한 나였다. 대학교 화장실은 화변기 말고 양변기라 얼마나 다행인지. 이상하게 생긴 화변기가 단골 소재였기에 고등학생 때까지 내 지난 상상력을 꾸짖으며 화변기를 무서워했다. 茶야, 무서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니. 나와의 시간 중 기억하는 건 또 없고?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이겠지. 미안하다는 말이 네 앞에서는 왜 이리 가볍게 느껴질까. 이보다 더 무거운 사과의 말이 있으면 좋겠어.


너를 떠올릴 때면 동트는 모습이 그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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