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내가 교복을 입고 다닐 동안 아빠는 '정장' 달리 말해 '슈트'를 입은 채 나타났다. 근무 복장은 아니었다. 그저 바깥에서 만나는 날이면 대개 정장을 입고 왔다. 목적지가 서울 번화가건, 집 앞 돈가스집이건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청춘남녀던 시절에도 아빠의 옷차림은 정장이었단다. 정장을 입고 아빠가 안내하는 식당은 동네 분식집이었다마는.
넉넉한 사이즈의 블레이저를 '아빠 재킷'이라 부른다. 블레이저를 큰 치수로 입으면 상의나 하의는 타이트하게 매치하는 듯하다. 그래야 몸선이 사니까. 그런데 아빠는 달랐다. 블레이저건 양복바지건 마냥 크게만 입었다. 지금은 날이 갈수록 아랫배가 나오고 있으나 40대의 아빠는 날~씬했다. 동시에 노가다로 다져진 잔근육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아빠란 옷걸이가 멋질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펑퍼짐한 핏의 정장이 아빠의 얼굴만 둥둥 뜨도록 몸을 싹 가려버린 거였다. 하나 아빠가 정장을 입는 건 무척 좋았다. "아빠 칠칠이 만난다고 꾸몄지롱~"이란 의도가 느껴져서 그랬다.
대학에 진학하니 양복을 입은 아빠 또래 남성들(a.k.a.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다. 동시에 나도 교복을 탈피하면서 양복을 사보았다. '아빠 정장'만 봐 왔던 10대에겐 <양복 = 정장>에 <정장=아빠가 입은 것>이었다. 아빠가 고수한 건 검은색의 민무늬 슈트였으니 양복은 내겐 격식만 차린 단조로운 옷과도 같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양복은 얼마든지 예쁠 수 있었고, 정장도 얼마든지 화사할 수 있었다. 양복의 매력에 빠지며 돈이 생기면 댄디한 옷부터 샀다. 문제는 댄디할수록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내게는 생활복 개념의 옷들이 필요했다. 결국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에 알뜰살뜰 모은 양복들(블레이저, 셔츠, 정장 치마, 정장 바지) 중 2/3는 중고로 팔았고 1/3은 회사원인 엄마에게 갔다.
아빠가 정장 입은 모습을 본 지도 오래다. 가족 다 같이 외출하는 날이면 아빠는 옷차림 때문에 구박을 듣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게 언니는 의류 업계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패션잘알이다. 나와 엄마는 옷 고르는 데 시간을 들일만큼 매치에 신경을 쓴다. 세 여자가 허벌나게 꾸미고 나오면 아빠는 늘어난 면티에 애매한 기장의 바지를 입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곤 슬리퍼를 신고 차를 빼러 나간다. 반짝반짝 광 나는 정장 구두는 먼지가 쌓인 지 오래, 어느새 나는 아빠의 정장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빠는 예쁜 옷에 관심이 없다. 편한 옷만을 추구하나 과거엔 그러질 못했다. 엄마와 아빠가 데이트하던 시절에 간절히 매달리는 쪽은 아빠였다. 아빠는 첫 만남을 회상할 때면 "찌리릭!"이라는 비유를 쓴다. 엄마의 외모가 아빠한테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강도였나 보다. 잘 보이고자 얼굴에 있는 점까지 다 빼버린 아빠에게 단정한 정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테다. 엄마는 아빠의 마냥 똑같은 차림새에 지루함을 느꼈으니 계획은 오류이긴 하였다. 돌아 돌아 결혼은 골인한 게 신기하다.
엄마는 <남편 & 아내> 사이와 <아빠 & 자식> 사이를 분리해서 보았다. 엄마가 멀리하는 건 남편으로서의 놈팽이지, 두 자녀의 아빠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하면서도 번호를 차단한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아빠는 따로 사는 두 딸을 불러냈고, 딸들을 구실 삼아 엄마에게 다가가려고도 했다. 아빠가 요즘처럼 후줄근한 행색으로 나타났다면 엄마는 "어후, 꼴도 보기 싫어!" 더 화냈을 테고, 사춘기 딸들은 "아빠랑 같이 다니기 창피해...." 숨었을지도 모른다. 세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장은 결혼 이후에도 필수 사항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점수 딸 필요가 없어졌다. 아주 자연스럽게 모녀 사이로 낑겨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니는 일할 당시 아빠에게 양복 말고 캐주얼한 옷들을 여러 벌 사주었다. 언니가 아빠를 요리조리 입혀 보면서 아빠의 옷걸이도 실감하게 되었던 거다. 아빠는 검은색보다는 흰 끼가 가미된 회색이 잘 어울린다. 두꺼운 재질 말고 바스락거리는 얇은 질감의 옷들이 아빠의 핏을 살려준다. 펑퍼짐한 정장바지 대신 주름이 적당히 잡힌 면바지가 아빠의 비율을 늘려준다. 아빠가 오랫동안 붙잡은 '그' 정장이 아빠와는 최악의 궁합이었다는 게 웃기다.
아빠는 모든 '데이'들을 다 챙겼다. 밸런테인데이뿐만 아니라 남자가 받아야 할 화이트 데이에도 디저트를 바쳤다. 빼빼로 데이에는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양을 갖다 주었다. 엄마가 달력에서 없애 버리고 싶어 한 결혼기념일에도 꽃다발을 내밀고 도망쳤다. 엄마는 꽃다발을 집어던지며 "세상에서 꽃다발이 제일 싫어!"라고 외쳤다. 이는 "세상에서 꽃다발 사주는 놈이 제일 싫어!"라는 말을 줄인 거였을 테다. 어릴 때는 이걸 몰라서 '오호라, 울 엄마는 꽃을 싫어하는구나' 착각도 했다. 엄마는 꽃구경을 좋아하며 온갖 꽃들의 이름도 잘 알고 있으니 착각이 맞았다.
최근에, 수국을 보고 싶어 한 엄마에게 아빠가 꽃가지 하나를 갖다 주었다. "신랑이 수국을 가져왔지~" 웃는 아빠를 째려보며 엄마는 "이게 수국이냐?" 타박했다. 산에 갔다가 어떤 꽃을 보곤 수국인 줄 알고 주워온 거였다. 산에도 수국이 있을 수 있나? 아무튼 수국처럼 물 먹은 색깔이 아니라 쨍하기만 한 꽃가지는 유리병에 꽂힌 채 며칠간 집에 머물렀다. 아빠가 줄기차게 상납한 꽃다발에는 수국도 있었을 게다. 그때의 수국들은 버려졌는데 이름 모를 꽃은 좋은 대우를 받다가 떠났다.
아빠는 정장만 안 입는 게 아니라 '데이'들도 챙기지 않고 있다. 모녀가 아빠의 마음을 받아주었으니 "평상시에 잘하자!"는 태도를 지니게 된 거라고 생각하련다. 엄마에게 생뚱맞은 꽃을 갖다 준 날, 아빠는 내 몫도 들고 왔다. 일전에 낮에 샀다가 밤에 깨져버린 비운의 장식품과 똑같은 걸 사 온 거였다. 실수로 깨트렸다며 미안해하는 엄마에겐 괜찮다고 말했었다. 정말 괜찮았다. 약간 아쉬울 뿐이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 아니고 나 혼자 감상할 장식품으로 산 거라 상관없었다. 내겐 감상용의 쓸모없는 물건들이 많으니.... 그런데도 아빠는 이를 지나치지 않고 동일한 가게를 찾아가 사다 준 거였다.
딸에게는 장식품을, 엄마에게는 꽃을... <평상시에 잘하자>는 모토를 아주 잘 실천하고 있는 아빠다. 매년 돌아오는 온갖 데이들 말고 그저 흘러가는 나날이 우리 가족에겐 더 의미 있어졌다. 아빠의 정장이 그립긴 해도 안 봐도 되는 이유다.
올초, 옷에 관심 많은 딸에게 아빠는 행거를 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