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랐던 아빠상

아빠와 책, 책과 아빠

by 밀과참

나는 아빠를 편애하고 있다. '나'의 자리에 다른 이를 앉힌다면 호평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로만 쓸 수 있을 테다. 그러니 아빠 대한 기록은 딸이 철면피를 내세워 가능한 짓이기도 하다. 철면피는 원래 아빠의 수식어였는데 효녀 정신을 발휘하여 쇠가죽 같은 낯짝을 아빠한테 뺏어와 내게 씌워 봤다. 그렇다고 두께가 숨도 못 쉴 정도로 두껍지는 않다. 아빠는 지난날을 반성한다. 엄마의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아빠 입으로 '자격'을 거론했다고 들었다. 엄마(아내)가 어떻게 굴든 배우자로서 뭐라 할 자격이 없다는 회한이었다. 아빠가 떠난 집에 남은 건 엄마만이 아니라 두 딸도 함께였으니 딸들에게도 똑같이 죄책감을 지닐 듯싶다.


그렇다고 아빠가 내 앞에서 작아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나 또한 아빠 앞에 서 있을 때 작아진 적은 없다. 아빠가 어른의 입장에서든 부모의 위치에서든 내 점수를 팍팍하게 매기지 않아서다. 학생 신분일 때 아빠가 먼저 성적을 물어본 일은 없었다. 근래 들어 뭐 하고 살아야 할지 불안해하는 딸 앞에서 부채질하지도 않는다. 내게는 예쁘지만 남들은 이상하다는 물건을 사면 잘 샀다고 팔불출처럼 칭찬해 준다. 아빠가 나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하듯, 나도 조건을 붙이는 일 없이 아빠를 그저 바라보려 한다.




아빠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빠를 싫어하진 않았다. <아빠>란 표본 기준이 없어서 그랬다. 아빠의 인적 사항과 남편으로서의 행실은 잘 알았다. 그러나 아빠로서는 어떠한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살림살이며 가정교육은 엄마가 도맡았다. 아빠란 존재가 내게도 있는 건 확실한데 가정 내 아빠의 모습은 그리기 힘들었다. 아빠는 다정하였고 내게도 잘 대해주었으나 오래도록 <미지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못나고도 못된 정신적 사춘기가 터지면서 아빠에게 기준을 갖다 댔다. 파악하는 게 아니라 멋대로 판단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참고로 정신적 사춘기는 20대 초에 겪었다.


시작은 '시집'이었다.「낙타」라는 시를 우연히 접하며 도서관에서 김진경 시인의 시집들을 찾아 읽었다. 시와는 친하지 않다 보니 시간의 구애 없이 다가가고자 소장하고 싶었는데, 절판된 지 오래라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다 구글링으로 한 책방을 알게 되었고 운 좋게도 1984년작인 『갈문리의 아이들』과 1996년작인 『별빛 속에서 잠자다』를 미개봉 도서로 득템 하고는 무척이나 신나 했다. 당시 절친에게 이를 말했더니 친구는 "우리 아빠랑 잘 맞겠다"라고 말했다. 친구의 아버님께선 대학생 시절부터 시를 좋아하셔서 집에 오래된 시집이 많다는 거였다. 친구는 "난 읽은 적도 없지만~"이라며 웃었는데 읽은 적이 없으나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상황 아닌가. 헌책방과 도서관에 들를 필요 없이 집안 거실에만 나가면 절판된 시집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우와...." 진심으로 부러웠다.


시립 도서관에 갈 때면 또래보다도 중년에서 노년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조용한 공간에서 공부하고자 도서관을 방문한다면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은 언제고 책을 읽으셨다. 방학에는 중후한 옷차림으로 종이를 넘기는 분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분들을 지나치면서 "우리 아빠도 여기 있었으면...." 싶은 바람이 들었다. '책'만이 좋은 콘텐츠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아빠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아빠도 책 좀 읽었으면 좋겠어"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나도 아빠가 고른 책을 읽고 싶어, 나도 아빠랑 도서관에 다니고 싶어, 아빠랑 같은 주제로 얘기 나누고 싶어. 사실 희망 사항보다도 비교로 인한 부러움이 제일 크게 자리했다. '우리 아빠는 왜 저분들처럼 책을 읽지 않지?'라는 의문과 '아빠는 왜 나랑 같은 취미를 공유해주지도 않지?'라는 원망이 섞였다. 내가 우리 아빠를 '아빠로서' 처음으로 한심하게 본 때가 이 시기였음을 고백한다. 못나고도 못되었다.




엄마도 아빠처럼 책을 안 읽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자식 교육을 위해 홀로 두 딸을 데리고 도서관에 다녔다. 엄마가 집안에서 막내라 외가 사촌들이 다 읽은 책들을 얻어 오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책을 가까이 한다는 걸 지나치지 않고는 동네 서점에도 종종 데려가 주었다. 그러나 집안이 협소하다 보니 책들은 매번 버리거나 되팔아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게 너무나도 싫었다. 시간이 지나면 차례차례 내 곁을 떠나버리니 특정 책을 다시 읽고 싶어져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좀 더 자라서는 책과의 이별을 번번이 겪을 바엔 애초부터 사지 않길 택했다. 차라리 빌려 읽었다.


아빠와는 성장 환경이 달랐다. 아빠는 뒷산이 마당이던 산골짜기 집에서 태어났다. 10대 때 인근 도시로 나와 공고에 진학하였고 대학에서도 기술을 배웠다. 사회인이 돼서는 온갖 직종을 오갔으나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 이 점이 알게 모르게 콤플렉스로 남았는지 아빠는 직업을 숨긴 채 결혼하였다. 이후 언니와 나의 아빠가 되었다. 아빠와 책은 비슷했다. '책'은 나의 취미임과 동시에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아빠' 또한 등본엔 있지만 내 곁에는 있다가 없기를 반복하였다. 두 대상이 맞부딪치는 순간이 오면서 정신은 아빠를 표적 삼아 날뛰었다.


아빠는 육체적으로 피로한 직업군이다. 지켜본 바, 여가 시간은 <잠들기 전까지 텔레비전 시청>에만 한해 있다. 온몸이 쑤시다는 아빠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건 내 욕심이다. 두 요소가 나의 결핍은 맞았지만 분리해서 봐야 했다. 애쓸 필요 없이 마음의 허기는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1) 성인이 되면서 책을 꾸준히 구매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헌책방을 애용하여 절판된 도서들을 찾는 버릇도 생겼다. 2) 책을 되팔 생각이 없음을 내비치자 엄마는 거실에 책장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 3) 아빠는 더는 떠나지 않는다. 역시 시간이 만병통치약인 것일까.


엄마는 어쩌다 한 번씩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책장이 소파 옆에 있으니 아빠도 종종 책을 집어보는데 이내 잠들고 만다. 완독도 해내는 엄마는, 스타트와 동시에 드러눕는 아빠를 놀리기도 한다. 책은 계속 늘어나며 아빠 하고도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욕심은 접었다. 결핍이 충족된 자리에는 애정만이 남아 있으니.


고등학생 때 카톡. 대출 권수 늘리고자 아빠 회원증까지 쓰는 꼼수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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