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건'이란 말을 들으면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 속 초록 머리의 신하균 배우 먼저 떠오른다. 이 영화는 DVD로 소장 중이나 케이스를 열어 본 적도 없다. 살인과 그로 인한 낭자한 핏빛을 감당 못하는 기호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 돈 주고 구매한 건 고등학생 때 신하균 배우에게 빠지면서 얼굴 박힌 굿즈를 찾게 돼서다. 스무 살 되면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할 거라며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갈대 같았던 마음은 내 '첫 번째 오빠'인 유승호 배우에게 정착했다. 다행히 '류(* 극중 신하균 배우가 맡은 인물명) 손민수 하기'라는 버킷 리스트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류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따라하려는 건 아니었다. 미감이 중요하던 10대 눈엔 류의 청초함이 밟혔다. 그렇게 류의 외모만 기억한 채, <복수는 나의 것>이란 영화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영화를 다루는 교양 시간에, 하필 교수님 최애가 박찬욱 감독인 바람에 전체적인 스토리를 배우는 건 물론 부분적인 장면까지 시청해야 됐다. 수업을 듣는 동안과 해당 챕터를 복습하는 내내 아킬레스건의 고통을 참았다. 아킬레스건이 잘린 건 신하균 배우 생김새의 류인데 왜 내 얼굴이 그리도 찡그려졌는지. 몇 년 지난 지금도 '아킬레스건'이란 말을 들으면 찌푸린 표정이 된다. 그런데 전날 저녁부로는 눈물까지 어리고 만다. 가지가지한다.
내 아킬레스건은 '돈'이다. 어른들에게 돈을 받으면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나와야 한다. 평상시에는 고맙다는 말을 넙죽넙죽 내뱉으면서 돈이 쥐어지면 하기가 싫어진다. 그 때문에 '마지못해' 돈을 받은 순간들이 뇌내에 선명히 새겨져 버렸다. 부모님이 내 앞에서 돈으로 한탄한 적은 유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런데 '돈'이 우리 가족을 흔들 수 있다는 건 일찍이 눈치챘다. 위력의 정도는 부모님의 함구에 파악하지 못했다. 의문이 누적되자 아킬레스건으로 자리해 버렸다. 나는 <돈 때문에> 하기 싫은 것들이 많았다. 부모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은 분명한 가치가 있었지만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들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다. 사교육을 관두고 현장체험학습, 수련회, 수학여행 등을 가기 싫다고 고집 부린 건 그 때문이었다.
돈은 닳는다. 쓰면 돌아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소비가 무서웠다. 얼른 돈을 벌고 싶어서 내 가능성보다도 시간의 단축을 우선으로 두었다. 예체능 계열을 희망했지만 현역으로 부딪칠 자신이 없어서 접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적성에 맞는 다른 학과를 찾으며 배우는 게 재밌어졌다. 학과 교수님께 전과 하라는 제안도 받았는데 처음에는 농담이신 줄 알고 졸업이 코앞이라며 웃어 넘겼다.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고 강조하셨을 때는 돈을 억지로 받는 순간처럼 표정이 굳고 말았다. 교수님의 의도와는 달리 아킬레스건이 걷어차인 거였다. '학교를 2년 더 다니면 졸업은 언제 하고 돈은 언제 벌어요. 초과 학기는 국장도 안 나오는데 어떻게 다녀요' 같은 말은 하질 않았다.
운 좋게 대학은 나랏돈으로 다닐 수 있어도, 그외의 돈은 전부 부모님으로부터 나왔다. 내 힘만으로 지갑을 채우기 전까지 두께는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하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돈 좀 더 보내 줄 수 있어?"란 말은 한 적이 없다. 3학년이 돼서는 저축도 꾸준히 하였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다 해도 곧장 사회인이 될수 없음을 자각해서였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붕 뜨고 말았다. 뭐 하고 살아야 할지 불안해 하는 내게 엄마가 한 말은 "하고 싶은 일을 해"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 이 말은 내 18번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자신이 분수를 모르는 거 같아 짜증 날 때가 많았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뱉은 말이기도 하다.
어릴 땐,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보면서 '엄마에게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엄마는 직장 때문에 힘들어 하였고 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아 했다. 한 개인의 삶이 <일과 자식들>로만 채워지는 게 싫었다. 엄마한테 "엄마는 어릴 적 꿈이 뭐였어?"라고 물으면 "그런 거 없었어"라는 대답만 나왔다. "엄마는 지금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물음엔 "없어"라고 하였다. 믿기 힘들 만큼 속상했다. 그러다 언니의 사춘기가 발발하면서는 엄마가 안쓰러워서 화까지 났다. 일로도 힘들고 자식으로도 힘들 거면 엄마라는 신분을 벗어 던지길 바랐다. 일을 관두지 않는다는 점과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 이 두 가지 항목이 엄마라는 개인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고까운 이유만으로 엄마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는 꿈이 원래부터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평범하고도 평온한 일상을 바랄 따름이었단다. 70년대생인 엄마의 계획에는 결혼과 출산이 필수여서 엄마의 바람은 '결혼하고 잘 살기'와 '아이 낳고 잘 키우기'로 확대되었다. 누군가 내 경로를 방해하려 한다면 길길이 날뛸 텐데 자식이 돼서 엄마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딴지 걸고 있었다. 내 아킬레스건이 '돈'이라면, 엄마의 아킬레스건은 '자식의 돈 걱정'인 듯하다. 엄마는 내가 <돈 때문에> 현장체험학습, 수련회, 수학여행 다 가기 싫다고 할 때마다 "화가 났다"고 한다. 입시 학원을 관두는 것도, 교환 학생을 신청하지 않은 것도, 졸업을 빨리 하려는 것도 사유에 돈이 들어가는 게 "정말 싫었다"고 한다.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언니 보고 돈으로 뭐라 하는 것도 "듣기 싫었다"고 한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게 없었어. 그래서 하고픈 게 많은 너네 세대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부모로서 자식을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건 엄마의 행복이야. 엄마가 돈 모아서 어디에 쓰겠니? 내 자식이 하고 싶다는데 당연히 돈을 내줘야 되지 않겠어?
엄마 앞에서 '돈'으로 열변을 토해내자 들은 대답이다. 일찌감치 돈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돈에 대한 철학을 지닌 줄 알았는데 내 철학은 개똥보다 못하였다. 돈은 이동한다. 누군가의 지갑에서 다른 이의 지갑으로. 다른 이의 통장에서 또 다른 이의 통장으로. 모두의 손을 거칠 수 있는 대상이니 그 가치가 어마무시하다고 여겼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까지 쥐락펴락하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돈이 무섭지 않단다. 돈보다자식의 더 나은삶을 쥐고 싶어 한다. 엄마의 말을 들을 때 울음을 끅끅 참았는데 글로 써내니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내 정강이와 급소는 '우리 엄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