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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Sep 21. 2023

너무나 위해했던 중고 거래

[ㅟ] 위해하다
곧장 눈치채지 못해도
쌓이다 보면 지독한 여파를 남김


과한 중고 거래는 위해하고도 무섭습니다. 분명 선한 사람도 만났을 텐데 아직도 진저리만 치게 되는 걸 보면요. 기재 금액은 양측의 당연한 합의점이라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일념으로 이익을 남기려 했습니다. 제 티끌을 후려치는 건 물론 태산 같은 요구를 하는 분들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돈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요. 정직하게 벌고 적당하게 쓰겠습니다!


  10대 때 특정 피겨를 수집하였다. '한정 생산'이라는 점에 솔깃한 거였다. 때마다 다른 시리즈가 나오는데 입문자는 계속 늘다 보니 이전 시리즈를 갖고 있으면 원가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입수한 건지 모르겠다. 이래서 아이에게 전자기기를 쥐어주면 안 된다. 한 번은 내가 데려온 게 '가품'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구매자에게 사과 먼저 하면서 환불해 드리겠다고 하였다. 상도덕도 정도가 있지, 내가 얻은 폭탄을 남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 배송비로 논쟁이 발발하였다. 나는 '선불'로 보냈는데 구매자는 '착불'로 돌려주겠다는 게 아닌가. 구매자가 지적하는 지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구매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를 깠다가는 "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소리 들을 게 뻔해서 손이 떨렸다. 일은 잘 마무리되었고 내 나이를 알게 된 구매자는 "중학생이 굉장히 조리 있게 말하네요" 칭찬해 주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결말과는 별개로 엄마까지 개입했다는 데서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였다.


  발을 빼기 전에 소위 '망테크'를 타기 시작하여 투자의 쓴맛은 호되게 겪었다. 끝내 팔리지 않은 인기 척도 하위권의 시리즈들은 우리 집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크기라, 엄마는 "적당히 사랬지!" 이마를 짚으면서도 입양해 주었다. 그전의 순풍 때 돛을 달지는 못하였다. 원가 칠천 원에 시세가 만 오천 원으로 뛰었을 경우, 나는 9000원에 되팔았다. 음흉하게 돈을 쓸어 담기엔 중삐리의 양심은 때 묻지 않았고, 인형을 좋아하는 성향 탓에 피겨들에게 정들기도 하였다. 피겨를 수집하는 사람들한테도 유하게 굴고 말았다. "좀 깎아주시죠 ㅎㅎ" 제안하면 "일 없습니다" 단호히 거절하는 게 아니라 "그럼 사주실 거죵?"이라며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했다. 순수 수입은 모르겠다만 거래용 통장 잔고가 100만 원을 넘어가자 당혹스러웠다. 일곱 의 숫자만으로도 까분 반성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전액 저축하였으니 따지고 보면 몇 년 간(14살~18살)의 용돈을 고스란히 모은 거나 마찬가지긴 하다. 정보 찾고, 뽑기 하고, 판매글 올리고, 택배 부칠 시간을 시급으로 따지면 두세 배는 벌었겠다마는....




  언제부턴가 세컨핸드 의류 수요가 치솟고 있다. 사복 살 돈을 아끼기 위해 '구제' 옷을 종종 사 입었는데 내게는 저렴하기만 한 구제가, 희소가치의 명목 하에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팔리는 게 아닌가. 이래서 철없을 때 SNS도 해선 안 된다.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썼던지라 열풍의 기미를 우연히 알 수 있었다. "오, 나도 힙스터가 됐네?" 하고 넘기면 될 걸 '+@'에 꽂히는 바람에 "여태까지 샀던 옷들을 되팔아서 이익을 남기자!"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인스타그래머들은 때깔 나는 '빈티지샵'을 들렸지만 내가 이용하는 곳은 '구제 쇼핑몰'이었다. 금액대가 차원이 달랐다. 나는 몇 천 원에 사는데 저쪽에서는 몇 만 원에 파는 걸 보고 기함했다. 중고 장터에는 몇천 원대로 올렸다. 구매가에 천 원만 더하는 식으로 박리다매의 원칙을 취해 본 거였다. 사복만 입어야 하는 스무 살이 되면서 쇼핑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였기에 옷은 어느 정도 있었다. 엄마와 언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냥 너 입지?" 조언했다. 장사는 잘 되었고 어느 날 업자에게 제안도 왔다. "안목이 좋으시네요. 제가 사실 빈티지샵을 취미로 운영하고 있는데...."라며 운을 뗐다. "시간 들여 한 벌씩 올리지 마시고 저한테 싹 파세요"라는 말에 혹하였으나 다 봐놓고 "이만큼 산다 하면 도매가로 넘겨주셔야죠"라며 돌변하였다. 귓가에 삐용삐용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기만 업자지, 나는 가난한 대학생인데. "그럼 안 팔겠습니다"라고 용기도 내봤지만 "에이, 왜 그러세요. 좀 더 쳐주면 되지요?" 구슬렸다. 지나친 집착이 무서워 얼른 택배를 보내며 연락을 끊고 싶었다. 최종 금액을 밝히면 호구 중의 상호구인 게 들통나니 나만 알겠다. 탈탈 털린 후로는 더는 타인과 '거래'하고 싶지 않아졌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구매자들을 만나며, 사과와 감사를 확실히 해 준 '택배비 논쟁'의 당사자분은 천사였음을 알았다. 업자에게 입은 타격이 컸을 뿐이지, 일반 회원 중에도 '빌런'들이 많았다. 반값 택배(* 인근 편의점으로 택배를 보내는 시스템, 택배비가 반값이나 받는 이가 직접 찾으러 가야 함)는 선불밖에 없는데 택배비는 쏙 뺀 채 옷값만 입금하고 알아서 보내라 우기거나, 어떻게 세탁했는지 물어보며 안감까지 다 찍어 보내라 하거나, 원단과 실제 색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는 등.... 업자를 만나기 전, 한 구매자는 옷이 박스채로 필요하다면서 우리 집까지 차 끌고 오겠다고 하였다. 몇 시간 동안 한 벌씩 살펴보고 입어보길 반복하다가 네 벌만 골라 갔다. 헤집어 옷가지들을 정리하면서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회의감이 찾아들었다.  




  수집용 피겨는 마니아 층을 위해 있는 것이며, 옷은 일상에서 입으라고 있는 것인데 나는 1순위의 용도를 지워가면서 '돈'으로만 보려 했다. 경제의 ㄱ과 투자의 ㅌ도 배우지 못한 채 막연한 희망에 중고 장터에 상주하였다. 당시엔 용돈만 받고 있었으니 첫 투자 비용은 코 묻은 수준이었다. 다만 피겨 하나의 이익을 남겨 또 하나를 사는 식으로 늘리려 했다. 옷은 처음부터 되팔 목적이 아니었으나 이익이 커지면 사업자 등록을 하여 쇼핑몰을 여는 방안도 고민하였다. 꿈도 컸다.


  처음 판매글을 올릴 때만 해도 해맑았다. 불법 밀수를 한 것도 아닌 데다 수요에 맞춰 금액을 올리는 거니 잘못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는 내 합리화였다. 중고 거래 빌런들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돈을 굴리고 불려 팔자에도 없는 장사에 매달렸을 테다. 피겨, 의류, 그다음으로 또 다른 품목을 주시하며 되팔이 전문이자 또 다른 빌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평생의 스트레스를 일정 기간에 몰아 받으며 발을 빼고 물기까지 싹 닦을 수 있었다. 어플을 전부 탈퇴하였을 때 그리 후련할 수 없었다. 이윽고 중고 장터를 기웃거린 그간의 세월을 헤아리자 거래 횟수만큼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중고 거래장은 있어야 한다. 내 욕심이 필요성에 어긋난 게 문제였다. 원래의 취지가 가려지니 중고 거래는 위해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뭐든 타인과 함께 하는 데다 돈까지 오간다면 위태롭고도 해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던 부모님은 "인생 공부했다고 여기라"며 다독여 주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판매글 올리면서 보낸 그간의 방학이 너무 아깝다. 자격증이라도 따놓지 그랬니! 그게 미래(현시점)의 나를 위한 최고의 길이었을 텐데.


옷장을 거의 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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