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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Sep 20. 2023

우리들의 웨이브

웨이브와 회복탄력성

[ㅞ] 웨이브
물결 혹은 파도
크게는 내 삶에 들어온 타인들


할머니의 핀잔을 듣고 싶다. 삐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말이야. 가장 빨리 잊게 되는 건 목소리라는데 만만다행으로 엄마가 할머니의 성대모사를 기막히게 할 줄 알더라고. 그 때문에 "야 이년아!"라며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던 말은 점점 명대사로 승격되고 있는 듯해. 명대사라는 게 별 건가. 오랜 잔상을 남기면 그게 다 명대사지. 할머니가 떠올리는 명대사로는 뭐가 있을까. "이 여편네가!"려나? 다음 주에는 '영감탱'과 '할망구'를 보러 가야겠어. 그때까지 싸우지들 말고 계셔.


  다가오는 추석에 갈 '집'은 올해도 없다. 친조부모님은 화재 사고로 돌아가셨다.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일군 집이 허물어지며 집터는 산의 일부가 되다.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엄마네 남매는 외할머니의 집을 정리하였다. 동과 호수를 아는 건 어른들이었다. 나는 경로로 외웠다.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위치한 건물, 3층까지 올라간 후 왼쪽으로 꺾었을 때 나오는 두 번째 문을 열면 외할머니의 보금자리가 펼쳐졌다. 집은 외할머니의 전부였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게 문제라면 나 혼자라도 머물며 지키고 싶었다.


  태어나서는 외할아버지만 안 계셨다. 커다란 액자에 담긴 선명하면서도 낯선 얼굴, 그 이목구비를 바라보면서 내 곁에 없으나 한때는 계셨던 외할아버지를 궁금해하였다. 엄마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속속들이 말해주었다. 외할아버지는 종잡을 수 없는 유형이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새벽에는 거리 청소를 하러 리어카를 끌고 다닌 사람.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사람. 막내가 밥 못 먹을까 신경 쓰여서 학교 앞을 서성이던 사람. 옹고집 말기라 다 커서도 대들 수 없던 사람. 첫 손주의 손을 꼭 잡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러 다닌 사람. 이 위인을 그리워하고자 친척들은 주기적으로 모였다. 외할머니댁이 가장 북적이던 날은 외할아버지를 추억할 때였다.


  "외할아버지는 날 얼마나 예뻐했을까? 막내딸의 막내딸이니 어화둥둥 했겠지" 으스대듯 말하면 엄마는 손을 휘저었다. "아니! 우리 딸 힘들게 한다고 콱 혼냈을 테지. 말 잘 들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을 거야"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화내려다가도 막내딸이랑 똑닮은 얼굴에 주저했을 게 빤해~" 낄낄거렸다. 조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가 자식이었다면>의 가정을 마구 붙여댔다. "그렇게 돌아가시도록 놔두지 않았어"라는 한탄은 실상 자식이 아니기에 할 수 있었다. 격차를 좁히는 건 불가능하다. 조부모님과 나 사이에 부모님이 없다면 나와 조부모님은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된다. 조부모님을 만난 건 내가 자식의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건 외할아버지가 부모의 부모이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임을 알다마는 나도 모르게 예외 사항을 두고 싶었나 보다. "돌아가셨다" 이 말이 "계시지 않는다"는 의미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힘들었다. 외할머니와 친조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일찍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안 계신다"고 생각하였다.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자 존재(存在)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있다'의 반대말은 '없다'인 걸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내 일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에는 등교해야 됐다. 학교에 있는 동안, 내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는 현상에 허망했다. 



 

  우리 집 앞에는 하천가가 있다. 오늘처럼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물이 넘칠듯이 차오르지만 평상시에는 졸졸 흘러가는 소리만 들려온다. 비가 오고 나흙탕물이 되어버리다가도 낮밤 끝에 본래의 투명도를 되찾는다. 한 달 전의 하천과 오늘의 하천, 한 달 후의 하천은 같지 않다. 물이 마냥 고여 있지 않아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날씨와 물살은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 자리에 있는 하천가를 없애지는 못한다. 내 인생에 있어 고정적인 것도 '나'라는 존재뿐이다. 주변 사람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나를 지나가 버린다.


  '웨이브'는 ott라는 고유 명사 말고 세 경우에 한해 쓰인다. 1) 머리에 물결 모양을 넣을 때 2) 몸을 파도처럼 꿀렁일 때 3) 실제 물결이나 파도를 가리킬 때. 외출 전에 웨이브를 넣고 싶어 한참 동안 머리를 매만졌다. 바깥에서 몇 시간을 보내자 애매하게 돌아오고 말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흥 많은 친구의 웨이브를 구경할 일이 잦았다.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유연하게 꿀렁인 후에는 다시 일자의 몸이 되었다. 원상태로 돌아가는 회복력은 '웨이브'의 습성임을 알았다. 이러한 '회복'에 주목해 보았다.


  우리 부모님은 '부모'를 잃었다. 특히나 엄마에게 '엄마'는 없어선 안 되는 대상이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새벽, 엄마는 오열하였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엄마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한숨도 바로 곁에서 들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비명 '공포'를 느꼈다. 엄마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엄마를 주시했다. 하나 엄마는 우려를 이겨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외할아버지의 다면을 솔직하게 말해주었을 때처럼 요즘도 외할머니에 대해서 곧잘 떠들어 댄다. '과거'는 엄마에게 있어 돌아가고픈 순간이 아니라 시인 듯하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엄마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과거를 잊지 않는 한, 존재를 완전히 잃는 건 아닌가 보다.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서 내 앞날에 더 이상 '조부모'가 함께하지 못한다는 게 낯설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부모님한테 집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나는 아빠엄마를 위해 살아"라는 호소에 엄마는 "네 인생은 네 것이야"라고 바로잡았다. 엄마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우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일상에서 맞닥뜨린 사람들이 가족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인생'만 놓고 보았을 때 가족, 친구, 연인, 그 외의 지인은 모두 자신이 아닌 <타인>이다. 내가 꼼짝없이 서 있는다 해도 타인은 끝내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 저마다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물을 막을 수 없다면 가는 물도 붙잡아선 안 된다.


  깨닫기만 했지, 실제 삶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노력의 일환으로 나를 지나간 타인들을 복기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지나갈 타인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서라도 웨이브의 4번째 의미를 익혀야 한다. 어찌 됐든 사람을 만나는 이상 물이 메마르거나, 수류(水流)가 끊길 일은 없을 테니 외롭지 않게 노력할 수 있겠다.


진정한 '똥강아지'도 건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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