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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Sep 19. 2023

워딩과 웃음의 무게

[ㅝ] 워딩
내 생각을 남에게 보여주는 방식
동시에 발화자를 담아내는 거울


滿 교수님을 뵐 일이 없어지니 웃음의 양도 줄어들어요. 滿 교수님의 표정, 말씀, 행동에 방실거리다가 그 순간을 떠올리며 혼자 깔깔댄 적이 얼마나 많던지요. 마스크 해제가 나는 바람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 덕에 滿 교수님의 각양각색의 표정도 실컷 봐서 좋았습니다. 스물셋의 봄여름을 특별하게 만든 건 OO학과입니다. 졸업증명서에 남을 네 글자의 가치는 저만이 해독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 깎아내리려고 하면 滿 교수님의 워딩을 따라 해 보겠습니다. 웃는 얼굴로요!


  지난 학기에는 복수 전공 학점만 채워야 했다. 두 수업은 滿 교수님이 맡으셨는데 요일이 달라 주에 네 번은 뵙게 되었다. 滿 교수님은 내가 어느 학과생인지 알고 계셨다. 하루는 내 주전공이 별로이지 않느냐면서 '여기'로 넘어오라고 말씀하셨다. 바라서 간 건 아니었지만 수업도 들을 만큼 들었고, 매 학기 교수님들과 상담을 가지며, 학과 행사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었으니 '우리 학과'는 '여기'가 아닌 내 소속 학과였다. 근거는 세 가지나 거론하셨다. 구체적이었지만 주관적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곱씹어 봐도 세 이유는 기억에 남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7과목 중 여섯 강의에서 나 혼자만 과가 달랐다. 그 정도로 타과생의 유입이 적은 학과이기도 했다. 滿 교수님에게 나는 '열심히 하는 타과생'이었다. 교내에서 마스크를 벗고 나서는 '자꾸만 웃어대는 애'이기도 했다. "웃지 마, 정들어!"란 소리도 들었는데 나중 가서는 눈이 마주치면 滿 교수님 먼저 씨-익 웃으셔서 더욱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 말고도 滿 교수님의 추임새나 제스처 하나에 빵 터지는 학우들이 많았다. 사적인 영역은 소개할 수 없으나 滿 교수님은 실제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개성이 짙으시기도 하다.




  종강하면 '강의평가'라는 걸 해야 한다. 원래도 5점 만점을 남발하나 滿 교수님의 수업들은 5점 만점에 50점을 남기고 싶었다. 강의계획서에 적힌 내용들은 거의 익혔는데 그보다는 커리큘럼에 기재되지 않은 시간 때문에 그랬다. 滿 교수님은 진도를 서둘러 나가지 않으셨다. 설명하시다 말고 하고픈 말씀이 있으신지 물꼬를 트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십 분 넘게 열변하시다가 그대로 수업이 끝나버릴 때도 있었다. 비가 오랜만에 내리던 날에는 감성 넘치는 문장을 쓰시더니 끝으로 '단비'라는 제목까지 다시고는 학생들이 음미하기도 전에 휘리릭 지워버리셨다. "창밖의 나무를 쳐다보라", "벽에 달린 문구 한 번 봐라" 등 지시하시는 통에 고개 돌릴 일도 잦았다. 수강생들이 유난히 조는 날이면 스트레칭하자면서 강의실을 돌며 시범을 보이셨다.


  "자, 버스 타고 내릴 때 기사님께 인사하는 학생 손 들어 벼"라며 불시 조사를 실시하신 적도 있었다. 수강생이 몇 안 되긴 하였으나 모두 든 걸 보시곤 "역시 우리 학생들은 예의가 발라"라며 흡족해하셨다. "화단에서 돌멩이 하나 집어다가 신발에 넣고 걸어 벼"라는 숙제도 내셨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끼치는 불편함의 크기를 겪어 보라는 취지셨다. 滿 교수님은 인생과 세월에 대한 견해를 자주 펼치셨다. 인문학도들 앉혀놓은 인문학 수업인데도 그래프가 자주 동반되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그래프로 끝이 뾰족하냐 둥그냐의 차이만 있었다. 인생은 이처럼 등산 코스와도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가도 정상은 한참 남았으니 조급히 오를 필요 없이 쉬어가는 구간을 지나치지 말라는 꿀팁을 얻었다. 당신은 나이가 드셔서 통장 잔고(남은 나날)가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는 몇 번이고 출금해도 넉넉할 거라고도 하셨다. 어찌 흐를지 모르는 인생과 그 속에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시면서도 효(孝)만은 당장 실천하라며 강조하셨다.


  보강 문제로 수업 도중 滿 교수님께서 조교님한테 전화를 거셨다. "예~ 저 滿인디유~"라는 인사에 수강생들이 일제히 터지고 말았다. 청소 아주머니들이 복도를 오가시면 "아줌미, 아침에도 하시더니 왜 또 청소하신댜~" 툭 혼잣말을 던지셨다. 예문이나 예시 상황에선 '滿'을 쓰셔서 학우들 이름보다도 교수님 성함에 정들어 버렸다. 이름 잘 못 외운다고 하시면서도 수강생들은 꼭 성 뺀 이름으로만 부르셨다. 틀리실 때는 "미안햐~"라는 사과도 빼먹지 않으셨다. 나도 두 번 정도 '칠칠이'말고 '칠팔이'라고 불렸다. 휴강 공지는 진지하게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이셨다. 滿 교수님이 예의를 중히 여기신다는 건 수업을 듣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런데도 엄한 모습으로 대하시지 않으니 예(禮)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의 존중에서 피어난다는 걸 실감하였다.




  내가 택한 복수 전공은 '한문학'이다. 한문학과는 우리 학교 전학과를 통틀어 입결이 가장 낮아 비꼼을 당하기 일쑤다. '에브리타임'이라는 대학생 커뮤니티에서는 대놓고 비하당한다. 정보 얻으려고 검색했다가 얼굴 찌푸려진 적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어디든 '익명'이란 두 글자에 숨어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하는 이들은 널려 있지만 실생활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썩 좋지는 않다. 주전공인 '우리 학과'는 경쟁률이 높은 편이며 <한문학과 vs 나머지 학과>의 구조로 볼 때 내가 속한 데는 후자가 맞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쁜 건 특정 집단이 놀림거리가 된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어서다. 특정 학과 그다음엔 특정 단과대, 그다음으로 확장하면 <대학 vs 대학>으로 커지지 않는가. 누군가 자기네 대학을 욕보이면 발끈할 거면서 그보다 더 작은 단위는 ㅋㅋ 웃으며 평가하니 이런 모순이 없다. 가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놓인 개인에게서 나온다.


  滿 교수님이 '우리 학과'를 안 좋게 보셔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던 건 어떤 분이신지 겪은 것도 있거니와 까려는 목적으로 거론하신 게 아님을 알아서다. 전과 권유가 아니었다면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셨을 테다. 滿 교수님은 수강생들을 북돋으실 때 학과 말고 학교를 거론하셨다. "XX대 학생들은 노력을 일찌감치 했던겨.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그만큼 노력한다면 격차는 좁힐 수 있는겨"라는 게 滿 교수님의 주장이었다. 해이하게 구는 학생에겐 다그치시거나 놔두시는 게 아니라 어찌해야 노력할 것인지 물으셨다. 한문학을 배움으로써 滿 교수님이란 분을 알게 된 건 최고의 선택이자 큰 행운이다. 滿 교수님이 뇌리에 남기신 순간들과, 표현하신 워딩의 방식은 어디서도 얻지 못할 가르침이다.


근래의 강의실 창밖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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