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여행하시는 智 선생님께 '한국사'를 배운다는 건 유달리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智 선생님의 여행썰만큼이나 우리나라 역사도 몰입해서 들을 수 있었지요. 그 덕에 한민족(韓民族)으로서의 자긍심이 이른 나이에 심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만큼은 흔들리는 일이 없더라고요. 한문을 배운다고 말하면 '쓸모'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굽히지 않는 까닭입니다. 한문을 익히니 우리나라가 더 좋아져요. 智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고전의 문(文)도 알고 싶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말을 꼽으라고 하면 '우리'가 언제고 1순위로 튀어나온다. 한문에서 '우리'라는 표현은 '我輩' 아니면 '吾等'이 있다. 번역할 때는 '우리'라고 하면 되지만 한자로 풀어 직역할 경우 두 단어 모두 '내 무리'가 된다. 어째 순우리말인 '우리'와차이가 느껴진다. '나의', '그의' 등은 소유격이다. '우리'도 '우리의'라고 쓰면 소유격이 되나 보통은 '우리'라는 두 글자로 잘 쓰인다. 사전에서는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라 나오는데, 우리는 '우리'라는 말에 친밀함 그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음을 느끼지 않는가.
['우리' 쓰임새 1] 엄마 껌딱지는 엄마의 휴대폰을 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꼬꼬마던 내 머리로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연락처에 들어가면, 엄마의 엄마와 형제들에게 '울(우리)'이 적혀 있단 거였다. "울 엄마" "울 언니(1, 2)" "울오빠".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 구성원에게 붙이는 말임을 배웠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이를 고대로 따라 하였다. 가족들 번호 먼저 "울 아빠" "울 엄마" "울 언니"라 저장하였고, 이는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고정 수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쓰임새 2] 친구들 앞에서는 "우리 엄마가~"라 해도 어른들 앞에서는 "저희 엄마가~"라고 말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알려줬을 테다. 출신 국가인 대한민국은 무조건 '우리나라'라고 칭해야 되는 것도 분명 배웠을 텐데 틀리고 말았다. 15살 때, 역사 담당이신 智 선생님 앞에서 무심코 "저희 나라는~"이라고 말하였다. 智 선생님께선 곧장 "우리, '우리나라'라고 해야지"라며 단호히 지적하셨다. 그 순간을 기점 삼아 더 이상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되었다.
조국(祖國), 모국(母國), 고국(故國), 향국(鄕國).우리나라를 가리키는 한자어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國 앞에 붙는 한자들의 울림이 진하게 다가와서다. 다른 나라에 가면 이 단어들도 종종 쓸 텐데, 우리나라에만 콕 박혀 있는 한국인이라 쓸 일이 적기는 하다. 순우리말과 함께 한자어도 좋아하는 건 국어에 한자어가 상당해서다. 한자를 넘어 한문까지 배우려는 건 선조들의 글을 읽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한글 소설이다. (* 저자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홍길동전>의 사상을 파악하려면 허균의 <호민론>도 함께 보아야 하는데 <호민론>은 국문이 아니다.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유명한 글들은 번역본이 있긴 하나 후대 사람으로서 직접 읽고 싶다. 요약하자면 우리말과 우리나라 빠순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이리된 데에는 智 선생님의 공이 크다고 본다. 2015년에 가장 재밌게 공부한 과목은 智 선생님께서 맡으신 '한국사'였다. 智 선생님 수업은 학급 친구들이 최고의 집중력을 뽐내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시험 기간에는 한국사에 몰두하느라 서로 문제 내 달라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智 선생님한테는2016년까지 역사(*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웠다. 우리뿐아니라 학창 시절에 智 선생님을 만난 학생들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인격적으로도 멋있으신 선생님 밑에서 다름 아닌 국사를 꼼꼼하게 배울기회였기에 그렇다고 본다.
智 선생님 수업에서는 손을 부단히 움직여야 했다. 한 단락에 불과한 내용이더라도 智 선생님은 두 배로 설명하셨다. 智 선생님에겐 한국사에서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란 없어 보였다. 고조선보다는 조선 시대에 더 공을 들이시긴 해도 우리나라의 모든 순간들을 애지중지 여기셨다. 의의와 한계를 똑똑히 강조하시면서 우리나라의 소중한 역사임을 설파하셨다. 智 선생님의 전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내 고등학교 모의고사 성적이 증명한다. 한국사는 1등급을 놓치질 않았다. 15살에 확실히 공부해 두니 19살까지 문제를 수월하게 풀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智 선생님의 힘 넘치는 목소리였다.
한자는 중국의 것이니 한자어 남용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라는 말이 한자어로 아배(我輩)나 오등(吾等)이라는 건 몰라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한자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동의할 수 없다. 한자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었다. 한자문화권에 중국어를 쓰는 국가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홍길동전>은 국문으로 쓰였으나 한자어가 빈번하게 나온다. 한문으로만 쓰인 우리나라 전(傳)도 많다. 이처럼 고전을 향유하는 일은, 그 작품이 국문이든 한문으로 쓰였든 한자어와 성어를 알수록 도움이 된다. 나는우리말을 위해 한자와 한문을 놓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문학을 복수 전공할 당시 따라오는 반응들은 긍정적이지 못했다.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니?"라는 질타도 받았다. 하나 대학 와서 가장 잘한 행동은 한문학을 복수 전공했다는 점이고, 중학생 시절 제일 뜻깊게 남은 일 또한 한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점이다.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성취가 아니기에 감사할 분들이 계신다. 한문학과에서 뵌 몇몇 교수님들과 智 선생님은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를 마냥 찬양하시진 않는다. 남들보다 좀 더 애정하시는 듯한데, 그 애정엔 국사가 바탕할 테다.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부정하시지도 않는다. 근래의 과오를한탄만 하시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려고 하신다. 이분들을 감사와 동시에 존경하기에 나 또한같은 국민으로서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