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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Sep 26. 2023

으뜸 후에 따라오는 것들

[ㅡ] 으뜸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하는 지점


본격적인 장문(長文) 읽기의 시작에 계셨던 사서 선생님. 언제고 별말씀을 안 하신 덕분에 책을 음미하기보단 폭식하는 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멋모를 때 음미했다가는 괜히 눈만 높아져서 책과의 거리가 벌어졌을 텐데, 편식 겸 폭식으로 무작정 읽으니 책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꺼내온 소설에 이건 야하다고 일러주시면서도 중학생이 읽을 내용이 아니라며 뺏진 않으셨지요. 가채점 점수를 알고 싶지 않아 도서관으로 도피하던 제게 시험은 잘 봤느냐고 묻지도 않으셨지요. 사서 선생님이 늘 그 자리에 계셔서 도서관에 들어갔다 하면 그리도 안정을 느꼈나 봅니다.


  등수에 가장 집착했던 사건은 '독서 마라톤'이다. 학기별 독서량이 1위인 학생에게 상장과 함께 원하는 책 두 권을 부상으로 준다는 안내문이 붙었었다. 하여간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당시 성향 탓에 생기부에 기재되는 수상보다 딸려오는 상품에 눈독 들였다. 원래도 책 읽는 걸 좋아했지만 이 시기의 나는 슬슬 불안해져야 하는 고2였다. 실제론 하나도 떨고 있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눈치는 보였다. "교내 행사 때문에 읽는 거야~ 난 수상 기록이 빈약하잖아~ 책 많이 읽으면 된다네~"라고 으스댈 명분이 생긴 거였다. 명확한 합계를 위해 '독서기록종합시스템'이라는 사이트에 독후감도 올려야 했다. 귀찮은 과정으로 중도 기권하는 학생들이 발생하였다. 하나 내겐 공부보다 독후감 양산(量産)이 더 즐거웠다.


  어느 날, 중간 정산을 복도 방송으로 송출한 모양이었다. 학교 빙빙 산책하기를 마치고 우리 층으로 올라오자, 친구의 친구라 인사만 하던 다른 반 애가 달려왔다. "칠칠아, 너 XX권이나 읽었다면서!" 순간 머릿속의 사고가 뚝 끊기는 기분이었다. 나조차 모르고 있던 총합 권수라니. "그... 그걸 어... 어떻게 알았어?" 물으니까 "방송으로 알려주던데?"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욕심낸 건 책 두 권뿐인데 가뜩이나 싫었던 수식어가 확대되고 말았다. 다른 반 학생들이야 7반의 땡칠칠이 누군지도 몰랐겠다만, 우리 반 친구들은 방송을 흘려 듣지 않았다. <책 읽는 애>에서 <책 엄청 읽는 애>로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3년을 한 반에서 보냈으니 분명 할 말이 많을 텐데... 졸업 앨범 롤링페이퍼에는 '책'이라는 단어가 사방에 적혀 있다. 독서마라톤으로 생긴 이미지를 고수해 나간 내 과실이기도 하다. 어쩌다 툭 던져진 말에도 과하게 반응하는 10대한테 "책 많이 읽는구나?"라는 관심은 얼평과 비슷한 무게의 부담이었다. 내 눈엔 뭔가에 특출 난 애들이 대단해 보였다. 책을 가까이 한다는 이유로 도대체 왜 감탄의 대상이 되는지 쩍었다. 세상엔 책이 얼마나 넘쳐나는데, 내 기준에선 '많이'라는 지점에도 도달 못한 거 같았다. 그러다 백일장에 강제 참여하고 나서는 더욱 드러내고 싶지 않아 졌다.




  부끄러운 순간은 고등학교에서도 계속됐다. 한 번은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팬클럽이 있다는 걸 소개하시면서, "여기 문학소녀가 누구지?" 물으셨다. 친구들은 날 지목하였다. "윤동주의 서시 전문을 말해봐라"라는 말씀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여기 윤동주 시인 광팬이 있나?"라고 물으셨어야죠! 수학여행 다녀오고 나서는 기행문을 기깔나게 쓴 친구들에게 상장 수여다. 책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쓸 줄 아는 편견에, "어? 칠칠이는 왜 없지?" 웅성거리는 몇몇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땅굴까지 숙이고 싶어졌다. "비가 내리면 특정 노래가 떠오르는 것처럼..."이라고 시작하던 내 글은 사적인 일기였으니 받는 게 더 웃겼다. 친구들이 내 무안을 낙담으로 받아들일까 봐 빳빳이 고개 들고 손뼉쳤다. 대표적인 두 사건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3학년이 되니 민망해하는 대신 슬슬 이용하려 했다.


 새 학년 새 학기, 사탐 선생님은 자기소개 도 꼭 말하라고 하셨다. 별다른 진로가 없었지만 "서점 직원이 되고 싶습니다" 거짓말쳤고 친구들은 "어울린다~"라며 납득해 주었다. 책 추천을 바라면 더는 당황하지 않은 채 리스트를 쫙 뽑아줬다. "이거 읽어봤어?" 말고 "이 책은 뭔 내용이야?" 묻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아니!" 성질도 냈다. 이 물음은 아직도 듣고 있어서 이제는 성질낼 힘없기하다.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유명하다고 당연히 읽어 봤을 거라는 기대는 접어주세요. 어찌 됐든 책을 추천하는 일은 은근 적성에 맞기도 하였다. 목록을 산출하기 위해 그간의 독서를 돌아보았다. 지난 감상을 뒤로 하고 어떤 독자가 재밌어할지 고려하자 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선 서평단 활동에도 도전했다. 내 부족함을 깨닫는 동시에 분석하는 자세가 더욱 굳혀지게 되었다.


  애교심(愛校心)이라곤 일절 없으나 올해 모교를 방문하였다. 코로나 기간 동안 무척 뵙고 싶었던 慈 쌤을 만나러 간 거였다. 慈 선생님과 떠들고 있던 중 載 선생님이 내게 다가오셨다. 한때 동아리 고문으로 뵈었을 뿐, 다른 학년만 수업하셨기에 載 선생님이 날 기억하신다는 점에서 당황했는데 더 놀랄 만한 발언을 들었다. "얘 칠칠아, 네가 발표하는 책마다 후배들이 읽고 싶다고 난리였잖니" 우쭈쭈 조미료가 상당량 첨가된 거 같긴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수(卷數)로 밀어붙이는 독서마라톤은 1등 하였어도 그 외 책을 소개하는 발표 대회들은 예선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운 좋아야 장려를 받았다. 심사단의 점수는 짰지만 학생들의 반응이 있었다니! 소득을 뒤늦게 알곤, "네? 말도 안 돼요!" 부정하면서도 기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전공 수업 때, "언어는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권고를 들었다. 마냥 외국어 잘할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외국어로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전공을 '문(文)'만 보고 들어갔다. 입학하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고, 외국어 공부할 시간에 서평단 활동을 내세워 책을 읽어댔다. 1학년 과정에는 문학 수업이 없는지라 "어문학과면서 왜 어만 배우냐!" 투덜도 거렸다. 입시생 때는 전공 관심도를 어필하느라고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선 언어, 문화, 문학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떠들어 댔으면서 정작 불평하기 바빠 진리를 간과하였다. 이후 해외 출판사에서 우리 문학을 수입하겠다는 꿈이 생겼으나 언어 실력이 포부만큼 뒷받침되어 줄 생각을 안 해서... 우리나라 출판사 내 해외 문학 부서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두 진로 모두 현시점에선 밀려났는데, 수단과 목적이 어우러져 꿈을 지녀보니 독서의 질이 달라졌다. 너무 싫은 외국어 공부도 당연 탄력이 붙었다.


  독서마라톤은 순전히 공짜 책이 탐나서 1등 하고 싶었다. 그로 인해 얻게 된 책벌레 수식 때문에 창피도 샀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에서 벗어났다. 좋아라만 하는 '책'에 미지의 독자를 대입시키기도 하고 오랜 스트레스인 외국어를 더해보기도 했다. 2021년에는 100권의 독서량을 목표 삼았는데 "와 드디어 찍었다!"며 만족에 그치지 않았다. 해(年)가 지나기까지 남은 나날 동안 계속 읽었다. 100권은 단순한 목표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100권을 수단 삼아 매일 읽으며 더 넓은 시각을 얻고 싶었다. 언제 또 100권에 도달할지 알 수 없지만 굳이 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의 독서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책을 읽고 남들의 시선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면 아직도 재미로만 책을 휘휘 넘겼을 테다. 고등학생 때 "너는 도대체 책을 왜 읽니!" 꾸중 듣기도 했다. 엄마의 의도는 "공부를 하든지, 문학만 파지 말고 지식서를 읽든지"였지만 이 질문은 머릿속에 으뜸으로 잘 보이도록 두고 있다. 대신 살벌한 엄마톤 말고 <나는 책을 왜 읽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진지한 어투로 고쳤다.


  이 질문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해 보았다. 감사하게도 참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있다. 중학교 사서 선생님, 독서마라톤을 주관하신 국어 선생님, 폭탄 비화를 들려주신 載 선생님, 전공에 등 돌릴 줄도 모르신 채 도움 주신 慈 선생님과 교수님들…. 타박만 하고 책을 뺏진 않은 엄마, 얼마큼 읽냐고 놀라 하던 친구들, 누군지도 모르는 후배들, 추천 좀 해 달라는 지인들…. 어중간한 서평도 받아주신 출판사 직원분들 등등. 아무래도 사람을 좋아해서 책도 좋아졌나 보다.


고등학교 도서관은 무척 작았는데 가끔 이런 보물 찾기가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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