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과참 Sep 27. 2023

별수 없는 학생이던 날

9월 26일 일기

  집순이에겐 나갈 일이 생기면 한 번에 온갖 일을 처리하려는 습성이 있다. 나는 가뜩이나 계획파 집순이라 다가올 하루의 흐름을 상세히 계산해 본다. 이번 외출의 목적지는 터미널과 대학~대학가로, 목적에 수강은 없었다. 아는 동생과의 점심 + 내가 추종하는 사람들과의 인사 + 졸업 관련 과사 방문 등이었다. 제출용 종이가 구겨지지 않을 만한 가방을 찾다 보니 어김없이 '마법의 크로스백'이 선택됐다. 지난 학기까지 늘상 메고 다닌 것으로 두께는 내의(內衣) 수준인데 처지는 일은 없고 책, 프린트물, 노트, 필통, 파우치, 텀블러, 우산 다 들어가는데 크지 않다 보니 남들에게도 경탄받았다. 서울 고속터미널역에서 1000원 주고 살 때는 이걸 메고 대학을 누빌 줄 몰랐다. 싼 맛에 현금을 내밀면서도 어째 쓸 일이 없을 거 같아 아차 싶었다. 제일 바깥(外)에 위치하게끔 하니 어떤 옷에든 스며드는 게 아닌가. 보따리의 믿음직한 본분에 패션 점수까지 더해졌으니, 서울에서의 소비 중 단연 최고라 여기고 있다. 인생은 너무 길어서 작은 일조차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나 보다.


  이러한 스펙에도 학교 갈 일이 없어지자 제쳐 두었다. 잊고 지낸 무색함에 대한 사과로 서두에 구구절절 써 봤다…. 요 가방과 함께 나서니 지난 학기로 회귀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나 오전 9시대라는 시간과 심심하고도 가벼운 손이 차이를 실감하게 했다. 집에서 터미널까진 걸어서 35분이라 매번 암기거리를 들고 다녔다. 1교시 9시 수업(7시 버스)을 들으러 가는 길엔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2교시 10시 수업(8시 버스)부터 있는 날엔 이른 등교 중인 학생들을 지나갔다. 행인이 많지 않은 어중간한 시간대에 묵묵히 걷기만 하니 35분은 지루하고도 길게만 느껴졌다.




  복수 전공과 주전공 과사무실을 각각 들르곤 제1학생회관 카페로 갔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쿠키 종류가 5개나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귀엽기만 한 학교 마스코트 쿠키를 뺀 나머지 세트를 하나씩 구매하고는 현과 주 언니를 기다렸다.  언니는 오후에 스케줄이 빡빡하여 될 수 있으면 오전 중에 보고 싶었다. 학사 생활 현과 통학러 주 언니 모두 점심 이후에 수업이 있으면서 내 안달복달에 평상시보다 일찍 버스를 타주었다. 주 언니가 쿠키를 사려 하기에 가방에 있다고 말렸더니 탐탁지 않아 하며 음료를 멋대로 계산했다. 현과 나는 언니의 카드를 숨길 방법을 궁리 중이다. "칠칠이가 여기 있는 게 왜 이리 위화감이 없지?"라는 현의 말에 찡찡거렸다. 인문대로 와서는 만 교수님을 뵌 듯하다. 자칭 '안경쟁이'라는 현이 "저기! 만 교수님!" 말해줘서 열려 있던 4층 창문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었다. 만 교수님이 저 작은 네모에 서 계신다는 걸 듣고도 내 눈은 포착 못하니 아쉬웠다.


  점심을 약속한 윤과는 근 네 달만에 보는 거였다. 사적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 중 연하는 윤이 유일하여 '언니' 소리도 간만에 들었다. '선배' 대신 '언니'란 호칭을 처음 써 준 이도 윤이다. 우리는 독립심을 길러야 하는 타과생 신분으로 만났다. 알고 보니 윤의 당장의 미래 계획이 내 주전공과 연관성이 커서 더 깊은 얘기를 하게 된다. "선선해지면 만나자"라고 하여 날씨에 맞춰 이맘때로 약속을 정한 건데 언제 보든 정보 전달이 주된 담화일 테다. 윤과 있으면, 대학 첫 '언니'인 혜 언니가 생각난다. 혜 언니는 먼저 청하기도 전에 도움을 주기 일쑤였다. 능력자 혜 언니처럼 되진 못하지만 착한 윤은 별 거 아닌 정보에도 고마워한다.


  윤과 헤어지고 학교로 갔다. 버스가 내려주는 정문 근처나, 대학가랑 연결되는 쪽문은 내 서식지였던 인문대와는 거리가 있다. 다시 오르막길과 계단을 부단히 올랐다. 현, 주 언니에 유 언니도 있다는 건 통화로 알았다. 그런데 처음 뵙는 분도 있었다. 나와 동갑내기라 하여 통성명 후 말을 놓았다. 서라는 친구로 불과 오전 중에 이름을 들어서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이들의 전공 교수님인 민 교수님을 뵈러 가는 길에, 네 사람과 학과가 다른 내가 합석한 거였다. 생신을 숨기려다 실패하신 민 교수님 앞에서 깜짝 축하 노래를 부르고자 꼈다.  


  주 언니는 다음 수업이 있는데도 지각을 감수하고 대빵으로 나서주었다. 나는 애당초 수업이 없고 세 사람은 다 끝났다고 하였다. 동분서주한 언니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아쉬움이 남아 카페에 가기로 입을 모았다. 유 언니와 노는 건 이번이 두 번째고, 서는 오늘 알았지만 누구와 있든 막무가내로 재밌는 현 덕에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다. 유 언니가 깜찍하면서도 은은하게 웃긴 성격임은 겪어봤다. 서는 현처럼 대놓고 웃기면서도 수줍어하는 면이 있다. 웃긴 사람들하고만 있으니 정신이 절로 말똥 해졌다. 아무래도 고정된 시간표가 없어지며 '바른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다. 8시 기상은 학교 다닐 때의 내겐 감지덕지였음에도 이번엔 눈이 무겁기만 했다. 학교 갈 일이 없어지니 동난 녹차(카페인 섭취용)를 구비하는 일도 잊었다. 이러다 오랜만인 사람들 면전에서 졸까 봐 걱정했는데 거뜬했다. 어두컴컴한 버스 안에 몸을 눕히고 나서야 졸음이 조용히 밀려왔다.




  지난 학기, 소속감을 드높게 사시는 민 교수님의 수강생이 돼서 '단체 사진'도 생겼다. 벚꽃이 한창 흩날리던 때, "꽃구경 가요~"라는 학생들 앙탈에 커피와 함께 벤치로 데려가셨다. 수강생들을 세우시곤 사진도 찍어 주신 거였다. 역시 타 학과생은 나뿐이었지만 이 순간을 계기로 목례로나마 인사를 주고받는 분들이 늘어났다. '코로나 학번'이라 불린 20학번으로서 대학 내 추억이랄 게 없었었다. 20살에는 동기조차 잘 알지 못했고 21살에는 학과 행사를 줌으로 가졌으며 22살이 돼서야 단체 술자리에 나가봤다. 익숙해진 지 오래인 마스크의 불편함과 달리, 집단 속에서 말 한마디 내뱉지 않고 귀만 여는 건 도무지 적응되질 않았다. "서로 말 좀 나눠봐요"라며 당혹스러워하신 교수님도 계셨다. MT란 걸 떠나본 적 없다가 눈치껏 끼면 안 되는 고학년이 되자 집순이 주제에 아쉽기도 했다. 결국 1박 2일로 진행되는 학습 캠프에 신청함으로써 학교 수련원의 궁금증은 해결했다. 동일 학과생을 바라는 욕심은 내려놨으나 70명 중 인문대생이 나 혼자라는 데에 또 한 번 기겁하였다.


 올봄에서 여름 동안 그간의 한은 싹 풀렸다. 졸업 학점을 다 채워, 학기 등록은 해도 수업은 안 듣는 처지인 근래, "이제 졸업인데 같이 다니고 싶다" 같은 앞뒤 안 맞는 발언도 내뱉어서 야유를 산다. 통학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걱정들에 "안 힘들어요!"라는 새빨간 거짓말은 양심상 못해도 지난 학기 한정 "힘들어도 괜찮네요~"라는 너스레는 떨 수 있었다. 여러모로 지쳤지만 대개의 수업과 보통의 공강엔 현과 주 언니가 함께 해서다. 평일 중 마지막 수업도 현과 들어서 터미널까지 동행했다.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꽉 찼던 하굣길에 쉴 틈 없이 얘기를 나눌 순간이 주에 한 번은 생기니 다른 날 혼자 걷더라도 걸음은 가벼웠다.


  어째 주전공보다 복수전공 기억이 더 많다. 똑같은 '전공'이라 해도 공적 단톡방에 초대되지 않는 타 학과생이다 보니, 자칫 <거침없이 하이킥> 속 하숙범처럼 보일까 봐 멋쩍기도 하다. 다정다감한 사람들은 복수 전공으로만 시간표를 꽉꽉 채웠던 내게 '하숙' 대신 '명예'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지금은 수업 하나 듣지 않는데 여전히 '명예 학생'이라며 놀려댄다.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현과 주 언니는 나와 졸업 시기가 같질 않아서, 졸업식이 지나고도 학교는 찾아갈 듯하다. 윤이 오랜만에 학교 가니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반갑지도 색다르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여느 때 일상 같았다.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얼굴들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 두 사람 다 졸업하게 됐을 때야 추억 단계에 진입하지 않을까 싶다.


이다음엔 주 언니 몫까지 다섯 잔이길!
매거진의 이전글 토토 할아버지와 멍멍이 누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