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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Oct 05. 2023

첫 혼영은 다름 아닌 부산에서

  '다음에' 대장이 드디어 걸음을 뗀다. 공식 행사가 껴들어와서다. 반 학생 반 백수에게 짜인 스케줄이... 있겠는가. 어느 공인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게 됐다. 데뷔하고 첫 예능 출연도 모자라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 참석한다는 색다른 소식에 굼벵이는 1주에서 2주 가까이 꾸무럭거리다가 본격적으로 꿈틀거리려 한다. 완전히 따라 하기엔 물가가 치솟는 주말이 껴서 10월 5일에서 6일, 후다닥 갔다가 느긋하게 돌아올 예정이다. 목적지는 지정 영화관 중 하나인 CGV 센텀시티점이 자리한 해운대구다. 굼벵이 서식지부터 시내버스 1시간+SRT 2시간+지하철 40분이 소요된다. 올 때는 다시 시내버스 1시간+고속버스 3시간+아빠카 찬스(미정)다. 똑같은 거리인데도 시간이 불어난 건 하루 더 묵을지 고민하느라 기차표 예매를 '다음'으로 미루는 바람에 기막힌 미래를 떠안게 됐다. 귀갓길의 느긋함은 의도한 게 아니라 정신 승리 차원이다.


  기차와 버스 예매창, 없으면 큰일 나는 지도 어플을 들락거리다 보니 어깨를 주물러 주어야 할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인 아빠와 언니에게 슬슬 타칭 인정도 부여해야 할 듯싶다. 끙끙 머리 싸매지 않도록 출발 전부터 일사분리로 지휘했던 J(계획형) 지인들도 있다. 나도 퍼센트만 따지면 계획형인데 기차표 예매에 실패한 이상 이들과 견줄 순 없게 됐다. 고속버스로 돌아온다는 것도 함구하려 한다. 당장 좋은 좌석을 잡는 게 관건이 돼서 예매날부터 날마다 부국제 홈페이지 수십 번 들어가는 데에 에너지를 싹 써버렸다는 것 또한 지나친 변명. 그리하여 좋은 자리를 잡았느냐 하면... 입꼬리까지 꿈틀거린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정신으로 4일 밤까지 시도한 결과 양일 모두 사이드에서 정중앙으로 나아갔다. 실제 관람으로 이어진 <마지막 티켓팅>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한 아이돌 그룹 무대였다. 공연장은 잘달막한데 그룹 인원은 많다 보니 사이드를 선호하는 팬들도 있었다. 중앙에서 조망하기보다 '최애'가 주로 서는 쪽에 앉겠다는 차원에서다. 이번에는 팬덤 행사가 아닌 공식 행사다. 내가 겨뤄야 할 사람들도 팬보단 부국제를 즐기러 온 콘텐츠광들이기에 중앙 쟁탈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크린이 잘 보이는 좌석을 선점한 것만으로 반은 달성했다고 본다.




  이번 일정에 <혼영, 혼여, 혼숙>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혼자 여행하는 걸 '혼여'라 부르는 게 맞는지 갸우뚱거리며 말을 꺼내자 줄임말 달인 주 언니가 깔쌈하게 정리해 주었다. 혼자 영화관 가는 건 물론, 숙박이 낀 여행을 혼자 하는 것도 처음이다. '다음에' 대장 칭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과제 있으니 다음에, 시험 있으니 다음에, 놀 처지가 아니니 다음에, 수입 없으니 다음에... 미루고 미루다가 아빠엄마에게 '과보호 부모'라는 오인이 따라와서 당황하였다. 오히려 우리 집안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인데 뭐든 첫째와 둘째는 상반되기 마련인지 언니만 그리 자랐다. 전국 팔도를 쏘다니는 언니를 거론하며 우리 부모님이 그리 엄하시진 않다고 해명하니 '언니 때문에 과보호당하는 동생' 이미지가 됐다. 내가 그 정도로 집구석에만 있었나…? 보러 가는 게 영화는 아니다. OTT 드라마인데 공개 전 부국제에 초청받았다. 그 덕에 1화에서 3화를 널찍한 스크린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주연으로 맡은 영화는 2016년이 끝이라 '무대 인사'는 꿈도 안 꾸었다. 못 꾼 게 아니라 안 꾸었다. 해당 영화를 보긴 했다만 2016년에 나는 16살이었고 아이돌은 몰라도 배우는 대면할 일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다 정보를 알고도 연예인을 실제로 볼 필요는 없다는 비관주의자로 잠깐 살았다. 모든 게 불만이었던 고딩 생활을 청산하니 배우는 깜깜무소식에 팬미팅도 코로나로 열리지 않으며 때를 놓친 아쉬움은 날로 커져갔다. 작품을 꾸준히 찍는 게 팬한테는 행복한 일인 줄도 모르고 당연시 여겼다가 애타는 일반인이 되었다.


 이 배우는 내 첫 연예인이기도 하다. <꽃보다 남자>를 보며 신예 배우 이민호에 관심 둘 게 아니라 성깔 특이한 '구준표'만 기억하던 초딩 시절,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도 애청했다. 마지막 화가 방영되곤 여느 때처럼 "명문대에 입학하며 잘 끝났습니다"라는 해피 엔드에 만족하지 않았다. '황백현'이라는 사람이 텔레비전을 안 볼 때도 떠올랐다. 척척박사 엄마에게 물어보며 당시 우리 집에 책으로 있던 <가시고기>에서도 동일한 사람이 ‘연기’ 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충격을 안긴 황백현 얼굴은 한다면 하는 학생이 아니라 한창 어릴 때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한 유승호임을 기억하였다. "내 첫 오빠야 ㅋ"라 으스대고 다닌 건 모두가 연예인에 환장하던 10대 시절에 그쳤다. 20대가 되니 날이 갈수록 연예인이 대화 주제로 거론되지 않으며 "넌 어떤 연예인 좋아해?"보다는 "넌 취향이 어떻게 돼?"라는 답변에 예시로 연예인을 든다. 엄마에게 어디 가서 딸내미 연예인 보러 부산까지 간다고 말하지 말라 강조했다. 엄마 외 딱 두 사람에게만 "유승호 (오빠) 본다!" 자랑했다. 아빠와 언니마저 내가 멋들어진 부국제를 즐기고자 부산에 가는 줄 안다. 부국제는 목적이긴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국제에 초청받은 드라마 <거래> GV가 타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족감이 금방 충족되는 편이라 여겼다. 직접 겪지 않고 콘텐츠 등 간접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으니까. 돈 쓰는 건 피하고 유튜브로 영상 보거나 인터넷에 뜬 사진만 저장하는 행위를 '가성비 덕질'이라 이른다. 나는 내 '가성비 덕질'은 인정하는데 어쩌면 오래전부터 '가성비 여행'도 취해온 게 아닐까 싶다. 여행가들은 그저 빛나고, 얘기를 들을수록 더욱 빠져들지만 '아, 나도 저 사람들처럼 떠나봐야겠다'라는 마음은 갖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저런 식으로 못 다녀'라는 섣부른 판단이 기인했으리라. 좀 더 가볍게 말하면 '초치기'를 내 경험에 가장 일삼았다. 실제 관람으로 이어진 건 7년 전 무대라 하였지만 티켓팅은 꾸준히 도전하였다. 표를 못 잡으면 체념했으면서 운 좋게 표를 잡는 데 성공해도 기쁨은 잠시였다. 티켓값도 비싼데 교통비는 얼마나 들까, 늦게 끝나면 집까지 무슨 수로 오나, 식비는 또 어쩌지, 나만 즐기면 안 되니 사람들 선물도 고려해야 하는데 등등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추진하기에 삐끗할 지점들은 숱하게 있었다. 삐끗하다 보면 휘청이다가 아예 넘어질 것만 같았다. 똑바로 걸을 생각은 안 하고 자빠질 걱정부터 한 게다.


  22살에 잠시 ‘지역’ 관련 알바를 하였다. 관공서 소식을 퍼다 나르는 일이었는데 매일 도청, 시청, 군청 들어가다 보니 다양한 지역명들에 정이 들었다. 우리나라 땅덩어리는 넓지 않다는데 이 안에서도 못 가 본 곳이 천지니 묘한 기분이었다. 순도 100의 우물 안 개구리 같았다. 온전하지 않아도 어찌 됐든 긴 자유가 생기자 사람들은 '여행'을 엄청나게 추천한다. 엄마는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내가 이곳저곳 다녀보길 바란다. 신념인 줄 알았으나 똥고집이었던 오랜 거부 끝에 방아쇠가 연예인으로 당겨진 건 멋쩍긴 하다. 1박 2일 <혼영, 혼여, 혼숙>을 다녀오면 이전과 관점이 달라질 순 있을 테다. 돈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100% 만족은 찍지 못한다. 출발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오니 기대 자리까지 걱정이 차지해 버렸다. 그렇다 해도 시도를 넘어 경험에 도달해 봐야 불평에도 근거가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양일 영화표 18000원을 시작으로 SRT 37600원, 숙박 업소 6만 7천 얼마, 고속버스 티켓 34000원 어후! 출발도 전에 15만 원을 훌쩍 넘긴 금액에 벌벌 떨고 있긴 하다. 작년부터 저축할 때면 "백수일 나를 위해..."라며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버릇인 '다음에'와 고질병이면서 쓸데없이 크기만 한 걱정이 얽히며 소비는 꺼려만 졌다. 만 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도 행복을 채울 수 있는 현재의 내게 이번 지출은 소확행을 넘어 대확행이다. 작은 물건이 빠개지면 아쉬워는 해도 별수 없어하고 마는데, 이 대자짜리에 버금가는 ‘행‘을 얻지 못할까 봐 … (생략) '걱정'이란 말을 피하려면 서둘러 마쳐야겠다!


+ 1일 차가 곧 끝납니다. 정신 부여잡느라 이제야 발행하네요. 내일부턴 제 눈물이 묻어 나오는 후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우물 안으로 가고 싶어지는 개구리는 어쩌면 좋을까요. 혼여 쉽지 않네요. 2일 차는 좀 짠내가 덜나게 보내겠습니다!!!


점심-카페도 못 정해서 저장만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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