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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Oct 07. 2023

혼여 2일 차 - 미련도 미래도 생각말기

  (혹여나 드라마 '거래' 키워드로 들어오신 분들께. 스크롤을 내려  표시를 찾아주세요!)


  비단 1일 차뿐 아니라 그간의 궤적에서 가장 지워버리려고 용을 쓴 건 후회다. 지나간(後) 일을 뉘우치는(悔) 자세는 필요한 상황도 있으나 관련된 이도 피해본 이도 <나 자신>밖에 없다면 불필요한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열여섯 살 때, 마지막 수학 시험이 끝나곤 울었다. 왜 우냐고 걱정한 친구 얼굴은 또렷한데 몇 점을 맞았는지는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에는 우는 법이 없어서 어른들한테 평판이 좋았다. '없는' 게 아니라 쌓이고 있었는지, 좀 자라고 나선 우는 나날이 길었다. 모든 후회에 눈물이 뒤따라 는데 운다고 해서 '없는' 일이 되진 않아서였다. 이처럼 두 눈에 달린 헐거운 수도꼭지야속했다. 우는 걸로도 모자라 화까지 내며 빼낼 방법을 찾아댔다. '없애는' 대신 대안책으로 갈아 끼우자 알맞은 슬픔 뒤에만 눈물이 따르고 있다. "다 울었니? 이젠 할 일을 하자"라 말풍선이 달린 오은영 박사님 짤이 있다. 이 과도기를 거쳐 "우는 대신 마른세수나 하자"는 마인드로 산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


  혼여 첫날 동안 마른세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기차역에 1시간 30분 일찍 도착한 게 마른세수의 시작이었다. 부산까지 달려오게 만든 '배우님'은 엄지 손가락만큼 작게 보여서 피부 까질 정도로 마른세수를 하였다. 짐을 이고 대교를 건너 바다뷰 숙소에 도착했다. 해가 진지 오래라 밤하늘을 닮아 새까매진 바다는 기대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손톱 거스러미를 안 뜯으려면 쓰레기라도 쥐고 있어야 다. 마른세수를 그치고 싶으면 두 손을 달리 쓰며 얼굴은 가만 두어야 했다. 밖으로 나가 포즈 취해 사진도 , 손 시리게 차가운 음료를 테이크 아웃하니 손 더 움직이고 싶어졌다.


  어느덧 자정, 6일(금요일)이 찾아왔다. 마른세수를 그칠 방법으로 수면도 있건만 날 더 외롭게 만든 해가 보일 때까지 잠이 아예 오지 않았다. 숙소를 환 비추는 해 실시간으로 보자 다시 마른세수를 할 뻔했으나! 아침 바다 참 예쁘니 사진이나 찍었다. 부산에서 하룻밤 머문 건 5일에 이어 6일에도 상영과 GV가 예정되어 있어서였다. 원체 반응 속도가 느리다 보니 첫날엔 "손 들어주세요"라는 사회자분 반응에 응하지 못하였다. 숙소에 손 빨리 들기 연습하며 물음도 미리 적어놨으나 이튿날 표는 취소했다. <거래> 감독님과 배우분들이 부탁하신 건 입소문이다. 입소문 내 줄 사람 한 분 더 늘게끔 나는 빠졌다. 러닝과 GV 시간 합치면 대략 160분 정도인데 전날과 달리 부산에 있을 시간도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희뿌연 인상 한 번 더 보고 질 끼싶단 미련은 놓아주었다.


  이참에 강조하신 '입소문' 타임

  OTT 플랫폼 웨이브에 <거래>라는 8부작 드라마가 공개되었습니다. 부국제에서 가장 먼저 상영되었던 터라 3화까지 시청하였는데요. 1화보다 2화가, 2화보단 3화가 더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채에 손을 댔다가 군대로 도망간 바람에 빚이 불어난 준성, 여럿과 커닝하였는데 입막음할 돈을 혼자만 내지 못해 의대 퇴학 예정인 재효. 이 두 사람이 부잣집 외동아들 민우를 인질로 붙잡고는 돈을 뜯어내려는 얘기입니다.

  보통의 인질극과 차이가 있다면 (1) 민우는 사리분별이 가능한 성인이다 (2) 세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에 20대 초밖에 안 됐다 (3) 당사자가 납치범들의 존재를 안다 (4) 납치주도이는 한 사람이다 (5) 외딴곳이 아니라 자취방에 감금하였으니 건물주 애인(무려 경찰 준비생)까지 범죄를 눈치챘다 (6) 제시한 금액은 10억인데 민우 100억도 주겠다고 한다 ... 등등입니다. 선악이 얽히고설키기에 누구 하나 편들어 줄 수도, 시원하게 욕할 수도 없는 딜레마 갈수록 더하다는 감독님 장담이 뒤따르네요.




  전날 제대로 먹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수면도 챙기지 않아서 어후... 얼굴이 말도 아니었다. 퀭하면서 푸석해진 건 납득 가능하나 왜 빵빵해지기까지 한지. 거울을 의심하다가 외양 미련을 버리잔 마음으로 출발했다. 계획 없이 움직이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어깨와 손목에 매달릴 준비를 하는 짐들 때문에 동네만이라도 정했다. 아침부터 가려면 바다 아니면 시장이 나았다. 바다는 숙소 바로 옆인 데다 지하철 향하는 길에 들를 수 있기에 시장으로 택했다. 그 유명한 국제시장이 있는 자갈치역으로! 우리 동네에는 지하철이 없다. 타지에서 지하철 탈 일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무거운 짐을 이고 탄 적은 없었다. 고생해 본 결과, 또 하나의 '혼여' 지혜를 터득했다. * 손이 안 닿아서 짐칸에 올릴 수도 없는 키 작은 시골쥐들은 가장 끝칸을 이용하십시오. 부산에 하루 묵었다고 익숙해지긴 한 건지 눈에 익은 역들을 지나치며 졸기도 했다.


  물품 보관함 먼저 찾았다. 전날엔 다 안 들어갈까 봐 불안해서 '중' 칸을 이용했는데 딱딱한 캐리어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압축 가능하지 않은가. 이번엔 '소'칸을 택해 낑겨 넣었다. 서성이던 아주머니분들도 사이즈를 고민하신 건지 보관함을 열자 다가오시곤 "소도 널찍하다!"라며 안심하셨다. 국제시장은 완전한 처음은 아니며 혼자 오는 게 처음일 뿐이다. 그때도 이번처럼 "아침부터 갈 곳이 없어서" 예정에도 없던 국제시장 찾았는데 부모님도 자식도 가장 만족한 시간이 됐다. 그렇다고 어제의 배움이 있으니 기대를 품는 않았다. 낯선 곳을 맛봐야 한다는 미련을 버리고 '낯이 익지만 새로운' 감상이고 싶었다.


  '미술의 거리' 지하에 있는 복합 공간에 갔다. 작업하시는 분들 슬쩍 감탄의 곁눈질 보았다. 각양각색의 작품들(* 사진 촬영 불가능)을 한 차례 돌아보고는 아무렇게나 걸었다. 골목이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는 알 순 없었다. 지도상에 있던 깡통시장이란 데도 진입한 건지 아리송했다. 똑같은 가게를 서너 번 지나치는 등 무턱대고 빙빙 돌다가 '보수동 책방 골목'도 거닐었다. 전날 2만 3천보의 뚜벅뚜벅은 불안과 걱정이 가미되어 있었다. 일정도 없고 미련도 놓은 뚜벅이에게는 이것들이 하등 필요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존 것도 모자라 허기짐까지 느끼고는 "이야~" 괜스레 놀랐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불안하면 배가 안 고프고, 걱정되면 잠도 안 오는 요상한 체질 때문이었다.


  엄마가 "한 벌 더 사 올걸!" 아쉬워하던 옷가게와도 우연히 맞닥뜨렸다. 전날처럼 지도 어플 찾았다간 골목길을 헤매며 또다시 배터리 5%를 경험했을 테다. 가을겨울옷으로 채워져 있어서 엄마템 여름 카디건은 못 보았다. 구제 가게들은 부모님을 대동하고 들어가봤었는데 산더미를 헤집는 고수들 사이에서 누가 봐도 여행객 차림새로 도전하기엔 철판 까는 스킬이 부재하였다. 밖에서만 구경해도 눈은 즐거웠다. 제대로 된 첫 끼니는 '먹자골목'에 위치한 식당에서 5000원짜리 잔치국수로 장식했다. 아무래도 여행객 티가 나지 사장님이 내게는 존댓말로 상냥히 대하셨는데 부산 사투리를 쓰시는 손님들과는 반말로 대화하셔서 웃음이 났다. 가장 기막힌 순간은 도예 가게에서 벌어졌다. 우는 고양이에게 다가갔더니 처음에는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떨다가 내 어깨에 양팔을 딱 올리고는 턱을 콱! 깨무는 게 아닌가. 고양이가 때리기와 깨물기를 잘하는 건 익히 들은 데다가 숱하게 당했도 봤다. 하나 살을 부대끼며 살아본 적은 없어서 사람 도 깨무는지는 몰랐다. 본가 도착할 때까지 턱끝도 아니고 턱 자체가 얼얼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떠올리며 인근 BIFF 광장도 지나쳤다. 젊은이들보다 어르신들이 거대한 스크린을 바라보고 계시는 걸 목격하자 부산이 확실히 '영화 도시'임을 실감했다. 남포동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도 갔다. 하필 딱! 부산에 머물고 있는 오늘부터! 좋아하는 캐릭터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 하여 기억에 남겨 두었다. 전날에도 소품샵은 여러 차례 갔으나 부산행을 열렬히 배웅해 주고 마중도 해 준 현과 주 언니, 나처럼 본가에 머물고 있는 린,  팬클럽 탈퇴할 일 없는 내 사랑 엄마에, 음... 음... '그냥 우리 언니' 것만 샀다. 팬으로서 눈 돌아가는 경험을 이 순간 해 보며, 버스 시간을 7시 30분에서 3시로 당겼다. GV 표를 취소한 새벽엔 원 없는 2일 차를 보내겠다고 다짐하였다. 이곳까지 들리자 '원'이 싹 풀린 걸로도 모자라 웃음 만땅이 되었기에 이 기세를 몰아 버스 타고 픽 쓰러져 잠자면 완벽해 보였다. 자유로 다니100프로 계획 여행 때는 지지부진하던 만족도가 단시간에 채워졌다.


  시간을 당길 거면 버스 말고 기차도 있었다. 하나 기차는 좀만 가면 안내 방송이 나오고 홀로 앉지도 못하니 더 불어난 짐도 문제 사항이 됐다. 버스는 기차보다 1시간 늘어나 총 3시간이 걸린다고 떴는데 3시간은 무슨! 겪은 적 없는 금요일 퇴근길 도로 상황은 무시무시하였다. 4시간을 버스에 짱 박혀 있었다. 얼얼한 턱과, 쥐 나기 일보 직전인 하체로 후들거리며, 지도 없이도 갈 수 있는 우리 동네 복귀했다. "넌 애간장 태워서 더 이상 (혼자) 여행은 아웃이여"라는 말 반복하는 엄마에게. 이 정도면 선빵한 여행 아닌가요?


너무 예쁘지 않나요. ㅎㅎ
스마일이 곰돌이 코에도!
<거래>와 함께 <틴틴팅클>이란 만화도 추천합니다. 사랑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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