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나이가 싫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데다 대개 유연하게 굴 수가 없어서다. 고민과 걱정, 불안과 방황, 심하게는 우울이 꼭 이십 대 초중반 하고만 동일선상에 놓이는 키워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땐 전부 그득해 보인다. 고민 몇 스푼, 걱정 몇 스푼 ... 이 합쳐진 게 아니라 각각 몇 비커로 넘칠 듯 있으면서 덜어낼 힘이 없다 보니 무력(無力)까지 달고 산다. 보통은 돈도 없다. 고민부터 우울까지 쓸데없이 짊어진 건 많으면서 사람 놀리는 건지 쓸데 있는 건 부재한 셈이다. 당장의 문제가 나중에 생각하면 별거 아니라는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1년에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해(年)가 한국 나이와 동일하다. 4월생이라 주민번호가 010으로 시작하여 휴대폰 번호 적은 거 아니냐는 오해도 곧잘 산다. 어찌 됐든 현시점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앞서 말한 바, 내 나이인데 조만간 10월이 저물면 좀 더 구체적으로 2023년의 10월 달리 말해 스물셋의 시월이 될 터이다. 역대급으로 '인생노잼시기'이다! 쓸데없이 짊어진 건 무겁고, 없는 것도 막대한데, 재미까지 잃고 말았다. 이러다간 자기연민이란 늪에 빠질까 봐 안 그러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현시점 말고 인생만사 인생만물 통틀어서 가장 꺼려하는 게 자기연민이기도 하다.
'인생노잼시기'에 누구나 정거할 수 있듯, '자기연민'도 누구든 빠질 위험이 있다. '인생노잼시기'는 '시기'라는 표현이 포함된 것처럼 일정 기간인 반면 자기연민은 중독이라는 차이가 있다. 게임을 잘할 만큼 두뇌 회전이 빠르지 못해서 게임 중독 걸릴 일 없고, 술맛을 알고 싶지 않아서 알코올 중독에 시달릴 일 없으며, 도박을 혐오하여 도박 중독 겪을 일도 없으리라 본다. 이런 데도 중독의 위험성을 아는 건 자기연민 중독을 심하게 겪어 봐서다.
이는 15살에 시작하여 22살에 막을 내렸다. 인생의 1/3을 고스란히 자기연민에 '꼬라박은' 것이다. 의학 개념인 정신병 말고 부정적 의미의 '정병'도 당연 시달렸기에 "아우, 도대체 왜 그러고 살았니!" 등짝을 내려치고 싶은 기억이 허다하다. "흑흑 안쓰러운 나 자신"거리며 주변 사람들 질리게 만드는 유형은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새끼, 왜 사냐?"는 식으로 발발해서 자기연민에 자기혐오까지 더해진 대환장 조합이었다. 중독은 완치도 없다는데. 자기연민이라는 오랜 토네이도에서 간신히 나오며, 재발하기 전에 돈 있고 힘 있는 사람 먼저 되고 싶었건만 인생노잼시기라는 또 다른 재해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하루하루가 '그지같다'는 감상은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 그저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빠져나가는 모래알같기는 처음이라 허망하기보단 당혹스럽다. 몸과 마음 다 힘든 그지같은 나날 vs 몸은 힘들지 않은데 얼굴 근육 굳어버리는 노잼 시기, 둘 중 어느 쪽이 나은 건지 모르겠다. 1차 인생노잼시기는 10월로 한정하고 있으나 이는 내 바람일 뿐, 어느 지경까지 길어질지도 마찬가지로 미지수다.우씨어쩌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