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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Oct 08. 2023

망망대해(115번째 글)에선 인사를

  날 못살게 굴던 블루투스 키보드가 언니 손과 닿자 단번에 켜졌다. 설명서는 물론 유튜브 시범 영상까지 들여본 데다 조작법이 삐끗할 만큼 까다롭지도 않다. 그저 내가 애걸복걸하던 때는 켜질 마음이 없었던 것이고 언니가 툭 건드리자 때마침 불빛을 깜빡일 의욕이 솟아오른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멍청이거나 키보드가 괘씸하거나 둘 중 하나로밖에 추론할 수 없다. 기상부터 <오늘은 당최 무얼 쓰지> 줄기차게 고민했다. 어느 것 하나 종결지은 주제(매거진)가 없기에 써야 하는 내용들은 많은데도 쓸 수 있게끔 잡히는 소재가 없었다. 낮 중엔 첫 문장을 아예 낚지 못했다. 해가 지자 첫 문단까지 어찌어찌 만들었으나 그뿐이었다. 몸집 작은 생선이라도 잡아 올리곤 맛은 좋을 거란 기대에 불판에 올렸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 곧장 다 타버린 기분. 솜사탕을 얻었는데 여느 때처럼 물에 씻다가 먹을 게 없어진 라쿤마냥 당황과 황당이 뒤섞여 절규하고 싶어졌다.


  상황을 돌아보았다. (1) 가시지 않은 졸음이 문제인가 싶어서 씻고 나왔다. 욕실에서 피어올랐던 생각들은 욕실 타일보다 더 하얀 백지와 마주하자 자신 없다며 싹 다 숨어버렸다. (2) 노트북 화면이 문제인 줄 알고 누런 빛깔의 휴대폰 메모장에 들어가 봤다. 노트북이 옆에 있는데 왜 불편한 천지인 키보드를 택하는지 의아하다며 생각들은 여전히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3) 소음이라도 줄이고자 가족들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노트북과 떨어지니 휴대폰 메모장을 이용할 기회를 얻었는데 결실 없는 시도에 그쳐버렸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나 자꾸 조잡해지기만 해서 메모를 새로 쓰길 반복하였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건전지를 갈아 끼워도 깜빡일 기미가 안 보이기에 고객센터에 문의하려 했었다. 이틀 결별해 있던 노트북과 재회한 후에는 필요하지 않다고 신경을 끄고 있었다. 해야 할 게 있다는 언니가 패드를 원활히 쓰고 싶어 하자 블루투스 키보드는 부활했다. 내 증언에 모두들 고장 난 줄 알고 있었는데... 나 아직 살아 있어요, 깜빡이는 키보드로 인해 집안 내에서는 내가 멍청이인 걸로 결론 났다.


  언니와 블루투스 키보드의 만남을 본받으며 후퇴 대신 집착을 하고 싶건만. 머릿속은 언제까지고 사방 낚아챌 게 없는 망망대해이다. 제시간에 발행하지 못하면 어쩌나 초조한 적은 많아도 소재조차 택하지 못하기는 처음이다. 배(船)는 나아가지 못한 채 한가운데 표류하고만 있다. 답이 없음을 감지한 낮 중에 돌렸으면 낮 동안 쉬다가 밤낚시에 도전해 보자고 힘을 냈을 테다. 하나 미끼만 낭비하면서 고집부리다가 배를 움직일 동력마저 동나고 말았다. 건져 올린 게 없다고 배가 제 기능을 안 한 건 아니니 <오늘의 수확 없음>을 책임자 선장으로서 구구절절 남겨 보았다. 이쯤 되면 밤하늘이라도 바라볼 것이지, 캄캄해서 보이는 거 하나 없는 밤바다에 미련을 못 놓고 있다.




  근래 자정 직전에 간신히 '발행'하는 날이 많았는데 결국 초고조차 저장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졸업 논문은 어떻게 쓰는 걸까요? 매달리고는 있는데 겪어본 적 없는 글쓰기여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브런치 활동이 제겐 가장 의미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매일 올리려 했으나 오늘처럼 얼렁뚱땅 넘기는 건 한 번으로 족할 듯합니다. 앞으로는 글이 못 올라오는 날도 있을 거 같아요. 브런치도 산이고 졸업 준비도 산이고 취직도 산인데 제 몸은 하나이니 등반 기한이 정해진 산 먼저 차근차근 공략하며 왔다 갔다 하겠습니다. ㅎㅎ 짧지도 않은 데다 줄기차게 올라오던 글들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무한정 감사드리며... 이리 고백한 게 민망할 만큼 낚을 게 생기면 금방 올리겠습니다. 당연 다른 작가님들 글은 꾸준히 읽을 것이고요. 감사합니다!


행운의 클로버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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