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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Jul 20. 2023

♧ 열쇠당번과 오리걸음 1

서이초 1학년 담임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열쇠당번 일화를 먼저 언급하려 했지만 하고픈 말이 길어져 뒤로 보냈습니다. 일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말고 열쇠당번을 겪지 못한 걸 보면 그 선생님만의 제도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당연히 없을 테고요. 이는 아주 까마득한 일화도 아닙니다.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은 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릴 만큼 젊은 나이, 사회에서는 특히나 어리디어린 나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답답하고 원통스럽습니다. 그 선생님이 목숨을 끊은 장소가 학급 창고라면서요. 창고가 커봤자 얼마나 크겠습니까.... 

  내 자식이 놀다가 몇 분 동안 창고에 갇히는 불상사가 벌어져도 미칠 텐데, 그 비좁은 창고 안에서 어느 집안의 귀하디 귀한 딸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학부모가 교육자를 교육자로 대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교사에게 어찌 존경심을 품을 수 있을까요? 저는 철저히 자식 입장에만 서 봤기에 네가 뭘 아느냐 싶은 분들도 계실 테지만 교사와 종일토록 붙어 있는 건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선생님과 교류하는 건 학생의 몫인데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그것도 우리 아빠엄마가 최고라 여기는 시기에, 부모가 교사를 하대하는 걸 보면 아이에게 선생님이 어떤 이미지로 만들어지겠습니까?


  저는 학부모 세대와 아이들 세대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 학부모 세대가 교사에게 맞고 자란 걸 익히 들은 터라 교육자에 대해 갖는 반감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 내에서 체벌이 금지된 건 제가 초등학생 때의 일입니다. 이번 서이초 신규 교사는 제 또래이고요. 원망의 화살이 잘못 향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그때 교사들이 잘못했기에, 지금 교사들이 업보를 맞는 거라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이 현상이 옳은 건 결코 아니지요. 대학교 간판에는 그리도 민감하면서, 대학에 가기 전에 겪는 의무 교육, 그 의무교육을 지탱하는 교육자의 권리에는 해이해지는 현상이 기막히지 않으신가요?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이 뭐냐고 물었을 때 아이들은 학원 내의 공부, '사교육'을 떠올리기 바쁘겠지요. 


  서이초는 가정통신문에서 교묘하게 말을 감추고, 일기장에서 애인과의 이별이 언급됐다는 이유로 자살 동기에 사생활도 있다는 식으로 구는 게 역겹습니다. 

  근래만 보더라도, 키가 170에 70kg 나가는 학생에게 몇 분 동안 폭행당한 담임 선생님, 남친과 '뜨밤(뜨거운 밤)' 보내라며 조롱당한 6학년 선생님 기사가 떴습니다. 내 아이가 쓰기 싫어하는 받아쓰기와 반성문은 아동학대이면서 아이가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태에는 사회 또한 함구하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열쇠당번과 오리걸음. 하나는 초등학교 2학년,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겪은 사건입니다. 


  도시 한정이겠지만 요즘은 아파트 단지 안에, 혹은 코앞에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더라고요. 제가 다닌 학교도 주변에 아파트가 참 많았는데 당시 저희 가족은 주택에 세 들어 살았기에 학교에서 집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지금 어른인 제 걸음으로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초등학생일 때는 15분~20분 정도 걸렸습니다. 집에 차도 없었던 터라 20분 거리의 마트도, 아예 동네가 다르던 다이소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던 아이였기에 15분 정도야 별 상관은 없었습니다. 


  매사에 꼼꼼하고 칼 같은 엄마는 지각도, 결석도 절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줄곧 엄마의 성향에 맞춰 바른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엄마와 저를 쌍으로 고생시킨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제게 아침 열쇠당번을 시키신 겁니다!

  가장 먼저 등교해야 되는 열쇠당번이 어디 쉬운 자리였겠습니까. 누구 하나 오래 하지를 못했는데, 어느덧 낯 가리는 데다 친구도 없어 쉬는 시간에 홀로 있던 제가 선생님 눈에 포착되고 만 것이지요. 그렇게 저희 반 열쇠는 제 손에 쥐어졌고 저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당시 외벌이에 홀로 아이를 키우던 엄마께서는 머리가 지끈거리셨을 텝니다. 7시 40분~50분까지 등교하려면 집에서 20분에는 나와야 할 텐데, 그전에 준비를 마치려면 도대체 몇 시에 아이를 깨워야 되는 건지! 


  결국 엄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신 거지요. 엄마도 출근 준비하랴 바빠 죽겠는데, 이 열쇠 당번이 뭐라고! 자전거 뒷좌석, 그 차가운 철쇠 의자는 겨울철에 더 차가웠습니다. 엉덩이가 시린 걸 참으며 엄마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덜덜 떨었지요. 

  육중한 어른도 아니고 아이 한 명 자전거 태우고 가는 것쯤이야, 쉽게 생각되실지 몰라도 저희 집은 학교 앞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주택 단지와 초등학교 사이에는 꽤나 긴 오르막길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엄마는 늦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 오르막길을, 아이를 태운 채, 무거운 일반 자전거로 오르셨습니다. 


  울엄마가 이리 고생하니,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하고 싶은데 한 친구가 매번 저보다 5분은 일찍 도착해 왜 이리 늦게 왔느냐며 타박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제가 반에서 유일하게 말을 섞던 친구라 저는 그 친구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얄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저 또한 농담 반의 타박을 즐겼거든요. 

  저와 엄마에게는 웃픈 추억으로 남았지만 선생님은 왜 하필, 아파트도 아니고 먼 주택에 사는 데다 친구도 없는 절 콕 집어 열쇠당번을 시키신 건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지각하면 절 미워하던 친구들이 저를 얼마나 욕했겠습니까.) 다행히도 제가 맡고 나서는 학년이 끝나는 몇 달 동안 열쇠당번 폭탄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 정확히는 저희 엄마가 책임감을 갖고 선생님께서 시키신 임무를 완수했으니까요. 암사자 같던 선생님께서 제게 잘했다며 선물도 주셨습니다. ㅎㅎ


  학교를 다니며 선생님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굳이 따지자면 저 혼자 삐지고 투덜거린 겁니다) 엄마가 제 편을 안 들어주는 게 속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엄마 때는 선생님의 권위가 대단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엄마가 달라지길 바랐나 봅니다. 엄마의 철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면 껌뻑 죽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학교에 아이를 맡겼고, 학교란 공간 내에서 아이를 돌보는 건 부모가 아닌 교사이니 선생님의 선택을 존중한 겁니다. 

  위의 일화가 어떻게 비추어질지 몰라도, 저는 선생님을 약간은 원망했을지라도, 저희 엄마는 군말 없이 저를 등교시켰습니다. 이 반에 속한 학생이라면 누구든 열쇠당번이란 책임을 감수해야 됐으니까요. 이외에 자잘한 일들에도 엄마는 선생님의 결정을 존중했습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들을 때로는 존경했고 때로는 친구보다 더 좋아하며 졸졸 따라다니면서 둘만의 추억을 쌓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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