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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Jul 27. 2023

점심이 맛있게 돼서 아쉬운 날

  평일이면 홀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해야 되는 이에게 파스타만큼 간단한 음식은 없다. 얼마 전, 파스타 면이 떨어지는 바람에 소면으로 도전해 봤지만 소면은 결코 파스타가 될 수 없음을 실감했다.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고 맛이 있든 없든 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거라 괴식이 탄생해도 불만은 없다.


  파스타 면이 어제 배송 와서 오늘은 파스타를 하려 했다. 혼자 한 끼 해결하겠다고 밥을 안치기엔 아까워서 이러는 건데, 이런 내 마음이 신경 쓰였는지 엄마가 아예 밥을 안쳐두고 출근하셨다. 남은 밥은 냉동해 두면 된다고. 거참. 누가 그걸 모르나! 가족 다 같이 식사하는 주말에 엄마가 번번이 찬밥을 고집하시니 아예 안 만들려고 하는 건데.


  아무튼 밥이 있으니 파스타 대신 덮밥을 해 먹었다. 요리는 썩 잘 됐다. 양파를 잘게 썰고 스팸을 다진 후, 스테비아, 요리당,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를 넣어 맛을 냈다. (물을 조금 넣고 졸이듯 볶으면 된다. 레시피를 공유해 주신 SNS 유저에게 감사를!)


  스팸 한 통에 맞춰 요리했더니 한 그릇 먹고도 많이 남았다. 아쉬운 마음에 부모님 두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엉망진창 소면 크림 파스타 먹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요리가 잘 되니 통화하고 싶어지는 건 어째서인가. 혼자 맛있는 밥 먹는 게 아쉬워, 우리 부모님도 드시면 좋겠단 생각에 괜히 이러는 거다.




  토요일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구에 갈 예정이다. 엄마의 짝꿍인 이모는 경북 문경에 살고 계셔서, 엄마에게 스리슬쩍, 내가 친구 만날 동안 이모와 대구에서 데이트하라고 했다. 엄마는 이모가 바빠 안 될 거라 하셨지만, 나처럼 아쉬운 마음이 일었는지 전화를 거셨나 보다.


  예쁜이 막내가 보자는데 언니가 안 응할까! 둘의 만남도 계획되면서 엄마 몫까지 버스표를 끊었다. 졸지에 토요일을 외로이 보내게 된 아빠에게도 계획을 고했다. 일하다가 힘 빠지시지 말라고 막둥이 멍멍이가 저지른 일도 전했다.


  어젯밤, 엄마의 통화가 길어지고 나는 나대로 못 끝낸 일에 집중하다 보니 늘 산책 나가던 시간대를 어기고 말았다. 칭얼거리던 멍멍이는 엄마 팔을 마구 긁어대다가 그래도 속이 안 풀리는지 주방에 응가를 싸고 말았다. 응가를 치우고 얼마 안 있어 엄마의 통화가 끝이 나 서둘러 산책을 나갔다. 이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산책 다녀와서는 곤히 잠들었다, 는 이야기.




  어디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다. 점심이 맛있게 된 것도, 엄마와의 통화도, 아빠와의 통화도, 멍멍이의 복수도 그저 '내 일상'일뿐이다. 


  작년 이맘 때도 브런치에 글을 자주 올렸더랬다. 그때는 가족들이 내 마음을 몰라줘 미치고 팔딱 뛰는 심정을 서술하기 바빴고, 클릭하게 만드는 제목이었는지 조회수도 높았다.


  우리 식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한 게 참 많아 해마다 지겹도록 부딪쳐 왔다. 싸움에서 탈출하고 싶던 나는 혼자 나가진 못하겠어서 엄마도 저들을 버릴 것을 종용했는데 엄마는 응해주질 않았다. 그 후로 나도 마음을 닫아버렸다.


  입을 꾹 다물고 타자 치기 바쁘던 때, 위에서 말한 이모께서 "네 엄마가 바라는 건 '가정'의 평온함"이라 일러주셨다. 그냥 평온함을 바라셨다면 내가 어릴 적, 외할머니가 엄마 끌고 가려 할 때 자식들을 내치고 동행하셨으리라. 내 말과 행동이 '엄마'란 위치에 놓인 이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 지도 지적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나만이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싸움이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서로에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임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바라는 평온함을 위해 서운한 감정을 꾹꾹 누른 채 지내도 봤다. 그러다 때때로 폭발도 했다. 서운함은 쌓여만 가기 바빴고, 눈물범벅 과거는 자꾸만 생각났으니까.


  지금은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 목매달고 있지도 않는다. 어느새 나 또한 그냥 평온함이 아니라 평온한 '가정'을 바라게 된 거다. 아빠, 엄마, 언니, 나, 멍멍이까지 우리는 한 식구니까.

 

  네 실수가 너무나 서운하다며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네 잘못이 내 잘못보다 크다며 싸움을 거는 것은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서 그쳐야 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에서도 되도록 평온함을 유지하는 게 좋겠지만.) 서운함을 키우고, 잘못의 크기를 논하는 일은 가족 사이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가족이라는 게 여전히 무겁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평가'는 그만하고 싶다. 위에서 논한 일상은 가족이라서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이니, 가족과의 현재를 소중히 여겨보련다.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써 온 책상인데, 이 책상에 家가 적혀 있다는 걸 방금 알았습니다! 낡은 책상을 더 애정하게 되네요. 주말에는 부모님과 빙수를 함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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