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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Jul 30. 2023

50대 부모도, 20대 자식도 좋아라 하는 빙수

  아빠는 곁에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집을 나가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왔다가도 금방 떠났다. 아빠, 엄마, 언니 세 사람은 모두 불과 같아서 한 명이 화를 터뜨리면 불길은 종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빠는 세 사람 중 화를 내는 빈도가 가장 적었지만, 한 번 폭발하면 누구보다 거센 불길을 만들어냈다. 하나 신기하게도 나에게만큼은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문 앞에 짠 하고 나타나 문구점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잘도 사주었다. 얼굴을 못 보고 가는 날에는 학교 복도나 집안 구석에 용돈을 숨겨 두었다. 한 번은 복도에 있던 커다란 책장에 용돈을 두었다고 해서 현금이 꽂힌 책이 무엇인지 찾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언니는 친구들과 나가 놀기 바빴는데 심히 내향적이던 나는 바로 집에 오기 일쑤였다. 중학생 때는 학원도 안 다닌 데다 친구도 적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그럴 때 아빠는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날 기다렸다. 같이 밥을 먹다가도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후다닥 사라졌지만.




  아기였을 때부터 살던 작은 아파트는 아빠의 빚으로 날아갔다. 그 후엔 몇 년 동안 주택에 세들어 살았는데 그러다 내가 열두 살 때, 우리 멋쟁이 엄마는 자가를 일구어냈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신문 배달, 틈틈이 부업을 하면서 누구보다 절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여도 이전 집보다 두 배는 넓었다. 엄마의 철천지원수 곰팡이도 이 집에는 없었다.

 

  엄마는 첫 자가 마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아빠가 발을 들이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이사오기 전 빈집 청소를 하던 날, 폭우가 멈추질 않아 집 앞 하천가가 범람했다. 엄마, 언니, 나는 어두운 빈집에서 열심히 걸레질을 하다 말고 범람한 하천을 보며 놀랐다. 그 순간에도 아빠는 곁에 없었다.


  이곳에 산 지도 어느새 십 년이 넘었고 아빠가 이곳에 머문 지도 4년에서 5년이 됐다. 어떻게 해서 부모님이 함께 살게 됐는지 두 분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나이가 들며 각자의 불길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라 예상해 본다.  




  대입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아빠가 집에 머물렀다. 등록금 걱정에 국립대 위주로 지원한 터라 충북 토박이가 대전, 전주, 부산을 찾아가야 했다. 면접은 모두 평일이었고, 혼자 갈 수 있다 우겼지만 길치에 남에게 말도 못 거는 딸이 걱정됐던 엄마는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처럼 회사에 묶여 있지 않은 데다가 아끼는 둘째 딸 일이니 아빠는 당연 승낙했다.


  문제는, 아빠가 약속을 어긴 전력이 너무나 많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엄마는 휴가를 내고 첫 면접에 동행했다. 면접 보는 동안 두 분이서 또 싸우는 건 아닌가 걱정한 게 무색하게 부모님은 환한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전주 명물인 비빔밥을 먹고 근처에 있던 한옥 마을을 걸었다.


  부모님 사이가 극에 치달리던 세월이 길었고, 언니의 방황도 심했던 터라 '가족여행'은 나와 거리가 먼 일이었다. 친구들이 어디에 다녀왔다 해도 별 감흥이 일지 않을 만큼 바란 적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면접날 가족여행까지 누리는 호사가 서글프면서도 좋았다. 대전은 아빠의 낡은 승용차와, 부산은 처음으로 KTX란 걸 타며 다녀왔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촉박해 달리던 중 여성 옷을 팔던 점포와 마주쳤다. 아빠는 걸음을 멈추곤 옷을 골라주려 했다. 아빠가 고르는 옷마다 속된 말로 촌티가 줄줄 흘러서 안 살 거라 우겨댔는데도 아빠는 기어이 한 벌을 계산했다.




  다시 현재. 서울살이 중인 언니는 자주 내려오질 않아 주말엔 보통 멍멍이까지 네 식구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도 평일에는 타지살이라 주말에만 모일 수 있다 보니,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하는 날은 주말로 굳어졌다. 이번엔 SNS에서 화제인 옥수수 피자를 먹자고 며칠 전부터 선포했는데 재료 소진으로 시키질 못했다. 농사꾼 작은 아버지를 도우러 간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벌어진 사태였다. 아빠와 엄마는 호박전으로 저녁을 때웠고, 난 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무얼 해 먹어야 하나 골똘히 고민하며 누워 있었다. 부모님과 달리 점심도 안 챙겨 먹은지라 더 고민이 됐다.


  피자 못 먹게 됐다고 토라질 나이겠는가! 그럼에도 아빠는 나의 침묵이 길자 삐졌다고 생각했는지 옆에 와 누우면서 웃어댔다. "아빠가 뭘 사다 줄까?", "뭐가 먹고 싶어?", "햄버거?" 이런 말을 듣기에 난 너무 커버렸으니 평소라면 낯 부끄러웠을 텐데 오늘은 괜스레 서글퍼졌다. 엄마 또한 "자기(부모님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가 늦게 오는 바람에 이렇게 됐잖아!"라고 아빠를 구박하면서도, "우리 빙수 먹을까?" "오레오초코빙수?" "티라미수 빙수?"라며 동조하여 더 그랬다. 딸 앞에서 욕을 주고받기 바빴던 30대에서 40대의 부모님은 어느새 딸에게 무얼 먹여야 하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50대가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보다도 그들을 사랑하는 20대가 되었고.


  안 삐졌다는 걸 티 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했다. 참치 기름을 빼고, 양파를 다진 후, 마요네즈와 섞어 참치마요를 만들었다. 아빠가 따온 깻잎에 참치마요와 현미밥을 싸 먹으면서, 기어이 빙수를 사 오겠다고 나간 아빠를 기다렸다. 지난주 주말에도 빙수를 먹었고, 그 지난주에도 빙수를 먹었다. 식성 까다로운 언니가 없으니 배달과 외식을 줄인 줄 알았는데 주말마다 꾸준히 빙수를 먹고 있었다.


  문득, 휴일 집안에서 빙수를 함께 먹은 적이 올해 말고 또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단 걸 싫어하시는데 빙수만큼은 좋아하신다. 아빠는 나보다도 단 걸 잘 드신다. 앞으로의 여름에도 가족과 함께 빙수를 먹는 순간이 자주 찾아들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은 망고치즈빙수를 먹었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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