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이 높아서 그리 느끼는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 대구의 햇볕은 고향인 충북과 비할 바가 못 됐다. 온종일 실내에 박혀 있을 생각이었는데 실내에 있는 시간만큼 실외를 횡보하게 됐다. 팔 타는 게 싫어 팔을 뒤로 보내 치마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걷다 보니, 껄렁한 포즈가 되어 웃겼다.
정수리 위에 스팀기를 올려둔 건지, 내 머리가 곧 뚜껑이라 열이 폭폭 방출되고 있는 건지... 뜨거운 태양과 가장 가까이 마주한 머리통은 제발 좀 그늘로 가라 간청했지만 두 발은 들어주질 않았다. 정수리 온도보다 몇 달만에 만난 친구의 말이 더 중요했으니까. 같은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친구라고 더위를 모르지는 않았을 터, 하나 친구는 내 대구행이 특별하게 기억되길 바라는지 여러 가게에 날 데려가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들어 줬다.
(친구에겐 내가 대구에 가는 건 대구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너와의 대화가 목적임을 강조했다. 아무 카페에나 종일토록 있어도 되니 얘기나 나누자고 말했는데 착한 친구는 신경이 쓰였나 보다.)
더위를 잘 타는 편이라 한여름 그것도 한낮의 외출을 선호하진 않는다. 폭염 주의 문자가 날아오는 날에도 만남을 강행하려는 친구들이 놀라울 때도 있다. 하나 날이 아무리 더워도 같이 걷는 사람이 있으면 표정은 찡그려지지 않는다.
오늘도 피할 수 없는 태양의 무서움에 오히려 깔깔 웃어대며 머리부터 발까지를 더위에 다 내주었다. 한 예능에서 배우 남주혁이 "조명, 온도, 습도..."를 말하며 순간을 감탄하던 게 일종의 밈으로 자리 잡았는데 나 또한 그리 외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친구가 기막힌 코스를 짜주었는데 작렬하는 태양빛, 체감 45도는 되는 거 같은 온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으로 습해진 얼굴이 어째서 추억의 순간에 포함되지 않겠는가. 친구는 너무 덥지 않느냐며 날 신경 쓰면서도 이제 일어나 이 가게에 가자, 저 가게에 가자며 인도하기 바빴다. 그런 친구가 귀엽고도 소중했다.
막판에 시간을 쪼개고 들른 가게에서 레진으로 만든 핀들을 구매했다. 핀이야 어디서든 살 수 있지만 이 가게는 친구가 좋아하는 공간인 데다 내 디즈니 최애인 모아나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이 많아 눈이 더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다. 백수의 지갑이 열리고 만 거다. (백수가 되고 나선 나를 위한 소비에는 주춤하게 된다.)
산을 닮은 초록색 핀, 바다를 닮은 파란색 핀, 별 모양의 미니핀 세 개를 결제하려는데 사장님께서 브로치 하나도 골라 가라 하셨다. 브로치는 전부 같은 모양에 가운데 박힌 장식만 달랐다. 태양과 같은 노란색 장식 브로치가 최종적으로 눈에 띄었다. 곧장 가방에 매달아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 뽐내고 다녔다. 해는 진지 오래라 우릴 괴롭힌 태양이 보지는 못했을 테지만.
지난주에는 친구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옥 마을을 걸었다. 전날 낮에도 친구와 으악 소리를 반복하며 베트남풍 카페에 갔다. 동일한 친구가 아니라 각각 다른 친구들이다.
평일 한낮의 햇볕에 시달리는 것 또한 백수의 특권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절, 학교를 나가지 않아 집안 창문으로 벚꽃의 만개를 목도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근래의 '햇빛 쐬기'는 내겐 순간의 획득이 되었다. 옆에 있어주는 친구들이 매번 다르니 태양은 하나일지라도, 저마다의 추억이 되어 마음에 진하게 남는다.
이 친구들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설령 연락이 끊기는 날이 오더라도, 한여름의 한때를 공유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으리. 비록 나는 무계획의 백수이나 워홀에, 유학에, 취준에 바쁜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기를 멀찍이서 비는 친구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