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의 여행
미리 말하지만 삼길포항에 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엄지를 치켜세울 맛집을 아는 것도 아니다. 인근에 사는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가끔 와서 정이 들어 다시 오는 그런 곳이다. 사장동생이 그랬고, 그래서 우릴 데려온 곳이다.
20241002.
그날 일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곳이 마침 삼길포항이었다.
여행길이 아니었지만, 여행이어야 정당하게 가질 수 있는 좋은 느낌이 찾아왔다. 그러면 여행이 되는 것이다. 여행이란 언제나 엇갈림에서 비롯되는 우연과 불가측이 진동시키니까.
그럼에도 여행의 기본은 언제나 밥이다. 짜릿한 여행의 맛을 보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고 잠든 밤은 겉은 달고 속은 쓴 사탕처럼 약 올리는 고문과 같다. 여행은 돈을 받지 않는 노동이지만, 노동 속에 피어나는 꽃과 같으니,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결국 밥이다. 그렇고 맛집을 찾아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멋진 곳과 맛집은 일치하지 않는다. 욕심을 부려 둘 다 얻으려 한다면 동선이 꼬이고 여행인지 식사인지 이도저도 아닌 거시기가 되고 말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씻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마다하고 아우성치는 위장의 명령에 따라 밥부터 먹었다. 횟집에서 후다닥 허겁지겁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술잔에 돌아가던 숙소에 차가운 아니 쓰라린 바람이 불었다. 오전에 고속도로를 쓸고 간 바람이 괜한 바람이 아니었다. 횟집에서 차장이 누나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부터 낌새가 묘했다. 지금의 집 근처도 아니고 대각선으로 세 도시를 걸친 먼 거리였다. 순간 아이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와 피가 만나는 근원적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원청 업체 차장.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 원래 차장과 우리 팀은 다른 숙소를 잡지만 굳이 따라온 그였다. 차장을 위해 온갖 조언이 술상 위에 난무했는데, 요는 이제 남보다 못한 아내에게 다 뺏어와 손해를 보지 말란 것이었다. 그중 누구보다 목청을 높인 이는 사장동생이었다. 그에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술보다 쓴 미소를 짓던 차장은 술잔을 바라보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을 날름 삼킬 뿐이었다. 아직은 어떻게 할지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모르는 체하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키에 날씬한 몸, 동안으로 만들어준 맑은 눈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괜찮은 남자를 두고, 외로움이 낳은 욕정이 새로운 중심에 흔들린 아내 눈을 멀게 했다. 욕정마저 사랑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욕정이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이 역접의 이상한 논리가 바람의 당사자를 혼란케 하겠지만.
그의 잦은 지방출장이 문제라고 했지만 사랑이 식은 것이 연유였다. 사랑이 살기 위해 끊임없이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돈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내가 '나'이면서 내가 '너'이어야 하는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모순이 필요하다. 밥을 먹어 살을 유지해야 하지만 배출하고 다시 먹어야 살이 유지되듯 영원한 고리 속에 있는 것도 우리다.
술을 마시던 동료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사장동생은 차장을 위로라도 하고 싶었는지 불꽃놀이를 하러 가자고 했다. 동굴 속에 있던 두 남자에게 불꽃이라도 터뜨려야 견디는 밤이었지만 야속하게도 편의점에는 폭죽이 없어 해변을 걸었다. 그냥저냥 술이 길을 인도하는 대로.
누가 무슨 사연이 있든 은근히 밀려오는 물결은 항구에 치근덕거렸고, 힐끔거리는 밤별은 물결을 유혹했으며, 듬성듬성 틈을 내준 배들은 모른 척 잠들었고, 이들을 바라보는 해변의 길은 화려했다. 밤은 이토록 빛나고 있었지만, 그 길을 걷던 차장은 어둡고 깊고 긴 동굴로 향하는 듯했다.
사장동생과 차장은 화려한 해변길을 걷고 있다. 친구에게 이 두 남자 중 바람을 된통 맞은 그 남자가 누군지 묻자 대번에 알아봤다. 누구라는 걸 맞춘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날 몰라라 하는 세상과 달리 누구나 이 남자의 뒷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길은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멈췄다. 아마도 이때가 아름다움의 영혼이 내 뒤를 서성거렸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두 남자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술잔을 기울이다, 차장이 먼저 잠이 들었다. 불 꺼진 방, 아무렇게나 침대 위에 버려진 새우처럼.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밤은 빛나고 있는데.
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