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의 여행
다음날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라면을 먹었다. 거나한 전날 저녁에 비하면 비굴한 밥상일지 몰라도 맛있었다. 날 것의 비싼 단백질 무더기에도 한국인의 위는 언제나 밥과 라면을 그리워한다. 아침이면 더더욱.
24241003.
이 밥상을 차려준 이는 사장동생이다. 어제도 동생은 남은 횟감으로 무엇보다 맛난 생선 전을 부쳐주었고 볶음라면 위에 달걀 스크램블을 올려주었다. 그도 한 집안의 아버지지만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는 밥을 차려주니까. 가끔 바쁜 일 때문에 그가 없는 밥상엔 빈자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엄마는 밥을 차려주고 밥상을 지켜주니까. 나의 엄마도 그랬다. 당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밥상머리에 앉아 가족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닌 듯 조금은 긴장된 시선으로 우리들의 표정을 보고 맛이 어떤지 살피곤 했다. 사장동생도 아닌 척했지만 그랬을 것이다. 밥상을 내오는 사람의 본능이니까. 그래서 모두가 들리도록 말했다. 맛있어. 맛있다,는 곧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나는 멈췄다. 하늘도 바다도 산도 온통 파랬다. 하나처럼 보였다. 하나여서 멈췄던 것이다. 하나는 단초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이미 삼길포항에서 얻게 될 깨달음의 문에 들어선 것이다.
빛과 바람이 적당한 온도에 뛰노는 시간. 서산 삼길포항의 붉은 등대로 가는 길은 낚시꾼을 불러들였다. 사장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낚시다. 이곳에 온 것도 동생이 가끔 왔기 때문이다. 동생은 한 번도 시골에 살아본 적 없지만 자연을 그리워했다. 혼자 섬에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낚시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에게 어떤 외로움이 느껴졌다. 외로워서 더 외로워지고 싶은.
이곳은 산이 내려다보는 바다가 있고, 파도를 가르고 들어온 배가 머무는 항이 있고, 배에서 쏟아진 어물은 식당의 밥상에 올려진다. 우리의 계획도 그랬다. 이곳에서 잡힌다는 고등어를 잡아 바로 회를 떠먹고, 다른 생선을 식당으로 가져가 먹으려 했다.
우리는 등대로 가는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나와 사장동생, 전진을 닮은 전진동생, 그리고 차장. 바닷속엔 피라미 같은 작은 고기들이 떼 지어 다녔다. 붉은 떡밥을 던지자 학꽁치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처음엔 학꽁치가 새우 미끼를 입맛만 보고 도망쳤다. 머리가 좋은가 싶었지만 길고 작은 주둥이를 가진 학꽁치에겐 짜증 나게 바늘이 컸다. 학꽁치에게 먹이를 다 먹지 못해 짜증, 우리에겐 학꽁치를 잡지 못해 짜증.
사장동생은 다시 낚시가게로 뛰어갔다. 작은 바늘로 바꾸자, 넣으면 무는 게 학꽁치였다. 차장은 물가에 내려오지 않고 지긋한 눈길로 멍하니 하나의 색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어제와 오늘을 오가는 혼란을 미끼처럼 바다에 던져 어떤 미래를 낚고 있는 것일까.
본시 생물이란 무서운 것이다. 무서움은 미지의 것인데, 알지 못한다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 덮칠지 모른다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생물도 그렇다. 살아있으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쉬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이며, 언제 태어나 언제 숨을 거둘지도 알 수 없다. 특히나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는 공포가 극에 달하는데,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딸려 물가에서 몸부림칠 때다. 나도 몸부림치는 물고기다. 지금 난 나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일이면서 여행인 시공을 향해 서울을 떠났다. 상실감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으니.
낚시는 생물의 죽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손맛이라는 이름으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도 최고의 공포와 무엇에도 비견될 수 없는 희열의 만남이 잔혹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무서움을 느끼거나 낚시라는 잔인한 본질 때문에 사장동생에게 낚싯대를 넘긴 것은 아니다.
공기마저 파랗게 물든 공간을 마냥 걷고 싶었다. 그곳은 멀지 않았다. 그리고 찰칵. 순간이었고, 하나였다. 언제나 보아왔던 그냥 물결이었는데, 내가 선 곳에서 한 발짝 옮기고, 채 일분이 지나지 않자, 어떤 보석보다 반짝이던 하나의 빛은 사라졌다.
그랬다. 아름다움은 순간의 시간과 공간 속에 하나로 숨어있다.
그래서 아름다움들의 여정이 계속될 것 같았고, 잘하면, 숨어버린 나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