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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같은온도 Nov 16. 2024

3.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엄숙한 고요를 따르다

[ 숙소에서 바라본 삼길포항 ]


숙소에서 삼길포항을 바라본 모습인데, 하영에게 이 사진을 보여줬더니 노을이 좋다고 했지만, 실은 새벽녘이었다. 어차피 같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이니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시간이 뒤바뀌는 기분이었다. 하여 이제 시간을 거슬러 공주로 갈 것이다. 이번 일과 여행의 시작인 곳이다. 시작은 어딘가로 닿게 되고,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하게 된다. 삼길포항의 마지막 속에, 안테나의 전파는 누군가와의 통신을 위해 공간을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20240924.

빛 좋은 날,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고 어둑해져도 빛이 보였다. 공주의 첫인상도 빛의 도시였다. 마침 백제문화제란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 공산성 주변으로 조명은 찬란했고, 그 앞을 흐르는 금강에 고스란히 비춰 들어 두 개의 세계를 만들었다. 


[ 금강교 ]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산성은 아름답지 않다. 끝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주는 백제시대에 웅진이라고 했으며 문주왕이 고구려에 쫓게 급히 천도한 곳으로 멸망이 시작된 곳이다. 이후 성왕이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도망치고, 낙화암 아래를 흐르는 백마강에서 백제는 사라지게 된다. 금강은 이 모든 역사의 격랑을 품은 채 지금까지 고요한 듯 흐를 뿐이었다. 내 마음에도 강이 흐른다면 마음을 다독이는 고요가 찾아올까. 그래서 빛 하나가 나타나 강물에 비친 또 다른 나를 보며 무어라 말해줄까.  '잊을 수 있다고. 잊으면 잃고, 잃으니 뭔가 다시 생겨나기 마련이니, 괜찮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

[ 제민천, 금강으로 흐르는 지천 ]
[ 무령왕릉과 왕릉원 가는 길 ]


공주의 공유자전거, 백제씽씽을 빌려 무령왕릉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빛이었다. 지천에도 빛이었고 지천 위에 다리도 전각을 세우고 불을 밝혔다. 기분 좋은 길 사이로 전각의 다리에서 풍기는 나무 냄새를 맡고 걷자니 그야말로 하루의 피곤함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문과 문을 통과해 가는 궁궐로 가는 기분이었다. 이 다리를 지나면 지하의 궁궐, 왕릉원이 나오고 왕릉원에는 말로만 듣던 무령왕릉이 있다.  


[ 공주 왕릉원 ]


밀행이었다. 정문 격에 해당하는 아랫길보다 윗길로 들어가 들어갔다. 아무도 지키는 이도 제지하는 이도 없으니 몰래는 아니었지만 아무도 없어 몰래 같은 기분이었다. 몰래는 떨림과 함께 그 안에 펼쳐진 세상이 내 것인 양 짜릿함을 준다. 자전거를 타고 왕릉 곳곳을  감히 멋대로 돌며, 드디어 무령왕릉에 도착했다. 


[ 무령왕릉 ]


화려한 연꽃무늬 벽돌의 내실을 볼 수 없었지만 교과서 속 사진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거대한 봉분들이지만 실은 이곳은 안장의 주인이 없는 텅 빈 곳이다. 거대한 곳에는 형언할 수 없이 좋은 무언가 들어차 있을 것 같아 탐하는 자에겐 훔치고 싶은 욕심이 찾아들고, 기어코 유린되고 만다. 도굴꾼은 무덤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 지석까지 가지고 가 거대한 무엇을 아무것도 아닌 흙산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흔적을 지우고 죄책감까지 없애는 잔꾀일지 모른다. 헌데 유일하게 무령왕릉만 도굴이 되지 않았다. 말로는, 5·6호분과 바싹 붙어있고, 6호분 뒤에 있던 무릉왕릉이 무덤처럼 보이지 않아 도굴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알 수 없다. 무덤 중 가장 아름다운 무덤, 무령왕릉. 그럭저럭 예쁜 것은 쉬 스스로 유혹되고 쉬 취해지기 마련이지만, 아름다운 것은 외려 훼손되지 않을 때도 많다. 그 안에 힘이 있어 마지막 도굴꾼인 일본 놈을 순간 무력하게 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아 무덤의 주인을 알게 되자, 이곳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았음에도 관련자들에게도 탐심이 있었는지 단시간에 엉망으로 발굴이 되어 도굴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 왕릉원 아랫길 ]


아무도 없으니 고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끝곳이기에 엄숙함이 둥실 떠다녔다. 산과 같은 봉분 사이가 골짜기가 되어 떠다니는 고요는 아래로 흘렀다. 엄숙한 고요를 따라 내려왔더니 빛이 연못 위에 놀고 녹음이 보초를 서는 정원이 나왔다. 이 일과 여행 중에 신산한 마음속에 있던 산 자를 세워둔 멈춤의 첫 곳이었다. 멈춤은 뭔가 생각나게 하지만 순간 모든 걸 잊게 하기도 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라면, 이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다면.  



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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