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의 여행
길을 걸을 때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 고통과 아름다움이다. 고통 후에 아름다움이 보이며 아름다움이 버려지면 고통이 찾아온다. 그것은 나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리되었을 때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때가 나와 무엇이 하나가 되기 위하고 숨을 쉬기 위한 멈춤이고, 그 속에 내가 있다고 느끼며, 그때를 기억하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이지만 하루의 고단함 후에 또는 그 이전의 어떤 고통 뒤에 찾아오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20240925.
그 색에 고통도 아름다움도 녹아드는 듯했다.
공산성은 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전날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다녀오는 길에 잠깐 들르기는 했지만, 축제의 장이자 백제의 궁이 있던 금서루와 공북루 사이만 걸었다. 그 길만 걸어도 시선을 당기고 황홀하게 한 빛들이 걸음을 이끌었다. 그래 오늘은 더더욱 만끽하기 위해 공산성 둘레길을 돌았다.
공산성은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시대의 왕성이며, 당시에는 웅진성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성이어서 그런가, 그곳으로 조선의 왕이 도망쳐온다. 무능한 인조는 무신을 무시하는 문신의 말을 듣고 반정의 최고 공신 이괄을 일등공신에서 제외시켰고, 이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난을 일으켰으며, 평생 도주의 운명을 안고 산 인조는 부리나케 공산성으로 피신했다. 이곳에서 인조가 최후를 맞이하였다면 조선 백성에게 더 큰 불행인 호란이 찾아오지 않았겠지만, 비운의 백제성은 인조의 뒤통수에 악운을 달아 보내고 말았다.
공산성은 말 그대로 공산 公山에 있는 성이다. 공산은 공주를 지켜주는 진산 鎭山인데 청와대 바로 뒤 서울의 백악산(북악산)에 해당한다. 공산은 해발 110m로 야산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낮은 산인데, 이런 곳에 단숨에 야산을 넘어 무시무시하게 쳐들어오는 적들을 막을 성을 쌓는 것이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접 가보면 보는 것과 상상하는 것이 허상임을 알게 된다.
백제시대에는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 남아 있는 성은 방패 역할을 하는 지대석이나 체성이 없이 달랑 성만 쌓았다. 그래서 그 위를 걸으면 위태롭게 느껴지는데, 그 아래를 보니 가팔라 드문드문 아찔했다. 본시 적을 방어하는 성은 길고 높다 하여 좋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을 두루 지킬 수 있는 군사의 수와 적이 근접하기 어려운 성의 각도다. 그런 면에서 공산성은 적은 수의 군사력으로 효율적으로 적을 막을 수 있는 크기와 각도를 가져, 성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공산성 안은 백제의 것이 남아있지 않기에 볼 것은 없고, 대신 2,450m 성의 둘레 사이사이 현대에 세운 모든 전각을 사진으로 담고 그 안을 올랐다. 별건 없었지만 공산성을 다 보았다는 기분뿐이었는데, 성을 다 돌 무렵 찌릿한 별일이 생겼다.
그곳은 금강과 접한 만하루 앞이었다. 그곳으로 내려오는 길은 성길 중 가장 가파른 곳이어서 나름 긴장하며 내려왔는데 긴장감에 공포감을 더한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귀신이었다. 쪽을 진 두 할머니, 하얀 소복까지 입은 두 여인이 공중에 떠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섬뜩하여 잘못 보았나 싶어 이렇게 말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공중에 떠 있던 두 여인이 허공을 스르르 날아올 줄 알았는데, 그중 한 여인이 말했다.
- 야밤에 뭐 하러 돌아다니는감.
다행히 그들은 사람의 말을 했고, 허공을 날아 덮치도 않았다. 그래도 눈도 나쁜 내가 귀신이라도 본 것이 아닐까 하여 사진을 찍었다. 저들이 귀신이면 사진에 찍히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너무 보았나?
실은 그곳은 조선 세조 4년(1458)에 지은 영은사라는 사찰인데, 지금은 비구니의 절이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만, 그날 성길은 밝고 영은사는 어두워, 절이 있는 줄도 몰랐고, 육안으로는 하얀 옷을 입은 비구니는 어둠에 가린 긴 의자에 앉아 있어 공중에 떠보였다.
이렇게 놀람에서 웃음으로 성길 탐방이 마무리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이었다.
기억이란 묘한 것이, 많이 아니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새로운 길의 이정표이자 미래의 전조가 된다. 쉼 없이 걸었던 성길보다 영은사 앞에서 짧은 기억이 남았고, 그곳에서 멈췄다. 비록 그곳 자체가 고통과 아름다움은 아닐지라 며칠 후 다시 찾아올 공주의 미래에서 자그마하면서 좋았고 아린 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넓고 먼 눈으로 바라보면 그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곳도 절 중에 비구니의 절이었고, 그곳에서 누군가 날 멈춰 세웠다.
2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