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꺼지지 않는 아궁이

by Sam Giller


어제 오후, 남편 책상에 앉아 글을 쓰던 중이었다. 작은 아이가 유치원을 하루 쉬게 된 날 혼자 이것저것 하며 놀다가 아이디어가 바닥났는지 방해 공작을 펼친다. 마우스로 커서를 옮겨 다니며 화면 속을 휘젓더니 하지 말란 내 한마디에 옆에 있던 아빠의 마우스로 손을 옮긴다.


"하루가 너무 길어요." 아이의 한마디.

"오늘 유치원도 안 가고 운동도 안 갔으니까 그렇게 느껴질걸? 지금 시간이면 아직 운동하고 있을 시간인데." 내 대답에 수긍하는 아이 표정. 아이는 어느샌가 노트북 화면 속 내 글을 읽고 있다.

"이거 지금 읽고 있어?" 물으니 끄덕끄덕.

"엄마가 케첩 주문한 얘기야. 엄마가 글 쓰면 사람들이 읽고 구독과 좋아요 누를 수도 있어."


그다음 이어진 아이의 반응.

"그럼 돈 벌겠네?"

"엄마는 돈 안 벌어. 구독자 0명이야."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다가 아이는 아빠 마우스를 쥐고 쥐자동차 놀이를 한다며 거실로 향했다.



그렇다. 나는 이걸로 돈 벌 생각이 없다. 적어도 후원받기나 유료연재 기능은 안 쓸 것이다. 그냥 그것에 거부감이 든다.


브런치 작가 3일 차. 글쓰기라고는 어릴 때 억지로 했던 숙제의 일부분인 일기 쓰기, 독후감, 글짓기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블로그 작성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회사 다닐 때 업무 이메일 잘 쓰는 사람들 보면서 많이 배웠던 거 같다. 그때 공들여 작성한 이메일은 제대로 읽을지조차 알 수 없는 수신참조인들이 마치 내 무대를 보러 온 관객이라도 된 듯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지금 달라졌을까. 더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 영화 속에서 본 zeitgeist라는 단어가 궁금해서 뜻을 검색하다가 힙스터들이 즐겨 쓸 것 같은 용어들을 알아보고, 그것들이 만약 스피드퀴즈용 단어 카드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상상하고, 하겐다즈와 데이비드 린드하겐을 떠올리고, 이케아의 제품 작명법칙을 짚어보고 우리 집 거실의 소파는 북쪽요새라는 걸 알게 되는 TMI의 선순환.






난 그걸 TMI 아궁이라고 부른다. 호기심이 불을 지피면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들이 땔감이 되고 활활 타오른다. 오늘도 새벽부터 불을 지폈고 언제 꺼질지 모르겠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근데 게임영상채널은 왜 구독 눌렀어요?"

"그건 네가 맨날 보는데 매번 검색하기 귀찮아서 눌렀어."

"아하."

그리고 아이는 5분 만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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