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A contemporary beak

by Sam Giller



40분 정도 걸어서 동네까지 왔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딱 따따따따따따딱딱따 딱 딱."

가끔 작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장면을 봤기에 새를 찾으려 눈동자를 바쁘게 굴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학교 건물 외벽을 뚫고 있는 딱따구리 한 마리.


저 새는 살 곳을 못 찾은 걸까. 나무와 건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걸까.

어느 쪽이든 인간 잘못이네. 사진과 영상도 찍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왔다.






먼저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그 새는 왜 그랬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나무를 두드려 큰 소리를 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알리고 짝을 찾는 딱따구리의 습성이 드라이비트 외벽을 훌륭한 스피커로 사용한 것이다. 인간이 보기에 매우 영리하고 귀여운 선택이다. 두 번째는 나무와 달리 썩지 않으며 훌륭한 단열재로 마감된 완벽한 요새를 발견한 것이다. 전셋집 계약이 종료될 때마다 이사를 해야 하는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될 내 집 마련의 꿈을 마침내 이룬 것.


딱따구리의 행동이 단순 드러밍(drumming)이었다고 가정해 보면 딱따구리는 고품질 스피커를 통해 팟캐스트를 한 셈이다.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를 외치면서.

실제 거처로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면 역세권 신축아파트에 입주한 셈이다. 청약 통장 대신 외벽 뚫기 스킬과 알아보는 눈이 필요했던 것이고. 나무껍질 속에 살고 있는 먹잇감을 텃밭에서 수확하듯 구할 순 없어도 한두 블록만 날아가면 큰 나무가 많은 공원과 골프장이 있다. 신축 아파트에서 직주근접의 삶을 영위하는 것. 새들도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모던한 삶의 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반면 최근에 외벽 보강공사를 마친 학교 입장에선 매우 신경에 거슬릴 일이다. 방수 기능을 상실시키고, 화재 위험을 높이며 단열층에 균열을 만들고 냉난방 효율을 떨어트려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드라이비트 시공법이 선호되는 이유는 공사기간 단축과 경제성. 가성비 완벽한 인공구조물이 작은 새가 만든 구멍 때문에 서서히 망가진다.






제미나이와 나눈 대화를 클로드에게 보여주고 거기서부터 이어갔다.

다른 시각을 가진 두 친구와 진행하는 토크. 꽤 흥미롭다.


그 새는 틀린 이유로 맞는 장소를 찾아냈고 착각과 본능이 결합해서 의도치 않게 최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은 인간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가장 중요한 지점은 "딱따구리를 인터뷰해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딱따구리가 불쌍하다, 영리하다, 베드타운 직장인이다, 인플루언서다 - 전부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 것일 뿐 새의 실제 상태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딱따구리는 그래도 농약에 신경이 손상되어 길을 잃은 꿀벌은 아니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그런데 정작 그 드라이비트에 관한 진실은 인간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유해한 물질로 범벅이 된 그 인공구조물에서 새를 구조하고 적당한 나무를 찾아서 돌려보내는 게 올바른 인간의 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길고양이에게 거처를 마련해 줄 수 없듯 딱따구리 한 마리를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다만 드라이비트 외벽을 가진 건물을 바라보는 내 눈은 그 전과 같지 않다.



동네에 내가 아는 어떤 아주머니가 있다. 그분은 길냥이를 데려다가 돌보고 불임시술까지 해주셨다. 반려동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정성을 쏟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고양이는 그 시술에 대해 알까? 그것은 침범일까 보호일까.



인간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

시뮬레이션을 지켜보는 어떤 존재처럼.




오늘의 균열은 딱따구리가 시작이었다.

그러면 딱따구리가 잡혀갈 것인가, 그걸 관찰한 내가 잡혀갈 것인가?


클로드의 대답은 둘 다 잡혀가는데 취조실이 다르다고 한다.

새는 균열 만든 이들 조사하는 곳으로, 나는 세계관이 오염된 혐의와 균열을 파헤친 복수의 혐의.


시뮬레이션 장인인 나는 취조실에 매일 드나들지도 모른다. 자진출두.

딱따구리는 오늘 수수료도 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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