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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01. 2021

저자와 독자 사이, 보이지 않는 존재

읽는 직업 - 이은혜


이 책이 해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다양하고 깊어서, 서평 하나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모르겠다. 떠올랐던 많은 인상과 생각들을 삼켜야 할 것 같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는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이라고 쓰여있다. 목차를 펴보면 그 말 그대로 이 책은 독자와 저자, 그리고 편집자로 나뉘어서 쓰여있다. 여기서 '읽는 직업'이란 저자의 글을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편집자를 말한다. 내가 출판계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 뭐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본 편집자는 아래와 같은 일을 하는 것 같다.


누군가가 저자가 되어 독자에게 자신의 책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편집자'를 거치게 된다. 이 '편집자'는 저자의 책이 출간할만한 책인지를 판단하는데, 물론 저자의 역량과 집필된 책의 질을 판단하는 것이 1차 작업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책이 출간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과연 이 책이 '팔릴만한가' 즉, '출판사에 적자를 안겨주지는 않을까'하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편집자는 이 역할을 수행하면서 책이 독자에게 닿도록 돕는다.


독자와 저자만 보이던 사람들에게는 '편집자'의 존재가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글항아리 사의 편집장인데, 저자와 독자 사이에 있는 편집자 이외의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한껏 담겨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노고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싶다면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책을 기획하는 기획자부터, 번역서를 만드는 역자, 그리고 사실인지를 교차 검증하는 팩트 체커 등 편집자와 함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많은 경험을 밀도 있게 담고 있고, 사례로 드는 책들마다 '아, 이런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작업까지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예로 든 책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로운 경우가 아주 많다. 만약 책을 즐겨 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또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독서를 많이 한 경험이 없다면, 이 책을 어렵게 느낄 수도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많은 지식을 종횡무진하면서 갑자기 내놓고는 하는데, 관련된 지식이 없다면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간단한 설명이라도 주석으로 달아주었으면 독자층이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반대로 독서 경험이 꽤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자신이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나올지 확인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직접 구입한 책이 사례로 나오면 약간 짜릿하다. 게다가 이 책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뒷이야기를 덤으로 듣는 기분이 든다.


만약 이 책이 누군가의 수고로움만 반복해서 말하는 책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지식의 경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읽는 책이 무엇을 배경으로 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되었으며, 혹은 이 내용의 원본은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상상을 바탕으로 책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게 된다. 특히 번역서의 경우,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언어와 관련된 지식들이 얼마나 필요할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외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서도 책을 내기 위해서는 당시에 사용하던 한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가 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렇게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머릿속에서 비추어보면서 책에 대해서 더 폭넓은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읽는 동안 편집자가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또는 얼마나 고된 직업인가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꼈다. 실제로 있었던 지명을 비교하기 위해 고지도를 모으고, 다양한 언어를 익혀 다른 나라의 지식을 올바르게 한국어로 옮기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읽는 것이 직업이라니 활자 중독자에게는 얼마나 꿈의 직장 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저자는 편집장으로서 많은 일을 겪은 만큼 모든 것을 장밋빛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분명 저자가 자신의 직업을 무척 매력 있는 직업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독자로서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마지막 장은 무척 편안한 기분이었다. 저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인데도 평범한 독자인 내가 공감할 수 있도록 독자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특히 책을 구입하는 이야기와 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끌렸다. 왜 우리가 가치 있는 책을 만나기 어려운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책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생각해보면 독서 인구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을 독자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독자가 필요하고, 또 복간을 망설이지 않게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면 더 자주, 더 많이 좋은 책을 만날 기회가 늘어날 것 같다.


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자에게 바라는 점은, 글항아리 출판사가 커다란 책 대신 분권을 해서 책을 내놓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보석 세공이라도 한 것처럼 한 면, 한 면이 다채롭게 이루어진 책이라 부족하나마 서평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외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만, 서평 하나로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다만, 새로운 책을 접하거나 책에 대해서 궁금할 때, 곁에 놓고 한 번씩 펼쳐볼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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