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김 Apr 17. 2021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날의 몸부림

한 두 번도 아닌데

살다 보면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닌데, 유독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날이 있다. 그게 오늘일 뿐. 이런 날은 그저 지나가는 일이고,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괜찮아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날이다. 이런 내가 나약한 것 같고, 내가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마저도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날이다.


최근에도 기나긴 병 때문에 의사를 만났다. 이런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했더니 약간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셨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면, 자신이 그다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잘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남인 것처럼 바라보라고. 그때는 무척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괜찮아졌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안 되겠지만'이라는 말 그대로 결과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걷는 동안, 먹는 동안,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스스로가 너무 못나보였다. 이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자신감'이란 것도 평정심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마도 평정심이 아닐까. 이렇게 무언가를 해도 '나는 바보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진 것처럼 마음이 끝없이 우울함과 절망만 흥얼거리는 느낌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앓다가 책과 잡지를 뒤적거렸다.

으레 내향적인 사람이 그렇듯이 나도 집에 읽을거리들이 굴러다니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좀 나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내키는 대로 집어 들었다. 계간지인 <SKEPTIC>, 그리고 아직 읽다만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그리고 각종 업무상 참고 서적들... 안타깝게도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남들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초조함만 더해졌다. 평소라면 즐거웠을 일들도 하나도 즐겁지 않아서 기분만 구겼다.


꽃병에 꽂아둔 꽃들도 이제 일주일이 지나니 시들해져서 오히려 울적해졌다. 이 무거운 시간을 보내보려고 물이라도 갈아주었다. 몇 분이라도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아서 약간 뿌듯해졌다. 참 사소한 일에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사소해지기로 했다.


나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하루를 통째로, 또는 며칠째 우울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 꽤 섬세하다고 멋대로 정의한다. 그래서 예쁜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질 것 같았다. 예술이나 디자인의 순기능이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인스타그램이나 보면서 'SNS로 시간 죽이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주로 #공부스타그램이나 #goodnote, #books 같은 남의 책상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덕분에 인스타그램은 내 취향에 맞게 잘 추천해주었고, 나는 괜히 남의 책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나는...'이라는 생각의 무한 고리로 다시 빠져버렸다. 왜 '행복하려면 SNS을 끊으라'는 격언을 잊어버려서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걸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바보인 게 틀림없었다.


바보 같은 나는 쓸데없는 것에도 돈을 쓰고 다녔다. 집에 둘 곳도 이제 모자란데 눈에 밟힌다고 예쁜 잡지와 예쁜 책을 사놓았다. <매거진 B>와 <New Philosopher>, <퇴근 후 - 동네 책방>이 한편에 쌓여있었다. '활자 중독인 척만 하지, 나는 사실 예쁜 인쇄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거의 읽지 않고 예쁜 사진과 일러스트, 레이아웃을 감상하면서 휙휙 넘겨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사소한 깨달음을 또 얻었다. '아,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잡지의 사진과 글의 배치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글의 내용에 맞는 일러스트도 어떻게 딱 맞게 그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자괴감 없이 오롯이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바보 같은 나'를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것이다.


아마도 이것도 잠시일 뿐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감의 평정심은 잠시 좋아졌다가도 다시 나빠질 것만 같다. 그래도 마음에 주황색 물감이 스며들듯 아주 조금은 밝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씩 우울함에 잠겨있다가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었다. 이제 조금은 평소와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의식하지 않고 일상을 즐길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